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은 당신 생각에서부터 웅얼웅얼 찾아온다.
어쩌자고 의식이 점점 뚜렷해지는지
어쩌자고 생각이 나는지
도대체 어쩌자고 당신에게 마음이 닿았는지
며칠째 밤마다 잠들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었다. 불을 끄고 이부자리에 누웠을 때 명확해지는 의식 상태가 겁이 날 정도였다. 일단 잠들기 위해서 눈을 감아보지만 생각의 웅얼거림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눈이 떠졌다. 어둠 속에서 눈이 한번 떠지면 다시 감기까지 용기가 필요했다. 눈을 감는 순간, 보이지 않는 존재가 바람처럼 느껴질 것 같은 어리석은 두려움 때문이었고 더 이상 되감기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반복하는 나를 발견했을 때 감당해야하는 자괴감을 피하고 싶은 까닭이었다.
멀뚱멀뚱 검은 천장을 바라보며 “잠을 자야 하는데…….”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출근해야 하는 부담이 없는 여행 중이라지만 내일을 위해서라도 “잠을 자야 하는데…….”라고 생각했다. 용기를 내어 눈을 감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양을 세어보았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내가 양띠이긴 하지만 남들처럼 양을 세는 일이 잠드는 데 도움이 되진 않았다. 좀 더 매력적인 대상을 떠올려보았다. 돌고래를 생각했다. 돌고래는 양처럼 세지 않았다. 갖가지 색의 돌고래들이 내 머릿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도록 풀어주었다. 뭔가 아쉬웠다. 그중 분홍 돌고래 한 마리를 부드러운 어항 속에 넣었다. 그리고는 어항을 달빛이 내려앉은 창가로 가져갔다. 분홍 돌고래는 달빛을 받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마치 꿈이라도 꾸고 있는 듯했지만 의식적으로 돌고래 꿈을 만드는 동안 잠은 점점 달아났다. 누운 자세를 바꾸고 생각은 비우려고 노력했다. 생각을 비우기 위해 의식을 <바깥>에 두었다. 의식을 <바깥>에 두니 손목시계 초침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큰일이었다. 한번 들린 시계소리는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 짹깍짹깍짹깍 …… 소리에 민감해지기 시작하니 작은 소리들까지 거슬리기 시작했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벽에서 들려오는 물 내려가는 소리, 골목길을 지나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 베란다에 널린 빨래들이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 알 수 없는 어떤 것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까지 밤이 이렇게나 소란스러웠나 싶었다.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한밤중에 밀려드는 요의.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부름을 받고 나니 그나마 어렴풋하게 남아있던 잠까지 모두 달아나버렸다. 잠 못 드는 밤 청소나 하자고 생각했다. 화장실에서 나와 문득 방안을 둘러보니 괜히 지저분해보였고 방바닥에 먼지들이 발바닥에 서걱서걱 달라붙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방은 늘 그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방을 닦으니 머리카락이 한가득이다. 이러다 대머리가 되는 건 아닐는지 살짝 걱정될 정도였다. 이불을 털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다고 했던가?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이불도 없겠지만 속이 후련할 만큼의 먼지들이 공중에 떠 다녔다. 형광등 불빛에 드러났던 먼지들은 금세 생기를 잃고 사라졌다. 걸레를 빨았다. 걸레를 빨면서 걸레는 더러웠을 때가 걸레다운 걸까, 아니? 깨끗하게 빨아서 햇볕에 빳빳하게 말려진 모습이 걸레다운 모습일까?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다운 질문을 던져보았다. 걸레가 더럽혀졌더라도 깨끗하게 빨아서 햇볕에 잘 말려준다면 적어도 걸레를 더럽다고 하지 않는다. 뭐가 걸레다운 건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냄새나고 축축한 상태로 방치되어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사람이 걸레처럼 더럽혀졌더라도 더러운 채로 살고 있느냐 혹은 그렇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었다. 마음의 위안이라는 것, 걸레를 빨다가도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걸레를 삶아 깨끗하게 되어도 걸레를 수건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생각, 처음부터 걸레인 것은 계속 걸레로 사용된다는 생각, 수건도 걸레가 될 수 있다는 생각, 수건을 걸레보다 더럽게 사용하는 경우의 생각, 생각이 거듭되면서 엉켜버렸다. 한밤중에 걸레를 빨게 된 탓이었다.
“생각이 많으면 잠이 엉키죠. 그게 바로 불면증이에요.”
그렇지만 불면증도 새벽이 되면서 스멀스멀 물러갔다.
나는 아침잠이 많은 여행자가 되었다.
※ 운영자가 알립니다.<가만히 거닐다> 연재를 마칩니다.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