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마시는 커피는 왠지 더 깊은 맛이 날 것 같아요.”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커피 향 대신 갓 구운 빵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한쪽 테이블 위에 노오란 빵이 먹음직스럽게 놓여 있었다. 이제 막 구운 것 같았다. 갑자기 심한 허기가 느껴졌다. 나는 창가 쪽에 자리를 잡았다. 창은 무척이나 넓었고 창을 통해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신호등 색이 바뀌었고 기다리던 사람들도 바뀌었다. 2분마다 한 번씩 새로운 등장인물을 관찰 할 수 있는 심심하지 않은 자리었다. 겨우 해석이 가능한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익숙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노오란 빵은 냄새를 맡는 것으로만 만족하기로 했다. 공복에 채워지는 커피 한잔의 상쾌함이 필요한 아침이었다.
당신과 나는 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셨다. 생각해보면 당신과 나는 마주 앉아 커피를 마셔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카노 한 잔을 기다리고 있는 사이에 당신이 슬며시 떠오른 까닭은 아메리카노를 시켜두고 자주 당신을 기다린 탓인 듯하다. 기다리는 내내 당신을 떠올리며 커피 잔을 들었다 놓았던 반복들이 문득 그리워졌다. 당신을 기다리던 그때처럼 시선은 창밖을 향했다. 녹색 신호등이 깜박이고 있었다. 신호등 안에서 깜박이는 검은 신사처럼 기억을 걷는 듯한 표정을 한 사내가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슬며시 떠오른 당신도 건너갔다.
소담한 손을 가진 그녀가 가져다 준 커피에서 여린 김이 피어올랐다 사라졌다.
설탕 한 스푼
휘휘-
설탕을 너무 많이 넣어 커피를 달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사람은 몽상가이거나 시인이다. 나는 몽상가의 커피에 설탕 두 스푼을 넣고 휘휘- 저어주는 것을 좋아한다. 휘휘 저어 알맞게 달아 진 커피를 티스푼으로 맛보는 일은 몽상가가 꾸는 꿈의 예고편을 보는 일이었다. 그 달달한 행위는 들키고 싶지 않은 나의 취미이고 섬세한 애정 표현이었다. 나는 커피에 설탕을 넣지 않고 마시지만 당신과 마시는 커피는 늘 달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여전히 시선을 창밖에 둔 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입안 가득 커피의 온기가 번지니 그제 서야 하루가 시작되는 것 같았다. 여행을 떠나오면 하루의 시작에 늘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모닝커피의 첫 모금을 목구멍으로 넘기면서 자연스레 ‘여기’의 하루를 기대하는 것이다. 일상에서도 그리하면 좋으련만 돌림노래처럼 반복된다는 생각 때문인지 좀처럼 쉽지 않다. 입가에 흘러내린 마른 침을 문지르면서 혹은 차가운 변기에 엉덩이가 닿아 화들짝 놀라면서 시작되는 지지부진한 하루에 그저 두근거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영화를 볼 땐 팝콘을 먹어줘야 하?, 여행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스포츠 신문을 들여다봐야 하고, 모닝커피를 마실 땐 조간신문을 읽어줘야 그림이 완성된다. 그러나 나에겐 일본어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이기 때문에 조간신문을 읽는 것 대신 가져온 책을 꺼내어 읽었다. ‘세상 돌아가는 일’은 잠시 잊어도 된다. 반짝이는 오전에 모닝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것은 내가 부리고 싶은 생의 사치 중에 하나였다.
‘천천히 해. 살짝 스치고 넘어가는 게 전부가 아니란다. 네 손가락이 한 단어에 속삭일 때 모든 걸 알 수 있을 거야. 천천히 해 쿠엔틴. 그리고 네가 보고 있는 것을 조금 만 더 오래 붙잡고 있어봐. 난 이미 널 보고 있잖니’
미국의 시인 어니스 모쥬가니의 「여전히 생애 처음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자들을 위해」라는 시에서처럼, 한 단어에 속삭이며 내가 보고 있는 것을 조금 더 오래 붙잡고 안단테로 읽어 내렸다. 마시는 커피조차도 안단테로 식도를 지나 위장까지 내려가는 듯했다.
안단테 안단테
모닝 커피를 마시며 ‘걸음걸이의 빠르기’로 천천히 기분 좋은 산책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