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그
1881년 12월-188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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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261과 함께 보낸 스헤베닝겐 바다 풍경 스케치 | |
261 1882년 9월 3일 일요일 아침
나의 사랑하는 테오에게,
방금 너무나 고마운 네 편지를 받았어. 오늘은 조금 쉬고 싶기 때문에 바로 답장을 쓰고 있다. 편지, 동봉한 것, 네가 말해준 여러 가지 모두 고마워.
그리고 몽마르트르의 노동자 풍경에 대한 묘사도 정말 고마워. 그 색깔까지 적어준 덕에 눈에 선하게 보여 정말 흥미로웠다. 네가 가바르니Paul Gavarni(1804-1866)에 대한 책을 읽었다니 그것도 기쁘구나. 정말 흥미로운 책이고, 그 책을 읽은 뒤 그를 다시 사랑하게 되었어.
파리와 그 주변은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이곳에 대해서도 아무 불만이 없어.
이번 주, 유화 한 점을 그렸어. 우리가 스헤베닝겐을 함께 걸었을 때 본 것을 조금 생각나게 하는 그림이야. 모래와 바다와 하늘을 그린 큰 습작이지ㅡ섬세하고 따뜻한 회색의 거대한 하늘, 단 한 군데 작게 번쩍이는 부드러운 푸른색ㅡ모래와 바다의 빛, 그래서 전체가 황금색이지만, 색채가 뚜렷하고 분명하게 묘사된 사람들과 어선으로 활기에 차 있어. 전체적으로 풍부한 색채야. 이 스케치의 주제는 닻을 감고 있는 고기잡이배야. 닻을 감고 배를 물속으로 끌어가기 위해 말이 몇 필 대기하고 있어. 그 작은 스케치를 동봉할게. 정말 힘든 작업이었어. 처음에는 판이나 캔버스에 그리고 싶었어. 그림에 더 다양한 색깔을 넣으려고, 즉 색의 깊이와 견고함을 부여하려 노력했단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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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헤베닝겐의 바다 풍경」, 캔버스에 유채, 34.5?51cm, 암스테르담,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 1882 | |
어제 저녁, 나는 숲에서 썩어 말라버린 너도밤나무 잎으로 덮인, 약간 경사진 지면 위에서 그림을 그렸어. 적갈색 지면에는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있고, 좀더 강하거나 약한 나무 그림자가 만드는 줄들이 땅 위를 지나고 있지만, 그 줄들은 거의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더 느낌이 강렬했어. 문제는, 정말 어려운 문제는, 지면 색깔의 어두움, 그 지면의 거대한 힘과 견고함을 표현하는 거야. (중략)
나는 자연을 묘사하고 있어. 그 효과가 어느 정도까지 나의 스케치 속에 구현되었는지 자신은 없어.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초록, 빨강, 흰색, 노란색, 푸른색, 갈색, 회색이 만드는 조화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는 점이야. 말하자면 이전에 팔레 뒤칼Palais Ducal에 있었던 드 그루의 「신병의 출발」의 스케치와 꼭 같은 효과였어.
그것을 그리기는 너무 힘들더군. 지면은 매우 어두운데도, 그걸 그리는 데 튜브 한 개 반을 썼어. 그 밖에 빨강, 노랑, 갈색, 황토색, 검정, 시에나 황갈색을 쓴 결과는 적갈색이었어. 그러나 흑갈색에서부터 짙은 와인색이나, 도리어 희미한 황금색을 띠는 빨간색으로 가는 도중이었지. 그래도 아직 이끼와 빛을 받아 밝게 반짝이는 싱싱한 풀밭의 경계를 그리는 일이 남아 있었는데 정말 그리기 힘들었어. 그렇게 하여 지금 네가 보고 있는 스케치가 그려질 거야. 누가 뭐라 말해도 이 스케치는 가치가 있고, 뭔가를 표현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싶어.
