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식사를 끝내고 회사 건물 계단에서 커피를 한잔 마시고 있었다. 매일 저녁 한 시간씩 일렉트릭 기타를 친다는 두 살 많은 직장 선배 C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 비웃었다.
“아니,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전자기타를 치고 그럽니까?”
무심코 말을 뱉었는데 다음 순간, 그 선배로부터 돌아온 대답이 내 뒤통수를 쳤다.
“당신은 취미 없어? 난 그게 취미야.”
그래 취미.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마흔 다 된 남자가 집에서 뜨개질을 하든, 매일 두 시간씩 스카이콩콩을 타든, 트라이앵글을 치면서 유행가를 부르든 뭐가 문제인가? 좋아하는 걸 한다는데.
무엇보다도, 나에게 그 선배 비웃을 자격이나 있는가? 취미라는 걸 가질 생각조차 못하고 사는 주제에. 그래도 한번 생각해보자. 나에게 취미가 정말 없는가? 초등학교 시절 우표 수집, 중학교 시절 음반 모으기, 고등학교 시절 기타 연주, 여기까지 생각나는데 술에 빠져 살았던 대학 시절 이후로는 취미가 떠오르지 않는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는 회사를 다닌 것밖에 아무것도 없다.
취미는 억지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취미가 있다는 것은 좋아하는 게 있다는 뜻이고, 삶에 열정을 갖고 있다는 의미까지 포함한다. 생각해보니 사업하는 선배들이 종종 술자리에서 “취미가 없는 사람과는 동업을 하지 말라”고 말한 게 떠오른다. 그냥 흘려들었는데, 다시 되새겨보니 일리가 있는 말 같다. 빡빡하고 여유 없는 사람에게 융통성을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상대방의 좋은 파트너가 되기 위해서라도 취미도 필요하다. 물론 취미가 필요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런 실리적인 이유가 아니라, 단 한 번뿐인 삶을 그래도 퍽퍽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취미는 그 사람의 성향을 드러내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회사 업무는 억지로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취미는 절대 ‘억지로’가 안 된다. 자신의 성향은 고려하지 않고 취미로 삼겠다며 무작정 수영과 골프, 등산 등을 시작해보라. 6개월 이상 지속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일부러 돈과 시간을 투자해가며 만들어내는 게 취미인데, 어떻게 억지로 되겠는가.
복도에서 선문답 같은 대화를 나누고 3개월쯤 지났을까? C선배가 티켓을 하나 주고 간다. 아는 사람들과 헤비메탈 그룹(이름만 들어도 가슴 뛰는 이름 아닌가? 헤비메탈)을 만들어 6개월 동안 매주 세 번씩 연습을 해왔는데, 홍대 근처 한 클럽에서 드디어 첫 번째 공연을 한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나도 취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 상태였고, 고등학교 시절에 헤비메탈에 열광했던 기억도 나고 해서 공연을 보러 갔다. 공연장은 1980년대 말 대한민국 헤비메탈 밴드들이 매주 공연을 펼치던 종로3가 신나라 라이브홀이 다시 살아 돌아온 것 같은 분위기였다. 마치 아이언 메이든과 주다스 프리스트가 이곳에 찾아온 줄 알았다. 연주의 질을 따지기 전에 멋지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잠자고 있던 락의 본능이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인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해보니 잠깐이긴 했지만 고등학교 시절 헤비메탈 밴드를 조직한 적이 있었다. 주말마다 각종 세간이 이곳저곳 뒤엉켜 있던 친구 집 지하실에서 UFO의 「Doctor Doctor」와 오지 오스본의 「Crazy Train」, 주다스 프리스트의 「Electric Eye」를 연습하던 게 떠오른다. 정말 좋아했었다. 오죽했으면 아버지가 나의 대입 합격에 감격해하며 사준 선물이 검정색 짝퉁 깁슨 기타였을까? 솜씨 좋은 낙원상가 기술자들이 수공으로 만든, 태가 좋고 잘 빠진 기타였다. 하지만 그 기타는 나와 인연을 오래 맺지 못했다. 주제넘게 재수를 한다며 서울로 올라온 것이다.
재수를 끝내고 시골에 내려갔을 때 그 기타는 이미 집에 없었다. 어머니에게 물어보니 아는 사람 아들이 계속 달라고 해서 주었다고 했다. 그 후로, 대학? 다니고 군대에 가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기타를 만질 일이 갈수록 요원해졌다. 아버지로부터 기타를 선물받았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그런데 서른다섯 살이 됐을 때 그 기타를 다시 만나게 됐다. 놀랍게도 그 녀석은 고스란히 우리 집에 있었다. 시골집이 재개발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집안 살림을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하다가 다락방 포개진 광주리 뒤 갈색 커버에 쌓인 채 떡하니 서 있는 녀석을 발견한 것이다. 지퍼를 열어보니, 기타 줄은 다 녹슬었지만 검은색 바디에 금빛 픽업이 그대로였다. 악보 사이에는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샀을 서산행 버스표 승객회수용도 그대로 들어 있었다. 대학에 합격했다는 기쁨에 아버지와 서울에 올라가 기타 하나 사고 내려온 날이 생각난다. 시골의 노부가 스무 살짜리 아들에게 일렉트릭 기타를 사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말 쓸데없는 걸 산다. 그래도 돈이 아깝지는 않다.’
뭐 이 정도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까? 그 아버지는 이미 5년 전에 돌아가셨고, 이 녀석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 좋다. 오랜만에 소리나 한번 들어보자. 그런데 「Doctor Doctor」의 시작이 뭐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