공주 공산성 | 충남 공주시 금성동 | 산책 시간 2시간
공주 시내 금강변에 고고하게 자리 잡은 공산성은 백제 시대의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해 쌓은 산성이다. 당시에는 웅진성이라 불렀다가 고려 시대에 들어와 공산성이라 하였다. 봄에는 예쁜 꽃들이 성 입구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성곽 주변에 선 느티나무가 풍류를 더한다. 5월 즈음 찾아가 공산성의 가장 아름다운 한때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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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성을 지키는 느티나무 고목 | |
성 안에는 느티나무 고목이 유난히 많다. 숲길은 갈참나무를 주축으로 활엽수가 꽉 차 있어 그늘이 짙다. 약간 가파른 성곽을 따라 오르고 내리며 걷는 길 중간중간에 자리한 정자들과 ‘초대형’ 느티나무들은 성곽 아래 유유히 흐르는 금강과 어우러져 정취를 더한다. 공산성에는 공북루, 쌍수정, 임류각 등 여러 개의 누각이 있는데, 처음부터 이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공주 시내에 흩어져 있던 것들을 공산성에 옮겨 놓은 것이다. 이들 누각에서 주변 경관을 감상하는 것도 놓치지 말자. 특히, 공북루에서는 금강에 남아 있는 옛 나무다리의 흔적을 볼 수 있다.
공산성은 느티나무가 많은 성이다. 주차장에서 길이 구부러져 돌아가는 길목부터 느티나무 거목 한 그루가 성을 지키고 서 있다. 수문장같이 늠름한 나무와 눈인사를 나누고 길을 따라가면 금서루가 보인다. 금서루는 원래 성의 서쪽에 자리한 문루였다. 그러나 파괴되어 흔적도 없던 것을 1993년에 복원한 것이다. 성문에 들어서면 세 갈래 길을 마주하는데, 먼저 오른쪽 길을 택한다. 컴컴할 정도로 울창한 숲은 인적도 드물어 겁이 날 정도다. 길은 보도블록으로 포장되어 있으나 습한 탓에 이끼가 끼어 숲의 색깔로 물들어 있다. 급한 경사로 이루어진 비탈면에도 나무와 풀이 빽빽하다. 짙은 그늘이 드리운 숲으로 본격적으로 들어서 보자.
공산성* 풍경 스케치쌍수정으로 가는 이정표를 따라가 본다. 뜻밖에도 갑자기 시야가 환해지면서 운동장보다 더 큰 평지가 나타난다. 더구나 나무와 관련된 기념비가 있어 마음을 들뜨게 한다. 쌍수정 사적비에는 인조**가 이괄의 난(1624)을 피해 이곳에 머물렀던 10일간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비문은 영의정 신흠이, 글씨는 남구만이 썼다고 한다. 두 그루 나무(雙樹) 밑에서 반란 진압 소식을 기다린 왕은 난이 진압되자 자기를 위로한 두 나무에게 정삼품 벼슬을 내렸다. 세월이 흘러 나무가 죽어 없어지자 그곳에 삼가정三架亭을 세웠다. 벼슬을 내린 나무가 살아 있었다면 더욱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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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성의 숲은 극히 일부 소나무 숲을 제외하고 거의 활엽수이다. | |
내려와서 진남루로 간다. 진남루는 원래 토성이었던 산성을 조선 시대에 석성으로 개축하면서 만든 남문이다. 직경이 1미터나 되는 거대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문을 지키고 있다. 성문을 나오면 성곽을 따라 난 산책로를 마주할 수 있지만 일단은 쌍수정 건너편 길로 가 본다. 키가 20여 미터 이상 되는 갈참나무를 주축으로 활엽수가 꽉 차 있다. 급한 비탈에 선 나무들은 곧게 자라려는 본능으로 넘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간혹 세월을 이기지 못한 나무들이 기울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창피를 무릅쓰고 옆 나무에 의탁한 채 살고 있지만, 흉하기보다 세월의 흐름에 순응한 듯한 느낌이 든다.
