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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반찬 해서 누구랑 먹을꼬

지금이라도 어디 조그만 솔밭 하나만 있다면 원이 없겠다. 그 솔밭에다 나는 나의 정을 담뿍 주리라. 그래서 상긋하고 고소한 나의 솔들을 베어다 나의 정다운 ‘님’에게 주고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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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쌓이는 아궁이의 재들은 어디로 갈까. 첫째는 헛간, 둘째는 측간, 셋째는 솔밭이다. 부추를 우린 ‘솔’이라 했다. 그 생긴 모양이 꼭 소나무의 솔잎 같아 솔이라 했을 것 같다. 도회지 사람들은 솔을 한사코 부추라 한다. 그러면 우리는 대번에 또박또박 야물게도 가르쳐준다.
“아니어라우, 이것은 솔이어라우.”
우리 동네 가시내들은 참 똑똑도 했다. 아니어라우, 그것은 그것이 아니고 이것이어라우. 머시기가 아니고 거시기어라우. 나중에야 솔을 부추라고도 하고 경상도 어디서는 정구지라고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김치도 도시에 와서야 알게 된 말이다. 우린 ‘짐치’ 혹은 그냥 ‘지’라고 했다. 그러니 부추김치도 우리게에서는 그냥 ‘솔지’다. 배추지, 무시지(*무김치.), 싱건지, 솔지…….

나는 누구 옆에 있으면 더 예쁠까

솔은 한번 심어놓으면 그 자리에서 계속 난다. 번식도 한다. 어느 정도 자라면 이발해주듯이 잘라준다. 그래서 솔지를 담가먹는다. 그 솔지가 떨어질 때쯤 솔은 또 소복이 자라나 있다. 어느 집이나 솔밭을, 이녁 식구들 먹을 만큼씩 가지고 있다. 패밭(*파밭.)과 솔밭은 꼭 애들 손바닥만 하다. 정말 귀여울 정도로 조그만 밭이다. 밭이 없으면 이녁 밭 둔덕에 솔밭을 만들고 뽕밭 옆에도 조그만 자투리를 만들어 솔밭으로 지정한다. 솔은 조금씩 베어 먹는 것이라서 텃밭에 있을 성도 싶은데 우리게에서는 안 그랬다. 아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 간격으로 그 솔밭에 재를 뿌리러 간다. 솔은 아무것도 안 먹고 그저 빗물과 재만 먹고 자란다. 꼭 콩나물 같다. 콩나물이 물과 재만 뿌려주면 자라듯이 솔이 그렇다.

저물 무렵 바구니 하나 끼고 솔밭에 가서 솔잎 베는 맛은 참 기가 막히게 좋다. 솔 향은 향긋하고 싹둑싹둑 솔이 잘리는 맛은 그렇게도 정갈하다. 오월의 솔은 특히나 부드럽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솔 향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찔레꽃 향기다. 그래서 밭둑가에 찔레꽃이 무더기로 피어나는 곳에 있는 솔밭의 솔이 맛있다. 아, 이제야 알겠다. 왜 텃밭에 솔을 안 심었는지 그 이유를. 그것은 집 안에 찔레가 있지 않으므로. 그런 예는 또 있다. 그냥 열무밭의 열무보다 콩밭의 열무가 훨씬 맛있다. 그냥 파밭의 파보다 메밀밭의 파가 훨씬 맛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나는 누구 옆에 있으면 더 예쁠까? 내가 누구 옆에 있으면 그 사람이 더 예뻐질까? 찔레꽃과 솔, 콩과 열무, 메밀과 파 같은 것들을 생각하면 그런 물음이 저절로 물어진다.

