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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으로 떠난 차라투스트라 -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스탠리 큐브릭의 &lt;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하나의 거대한 경험이다. 무한히 깊은 영상과의 만남인 동시에, 우주 공간처럼 깊은 음악과의 조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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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 1968년)
감독: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주연: 케어 듈리어, 게리 록우드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하나의 거대한 경험이다. 무한히 깊은 영상과의 만남인 동시에, 우주 공간처럼 깊은 음악과의 조우이기도 하다. 아서 C. 클라크의 원작이 있었다고 해도 우리는 어두운 극장 안에서 큐브릭의 상상력 없이는 다가갈 수 없는 세계와 마주친다. 같은 사물조차 새롭게 느끼게 만드는 경이이며, 스토리보다는 이미지로 이루어진 영상시의 세계이다.

어린 시절 들었던 최고의 오프닝 음악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였다. 어둠 속에서 고요를 깨면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드럼과 관악기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가 청중들에게 긴박감을 준다. 갑자기 환한 빛이 쏟아지고 조명이 들어오면서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가 등장한다. 그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첫 곡으로 「See See Rider」를 부른다. 엘비스의 공연 연출에 관중들은 완전히 그의 호흡에 말려 들어간다. 이렇게 하와이 공연 실황을 보면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처음 들었다. 당시에는 어떤 음악인지도 몰랐지만 기가 막히게 잘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이 음악이 클래식이었을 줄이야.) 도대체 누가 이 음악을 쓰자고 했던 걸까. 엘비스 혹은 프로듀서, 누군가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보고 이 음악을 선곡한 것은 아니었을까.

엘비스 프레슬리 하와이 공연 실황 LP 재킷

자라면서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보게 되었다. 칠흑 같은 암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도입부가 아득히 먼 곳에서 미명처럼 다가온다. 어둠에서 약간의 빛이 비추면 그곳은 광활한 우주 공간이다. 거대한 행성 뒤 멀리에서 마치 태양이 떠오르듯 또 다른 행성 하나가 서서히 고개를 내밀고 솟아오른다. 그 화면과 호흡을 맞추듯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흐른다. 관악기들이 한꺼번에 뿜어내는 소리만으로도 무언가 새로운 세계가 탄생하는 것 같은 인상이었다. 그렇게 시공간을 넘어서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큐브릭이 이끄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모놀리스가 등장한다. 그 신비의 물체는 인류의 선조에게 영감을 준다. 아직은 원숭이에 더 가까운 인류는 주변에 널려 있던 동물의 뼈를 들고 두드려본다. 그러다가 다른 물체를 깰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인류가 처음으로 도구를 사용하게 되는 대발견이다. 그러나 뼈를 들고 물을 차지하기 위해서 다가간 인간은 상대 종족을 잔인하게 살해한다. 지극히 본능적이고 폭력적인 장면이다. 인류의 선조가 짐승처럼 포효하면서 뼈다귀를 집어던지면 뼈는 빙글빙글 돌면서 공중으로 올라간다. 뼈, 그 하나의 도구를 통해서 시공간은 인류의 시원이 되는 수백만 년 전 과거에서 우주 공간을 나는 미래의 우주선으로 바뀐다. 뼈가 대지로 떨어지면서 우주선이 하강한다. 여유로운 음악의 도입부가 나온다. 누구의 귀에나 친숙한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다.

영화 시작 장면

푸른 지구 바깥으로 우주선들이 천천히 날아다닌다. 해가 뜨고 달이 진다. 시간과 공간은 무한해 보인다. 해와 달, 그리고 지구. 태양계의 행성 사이를 나는 우주선들, 원형의 우주 정거장이 회전하면서 왈츠는 흥겨워진다. 우주선이 돌면서 춤을 추듯이 아름답게 우주 공간을 누빈다. 대사도 설명도 없다. 시각적인 이미지와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음악만이 극장을, 시야를 가득 채운다. 무한한 우주 속에서 왈츠 음악도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다. 우주선이 달에 착륙하면서 왈츠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찬란하고 화려하게 흘러간다. 1800년대 말 화려한 원을 그리며 왈츠를 추는 비엔나 귀족들의 화려한 파티와 2001년의 우주 정거장은 하나의 동심원을 그리며 만난다. 큐브릭은 장면을 설명하지 않지만, 관객들은 느낀다. 자신이 새로운 공간을 체험하고 있음을. 거대한 달 기지가 열리고 우주선이 미끄러지듯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왈츠가 끝나면 먼 길을 떠나는 오디세이의 여정이 비로소 시작된다.

