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벨기에 | 마우리츠 하위스 미술관을 찾아라!
헤이그 사람 그 누구도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이 어딘지 모른다! 우리가 우연히 그곳을 모르는 사람들만 골라가며 물어본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내비게이션까지 한통속이니 막막해졌다. 그곳에서 얀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와 「델프트 풍경」을 봐야 하는데. 이 동네 사람들도 잘 모르는 미술관을 어떻게 전 세계 사람들이 알고 찾아갔을까?
시내 지도를 유심히 보니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이 작게 표기되어 있었다. 아, 미술관 이름의 철자 몇 개가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 달랐다. 그래서 내비게이션은 묵묵부답이었고, 사람들에게 아무리 물어도 알 수가 없었나 보다. 우리는 미술관까지 열심히 뛰어갔다. 도착한 시간은 오후 7시 40분 정도였다. 그런데 이미 문은 모두 다 닫혀 있었다. 이곳은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오픈한다는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하지? 여기서 하루를 더 지낸다면, 예약해 놓은 모든 스케줄을 포기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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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안에 들어가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볼 수 있는데……. | |
이름만 정확하게 알고 있었어도 볼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조금 억울했지만 미술관 밖 안내문에 인쇄된 그림 앞에서 기념사진만 찍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여유가 생긴다면 다시 한 번 오자고 서로 위로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시무룩해하는 민석에게 얀 페르메이르에 관해 이야기해줬다.
북구의 「모나리자」“민석아, 그림을 직접 보지 못해서 아쉽긴 하지만, 잘 들어 봐. 너도 알다시피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야.이 유명한 「모나리자」와 견주어 ‘북구의 모나리자’라고 불리는 그림이 있지. 바로 요하네스 얀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또는 「터번을 감은 소녀」란다. 그림 속 소녀에게는 진주 귀걸이와 터번을 두른 머리 외에는 특징도 없고, 그림에 대해서도 알려진 게 거의 없어서 붙은 별명이래. 페르메이르 생전에는 그의 그림들이 유명하지 않았지만 19세기에 이르러서 널리 알려졌어. 「편지를 읽는 여인」 「우유 따르는 하녀」 「레이스를 뜨는 소녀」 「연애편지」 등이 대표작이지.” “페르메이르? 베르메르가 아닌가요?”
“응, Vermeer를 네덜란드어로 발음하면 베르메르보다는 페르메이르에 더 가깝단다.”
민석에게 이야기를 건네면서 계속 표정을 살폈다. 아무도 원망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무척이나 실망한 것이 얼굴에 드러났다.
“페르메이르는 대부분 등장인물이 한두 명 정도 있는 실내를 많이 그렸단다. 밖에서 창문을 지나 방까지 은은하게 들어오는 빛을 묘사하는 섬세함이 독특해서, 그래서 꼭 보고 싶었는데.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는 창문도 빛도 다른 그림만큼 많진 않지만, 뭔가 그 그림은 독특한 느낌을 준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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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 얀 페르메이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캔버스에 유채, 45?39cm, 1665~67,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헤이그 | |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서는 페르메이르가 선호했던 노란색과 푸른색이 빛나는 조화를 이루며, 인물의 고고하고 아름다운 성품이 절제된 감성으로 드러나 있다. 오묘한 미소와 맑고 투명한 표정이 인상 깊은 초상화이다. 누군가가 방금 이름을 부르기라도 한 듯 왼쪽 어깨너머로 살며시 돌아보는 그녀의 눈빛은 무언가를 간절히 말하고 싶은 듯하다. 살짝 벌어진 촉촉한 입술은 사랑에 빠진 것 같고, 보는 이를 유혹하는 듯 묘한 매력을 느끼게 한다.
왼쪽에서 들어오는 은은한 빛은 소녀의 이마에 스며들어, 눈망울과 입술을 지나 마지막에 진주 귀걸이에 다다르고 있다. 소녀의 얼굴은 뚜렷한 윤곽을 보이진 않지만, 귀걸이에 녹아 있는 빛으로 인해서 아름답게 느껴진다. 화면의 어두운 부분에서 빛나는 진주 귀걸이는 작품 전체의 빛을 사로잡고 있다. 귀걸이는 소녀의 허영심을 상징할 수도 있고, 반대로 순결함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 더없이 맑고 깨끗해 보이는 소녀가 은은한 어둠 속으로 녹아드는 이 그림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는 그림을 보는 우리들의 몫이다.
“근데요, 아빠. 화가는 자주 발표하는 작품에 따라서 초상화가, 풍경화가 이렇게 나누던데, 페르메이르는 뭐라고 해야 돼요?”
민석은, 수첩에 무엇인가를 조금 적는 듯하더니 손을 멈추고 나를 보며 물었다. 나는 조금 당황했다.
“글쎄다. 그를 초상화가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엄밀하게 페르메이르는 초상화가도 풍경화가도 아니라고 생각해. 페르메이르가 그린 풍경화는 두 점뿐이고 「델프트의 풍경」이 그중 한 점이니까, 그를 정의하기엔 남아 있는 그림이 좀 부족하지 않을까?”
소설가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우연히 이 그림을 보게 되었고, 그림에 빠져들어서 20여 년간 이 그림 포스터를 자신의 방에 붙여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소녀는 누구일까? 페르메이르는 왜 이 소녀를 그렸을까?’ ‘소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같은 의문을 품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결국 17세기 네덜란드 델프트 지방에 대한 고증과 미술사 지식을 바탕으로, 실존 인물 페르메이르와 가상 인물 하녀 그리트의 절제되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발표했다. 그것이 바로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이다. 이 소설은 곧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한국에서도 2003년에 베스트셀러로 선정될 만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또한 피터 웨버가 감독한 동명의 영화가 2003년 개봉되었다. 이 영화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페르메이르의 그림 중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 되도록 도와주었다.
“저의 내면을 보셨군요.”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서 하녀 그리트가 캔버스에 담긴 자신의 모습을 본 순간 고백하듯 던진 말이다. 내면을 묘사한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약 300년 전 소녀의 그림을 그린 요하네스 얀 페르메이르와 그림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소설을 써낸 트레이시 슈발리에, 그 아름다운 소설을 바탕으로 그림 같은 영화를 만든 피터 웨버. 그들은 모두 자기만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발표했지만, 이들의 가장 큰 목표는 인간의 내면을 그려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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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in ads 9★ 다이아몬드 광고에 사용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영국의 보석 회사인 비버브룩에서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귀에 진주 귀걸이 대신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그려 넣고, 오묘한 그 미소를 더욱 환한 미소로 바꿔서 다이아몬드 광고에 이용했다. 현재 이 작품은 “타국에서 페르메이르의 작품전이 열리더라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만큼은 국경선 밖으로 내보내지 않겠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사랑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