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를
1888년 2월-18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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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프를 물고 귀를 싸맨 자화상」, 캔버스에 유채, 51?45cm, 시카고, 리 B. 블록 컬렉션, 1889 | |
743 1889년 1월 22일경
사랑하는 친구 고갱에게,
편지, 고맙네. 나의 작은 노란집에 혼자 남아ㅡ아마도 마지막까지 이곳에 남는 것이 나의 의무였듯이ㅡ친구들이 가고 나면 조금은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된다네.
룰랭은 마르세유로 전근되어 방금 여기를 떠났네. 그가 최근 며칠, 아기 마르셀을 웃기고, 자기 무릎 위에서 놀게 한 광경은 감동적이었지. 전근으로 그는 가족과 떨어지게 됐네. 어느 날 밤, 자네와 내가 동시에 ‘통과하는 사람’이라고 이름 붙인 그 사람도 너무 가슴 아파 했다네. 그가 자기 아기를 위해 노래하는 목소리는 이상하게 울려서, 슬픔에 잠긴 침모나 유모의 목소리 그리고 프랑스 나팔과 같은 청동의 음색을 듣는 것 같았지.
지금 나는 후회하고 있다네. 자네에게 여기 머물면서 때를 기다리라고 그렇게 간청하고, 여러 가지 그럴듯한 이유를 붙였지만 지금은 내가 자네를 출발하게 한 것이 아닌지……. 물론 그 출발이 그 전에 계획된 게 아니라면 말이네. 그랬다면 내가 자네에게 나에게 그런 사정을 솔직히 말해주는 게 옳았을지 모른다 싶어 후회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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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 캔버스에 유채, 72.5?92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188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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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카페」, 연필, 펜, 잉크, 62?47cm, 달라스, 달라스 미술관, 1888 | |
여하튼 나는, 필요하다면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여전히 서로 좋아하고 있다고 믿고 있네. 즉 유감스럽게도 변함없이 아무런 수단이 없는 우리들 화가의 일, 한 푼도 없어서 그런 수단이 필요할 경우, 다시금 바꿀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네. 자네, 편지에서 내 그림 한 점ㅡ노란 배경의 해바라기ㅡ를 갖고 싶다고 했지. 자네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네. 자냉Jeannin에게 작약 그림이 있고, 코스트Quost에게 접시꽃 그림이 있다면, 나에게는 해바라기 그림이 있지. 나는 그 무엇보다 해바라기를 선택했어.
나는 먼저 자네가 이곳에 두고 간 물건을 돌려주겠네. 지난 일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네에게 그 작품에 대한 권리가 없음을 명확히 하고 싶네. 그러나 그 그림을 선택한 자네의 감식안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에, 똑같은 것을 2매 그리도록 노력하겠네. 그렇게 되면, 결국은 마찬가지로 자네가 소장하게 되는 것이지.
오늘 룰랭 부인을 그린, 나의 사고로 인해 손 부분이 미완성 상태였던 그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네. 색의 배치로는 빨간색은 순수한 오렌지까지 미치고, 그것이 피부 부분에서는 분홍색을 거쳐 황토색까지 높아지고, 또 올리브 녹색이나 베로네세 녹색과 섞여 있지. 인상주의의 색 배치로는 나는 더 좋은 것을 고안하지 못했네. 이 그림을 어선 속에, 그것도 아이슬란드의 원양어선 같은 배 안에 건다면, 어부 중에는 그들이 마치 요람 속에 있는 듯 느끼는 사람들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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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를 병원의 정원」, 연필, 펜, 잉크, 45.5?59cm, 암스테르담,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 1889 | |
아! 사랑하는 벗, 그림에서 성취한다는 것은, 이미 우리보다 이전에 베를리오즈나 바그너가 음악에서 이미 달성한…… 슬픔으로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는 예술을 만드는 것이네! 아직도 자네나 나처럼 그것을 느끼는 인간이 조금은 있지 않겠나!!!
내 아우는 자네를 잘 이해하고 있네. 동생은 자네가 나처럼 역경의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래, 그게 바로 동생이 우리를 이해하는 증거일세. 자네 물건을 곧 보내겠지만, 아직도 허탈감에 싸여 있어서 미처 자네 물건을 보내지 못하고 있었네. 며칠 지나면 용기를 낼 수 있을 거야. 그리고 ‘펜싱 마스크와 장갑’(유치한 싸움 도구의 사용은 가능한 한 최소한으로 하게나), 이 끔찍한 전투용구는 그때까지 두도록 하겠네. 지금 나는 매우 담담하게 편지를 쓰고 있지만, 자네가 남긴 물건을 묶기에는 아직 손이 닿지 않아.
신경의 열기, 또는 정신착란 속에서ㅡ그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르지만ㅡ내 생각은 수많은 바다 위를 건너다녔네. 나는 네덜란드의 유령선, 또 오를라를 꿈에 보았다네. 다른 때라면 노래하는 방법도 모르는 내가 그때는 오래된 자장가를 부른 느낌이었지. 요람을 흔드는 여인이 노래하고, 그것이 뱃사람의 마음을 위로한다는, 내가 병들기 전에 색채 배치를 표현하고자 한 것을 떠올리면서 말이야. 베를리오즈의 음악을 모르기 때문이라네.
마음으로부터 악수를.
자네의 빈센트
조만간 답장을 주면 고맙겠네. 『타르타랭』은 다 읽었는가? 남프랑스의 공상은 우정을 만든다네. 그래, 그래, 믿어주게. 우리도 변하지 않는 우정을 지키세.
자넨 이미 비처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읽었고, 또 읽었겠지? 문학적으로는 훌륭한 작품이 아닐지 모르지만. 『제르미니 라세르퇴』는 읽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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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편백나무가 있는 밀밭」, 캔버스에 유채, 72.5?91.5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1889 | |
해설
1888년 10월 23일, 빈센트가 그토록 기다리던 고갱이 마침내 아를에 도착한다. 그러나 그림을 대하는 태도와 생각, 성격 등 모든 게 달랐던 그들 사이는 갈등과 긴장의 연속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빈센트가 스스로 왼쪽 귀를 도려내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후 고갱은 떠나고, 빈센트는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회복과 악화를 거듭하면서 점점 더 쇠약해졌지만, 그는 그림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