이 두 개의 거대한 오프닝 시퀀스가 진행되는 사이에 대사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오로지 화면과 음악만이 관객을 압도한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음악적으로도 드문 시도였다. 아직 할리우드 영화 대부분은 영화음악가들이 오리지널 스코어를 작곡해서 음향과 음악을 사용하던 시기였다. 큐브릭은 우주 공간을 그려내면서 관객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클래식 음악을 사용했다. 그래서 어떻게 음악을 사용하느냐가 중요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이런 만남이 얼마나 풍부한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하는 화두와도 같은 작품이다. 도구를 발견하는 먼 과거의 이야기나 미래의 우주여행에 대한 상상력은 음악을 통해 깊어진다.

영화 중반 우주선 내부 장면

큐브릭은 거장들이 만들어 낸 클래식 음악의 힘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고전 음악이 지닌 깊이와 울림이 어떻게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영상에 힘을 부여할지 느끼고 있었다. 왜 바하, 모차르트, 베토벤 같은 음악가들의 이름은 영원할까. 그것은 바로 그들이 만들어 낸 소리의 위대함 때문이다. 큐브릭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거장들의 위대한 음악을 어떻게 사용하면 영화가 불멸의 힘을 얻을 수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음악이다. 큐브릭은 이처럼 완전히 상이한 두 음악을 충돌시키지만, 결과는 놀랍게도 두 음악이 서로 조응하고 화답한다는 사실이다. 과거와 미래는 그렇게 해서 한 편의 영화라는 동일한 시간대 속에서 만난다. 리하르트의 교향시와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라는 성격이 다른 음악은 충돌의 미학이 어떤 결과를 낳는가를 보여준다. 역사 속에서 인간은 새로운 것을 접하면 그것을 극복하고 또 다른 새로움을 만들면서 발전을 이루어왔다. 테제와 안티테제는 어떻게 진테제로 나아가는가. 큐브릭은 정반합의 과정을 영상과 음악의 결합을 통해서 제시한다. 이처럼 위대한, 음악의 영화적 실험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이루어진다. 또한 두 음악의 만남은 큐브릭이 만들어 낸 놀라운 동음이의어 장난이기도 하다. 아무 근친관계가 없는 두 명의 슈트라우스, 리하르트와 요한 슈트라우스 2세라는 단어 장난은 우연이라기엔 너무나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큐브릭의 대가다운 위트라고 받아들여도 될까. 전혀 다른 음악을 작곡한 두 거장 슈트라우스들의 음악적 깊이가 영상을 통해서 같이 드러난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오리지널 포스터

2008년 중앙 시네마에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상영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특수효과를 맡았던 더글러스 트럼블이 무대 위에 올라와서 이런 말을 했다. “이 영화를 스탠더드 사이즈로 보게 돼서 아쉽군요. 언젠가 70밀리로 다시 보실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DVD가 보이면 사두기는 하지만 잘 보지는 않는다. 좋은 영화란 극장에서 볼 때 진정한 감흥을 주기 때문이다. 2009년 11월 5일 서울 아트 시네마에서 드디어 와이드 스크린으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다시 보았다. 100여 명의 관객들과 함께. 역시 초반 20분은 압도적이다. 시간이 지나면 조는 관객들도 있다. 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들으면서 큐브릭이 창조해 낸 도입부의 시퀀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은 충분할 것이다. 2008년에 이어 2009년에도 ‘2001년’을 보았지만, 영화는 여전히 미래이다. 위대한 걸작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사색을 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2001년이라는 제한된 시간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영원을 향한 여정이다. 오디세우스의 지중해보다 더 넓은, 끝없는 우주로 향해 가는 미래를 위한 메시지이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작곡한 후 총보의 권두에 이렇게 썼다. “음악이라는 수단으로 인류의 발전과 관념을, 그 기원부터 발전의 여러 가지 양상을 거쳐 종교적, 과학적으로 니체의 초인이라는 관념에 이르기까지를 전하려고 했다.” 큐브릭은 영화를 만들기 전, 이 글을 읽었던 것일까?

* 미국 영화는 주로 음악가들이 영화를 위한 오리지널 스코어를 작곡했다. 대형 스튜디오에는 아예 전담 음악감독들이 존재할 정도였다. 클래식 음악을 영화에 사용한 것은 유럽의 경우가 훨씬 많았다. 데이비드 린 감독의 <밀회>에 쓰였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보 비델베르크 감독의 <엘비라 마디간>에 쓰인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 등이 대표적이다.

* 미국 프로레슬링 팬들에게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선율은 낯익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전설적인 레슬러 릭 플레어가 등장할 때도 이 음악이 나오곤 했으니까.


※ 운영자가 알립니다
<고형욱의 OST 오디세이> 연재를 시작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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