난데없이 나타나는 오동나무 거목도 숲의 일원이다. 종자가 가벼워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간신히 어린 싹을 올리는데, 일단 줄기를 뻗으면 훌쩍 커버리는 나무다. 다음 숲을 준비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늘에서 잘 자라는 전나무를 심어 놓았다. 그러나 생장 상태가 썩 좋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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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삼품의 벼슬을 받은 두 그루 나무가 있었던 곳 | |
성곽을 따라 산책로를 따라 오르면 줄기가 Y자로 갈라진 상수리나무 한 그루가 나온다. 그곳에는 사람이 넉넉히 앉을 만큼 넓은 공간도 있다. 성곽 아래를 내려다보니 금강이 유유히 흐른다. 성곽에는 나무 계단과 돌을 박아 훼손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가파른 성곽을 내려오면 갑자기 훤해지며 금강 건너편의 도시가 보인다. 산책로의 끝에는 감나무 한 그루가 길이 끝났음을 알린다. 금강을 옆에 두르고 선 만 하루에 잠시 들러 풍광을 즐긴다. 뒤편에는 9미터의 깊은 연못인 연지蓮池가 있고 넓은 공터에는 영은사가 있다.
공산성을 지키는 느티나무 거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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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의 옛 다리 흔적*** 공주는 지정학적으로 내륙과 수로 교통의 요충지였는데 특히 서울과 호남을 잇는 내륙 교통의 비중이 커져 금강에 다리를 가설하였다. 1910년 자동차의 통행이 가능한 다리를 가설하였고 1930년에는 강물이 불어나거나 줄어들 때 같이 움직이는 배다리를 건설하였다. 지금 금강에 남아 있는 나무 흔적은 1933년 금강철교가 생기기 이전의 옛 다리 흔적이다. | |
영은사 위 산성길을 따라 다시 성곽을 오르면 잠종보호 창고가 있고, 그 아래 직경 2미터의 거대한 느티나무가 있다. 두 줄기가 지상에 노출된 채 뿌리가 붙어 있어 원래 한 나무였던 것이 두 나무로 나뉘었는지, 두 나무가 자라다가 붙어버린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느티나무를 지나면 시원하게 강이 내려다보이고 공북루가 나타난다. 금강을 건너는 현대식 다리인 금강철교와 물 밖에 나무로 교각을 세워 지금은 흔적만 남은 옛 다리***가 보인다.
성곽 가까이에 자리한 거대한 느티나무가 여러 개의 가지를 뻗어 자라고 있다. 땅 위에 드러난 뿌리를 보면 직경이 4미터나 된다. 줄기의 꼭대기가 부러져서 키는 10미터에 불과하나, 커다란 뿌리의 저력으로 멋진 수형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성곽을 오르는 숲 속에는 꽤 큰 상수리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약간 숨이 가빠올 정도로 경사가 진 길에서 괜스레 약해진 몸을 탓해 본다. 어느덧 도시의 소음이 점점 크게 들려온다. 출구가 가까워졌나 보다. 출구가 보이는 곳에 서서 전경을 살핀다. 왼쪽의 몇몇 소나무들이 활엽수의 위세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는 것이 보인다. 성 밖에서 본 느티나무만 독야청청하다. 직경이 1.5미터나 되는 커다란 나무가 성문을 지킨다. 군데군데 서 있는 느티나무 거목은 성을 지키는 데 손색이 없다. 공산성에 영원토록 느티나무와 숲이 살았으면 좋겠다.
공산성*
공산성은 475년(문주왕 1) 한산성에서 웅진으로 천도하였다가, 538년(성왕16)에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5대, 64년간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하여 만든 중요한 성이었다. 성은 원래 동서 약 8백 미터, 남북이 약 4백 미터의 규모였으며 사방에 석루가 남아 있는데, 대부분 조선 중기에 개수된 것이다.
인조와 인절미**
공산성에는 조선 인조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이괄의 난을 피해 공산성에 온 인조에게 성안 마을 사람 임씨가 떡을 해 바쳤는데, 그 맛이 하도 좋아 임금이 ‘임절미’로 불렀고 이것이 오늘날 인절미가 됐다고 한다.
여행 정보● 산책 시간은 약 2시간. 주말에는 금서루에서 수문병 근무교대식이 열린다. 이는 백제 군사 분장을 한 사람들이 1500년 전의 교대식을 재현한 것이다. 이밖에 기념품 만들기, 문화 체험 등의 행사가 열리는데, 자녀와 함께 여행할 때 미리 문의해 보고 가면 더 풍성한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산성 앞에 널찍한 주차장이 있어 이용하기 편리하다. 가까이에 유명한 식당들이 여럿 있으며 숙박시설은 강 건너편에 주로 몰려 있다.
● 공산성 관리소: 041-856-0331
● 공주문화관광:
//www.gongju.go.kr찾아가는 길버스: 고속버스를 타고 공주터미널까지 가면 공주시내에서 공산성까지 가는 시내버스가 수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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