이 그림을 그리면서 스스로에게 말했어. 즉 작품에 가을 석양의 느낌, 신비로운 느낌, 진지한 느낌이 나타날 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겠다고. 그러나 그 효과는 시간적으로 영속하는 것이 아니므로 서둘러 그려야 했지. 인물은 모두 몇 번의 견고한 붓질로 단숨에 그렸어. 어린 나무들이 대지 위에 어찌나 튼튼히 뿌리내리고 있는지 정말 감동했어. 그 둥치를 붓으로 그리기 시작하면서, 지면을 이미 두껍게 칠해두었기 때문에 간단한 붓질로 나무들이 대지에 뿌리를 내리게 만들었어. 뿌리와 줄기는 튜브에서 물감을 짜내면서 바로 모양을 만들고, 약간의 붓질로 다듬었을 뿐이야.
그래서 이제 둥치도 지면에 강력하게 뿌리를 내리고 서 있게 되었어.
어떤 의미에서 나는 유화 그리기를
배우지 않았던 것이 좋았다고 생각해. 만일 그걸 배웠다면 지금 구사하는 효과는 무시했을지 모르기 때문이야. 지금 와서 보니 정말 그래서는 안 돼.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거야. 만일 그게 불가능하다면 그것도 어쩔 수 없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노력할 거야. 어떤 식으로 그려야 하는지
나 자신도 몰라. 다만 내 마음을 사로잡는 풍경 앞에서 아무것도 그리지 않고 앉아 눈앞에 있는 것을 보지.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했어. 그 하얀 판을 무엇인가로 만들어야 한다고. 그래도 만족하지 못한 채 돌아와 그림을 한쪽에 세워두었어. 그리고 조금 쉬었다가 다시 가서 일종의 두려움을 가지고 바라보지. 그래도 여전히 만족하지 못해. 왜냐하면 그 황홀한 장면이 마음속에 너무나 생생히 남아 내가 그린 것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야. 그래도 결국 내 작품 속에도 나를 감동시킨 장면의 흔적은 남아 있어. 자연이 나에게 말을 걸었고 그것을 내가 속기로 기록했음을 알 수 있어. 나의 속기에는 해독할 수 없는 글자가 있을지 모르고, 잘못 썼거나 빠뜨린 것도 있을지 몰라. 그러나 거기에는 숲이나 너도밤나무나 인물들이 말한 무엇인가가 남아 있어. 그것은 누가 가르쳐준 방법이나 체계 안에서 습득한 인습적인 언어가 아니라, 자연 그 자체에서 나온 언어야. (중략)
네가 보낸 성의와 도움의 가치는 말로 다할 수 없어. 너에 대해 많이 생각해. 내 작업을 충실하고 진지하며 남자다운 것으로 만들 거야. 그래서 네게도 가능한 한 빨리 만족을 주고 싶어. (중략)
그래, 이번 달에 조금이라도 더 보내주면 좋겠어. 그렇게 못한다면 할 수 없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일할 거야. 너는 내 건강을 염려했는데, 너는 어떠니? 내 치료법이 너에게도 통하리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야외로 나가서 그림을 그리는 거야. 나는 좋아. 피곤할 때도 좋다는 느낌이고, 더욱더 좋아지고 있어. 가능한 한 간소하게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나의 경우 주된 치료 방법은 그림이야.
진심으로 너의 행운을 빌고, 더욱더 그렇기를 빌어. 마음으로부터의 악수를 받아주고, 나를 믿어다오.
너의 영원한
빈센트작은 바다 스케치에는 황금색의 부드러운 효과가 있고, 숲 스케치는 더 어둡고 진지한 분위기야. 인생에는 두 가지 모두 있다는 게 기뻐.
해설
이 편지에서 빈센트가 말하는 「스헤베닝겐의 바다 풍경」은 그의 초기 유화 중 대표작이다. 헤이그파의 영향, 특히 해안 풍경을 많이 그린 바로크 화가 아드리안 반 데어 벨데의 영향을 볼 수 있는 이 그림은 아직 빈센트의 개성이 드러나 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언제나 풍경 속에 사람들을 동화시켜 갈색조로 그린다는 그의 생각을 볼 수 있다. 또한 자연과 사물 본래의 색이 아니라 작품 전체에 어우러지게 색조를 변형시켜 색채의 자율성을 확보해가는 그의 노력이 엿보인다. 색채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그의 평생을 지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