내가 솔을 먹으면 찔레꽃 향기와 뻐꾸기 울음소리와
산밭의 어둠과 별의 소곤거림까지를 먹는 것


찔레꽃은 꼭 뻐꾸기 때문에 피어나는 것만 같았다. 뻐꾸기가 안 울면 찔레꽃은 절대로 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뻐꾸기가 울어야 찔레꽃이 피고 찔레꽃이 피면 솔이 맛있다. 물론 다른 때도 솔을 먹기는 먹지마는 뻐꾸기 울고 찔레꽃 피는 그때가 솔이 가장 맛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 기억에는 그렇다. 이건 제철음식이 맛있다는 차원이 아니다. 솔이야 봄부터 가을까지 먹으니 딱히 제철이 어느 계절이라고 말하기도 그렇다. 그런데 그렇다. 그러니 이런 논리가 성립할 수 있다. 찔레는 뻐꾸기를 좋아한다, 솔은 찔레를 좋아한다, 고로 솔은 뻐꾸기도 좋아한다. 그런 논리로 솔에는 이미 뻐꾸기 소리가 들어가 있다.

찔레꽃을 통하여 솔에게까지 뻐꾸기 소리가 들어와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시골 아이들은 그것을 안다. 시골에서 일하면서 큰 아이들은 그것을 안다. 솔이 맛있는 것은 찔레꽃 향기와 뻐꾸기 소리가 들어가 있어서 그렇다는 것을 안다. 요리한 사람이 정성을 들여서 맛있게 요리하기 이전에 이미 솔은 맛있게 되어 있다는 것을, 그 맛의 비밀을 나 같은 촌아이들은 알고 있다.

그뿐인가. 그리고 솔뿐인가. 밤의 내밀한 소란스러움, 낮의 적막, 비, 바람, 달, 별빛들이 들려주는 소곤거림 같은 것들이 밭에서, 산에서, 들에서 나고 자란 것들을 키웠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솔을 먹으면 나는 찔레꽃 향기와 뻐꾸기 울음소리와 산밭의 어둠과 바람과 비와 달과 별의 소곤거림까지를 먹게 되는 것임을 촌아이들은 콩만 할 때부터 알게 되는 것이다.

시장에서 솔을 사왔는데 솔 내가 안 난다. 솔은 솔인데 모양만 솔이다. 아니, 모양도 솔이 아니라 거의 파다. 파처럼 길다. 옛날 솔은 검지 손가락만 한 길이고 향기는 상긋하고 고소했다. 향기 짙은 솔을 썰어 넣고 매운(그냥 매운 게 아니고 그 또한 향기롭게 매운) 풋고추 좀 썰어 넣고 방애잎 좀 넣고 간장으로 간을 해서 적(*전, 부침개 따위.)을 부쳐서 채반에 널어 꾸득꾸득 말려놓으면 물에 만 밥에 먹을 수 있는 반찬이 되었다. 그럴 때 먹는 솔적에서 나는 고소한 향기는 사람을 행복하풰 한다. 시장에서 사온 솔은 아무 향기가 안 난다. 그래서 먹어도 내 마음에 아무런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시장에서 살 때도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게으르게 살아도 먹고 살 만한 사람의 손가락같이 길쭉한 솔을 집어들면서 나는 서글펐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지금은 솔을 말하고 있으니 솔을 예로 들자면, 내가 이제 다시는 솔지를 담그려고 솔밭에 가서 솔을 베는 기쁨에 취할 수 없다는 것, 솔을 베면서, 혹은 솔밭을 가꾸면서 솔밭 주변의 것들에 내가 귀 기울이며 찔레꽃 향기라든가, 뻐꾸기 울음소리라든가 하는 것들 때문에 행복감을 맛볼 수 없다는 것. 그러는 대신에 나는 어디서 왔는지, 그것이 내 손에 오기까지 어떤 사람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생각으로 기르고 운반했는지 모를 솔을 그 어떠한 심미적 감각 없이 그저 돈을 주고 사왔다는 것. 그것을 텔레비전 요리 프로라든가 요리책에서 ‘부추김치 맛있게 담그는 법’에 따르는 방식으로 솔지를, 아니 이때는 이미 솔지가 아니라 부추김치가 된다, 하여간 그 부추김치를 ‘몸에 좋은 부추김치’라고 인식하며 먹고 있다는 것. 그 부추가 부추김치가 되기까지 나는 그 부추와 어떤 교감도 나누지 못했다는 것, 내가 부추를 보고 생의 아름다움에 들뜨는 그런 과정 없이 부추김치가 내 밥상 위에 당당한 부추김치로서 턱 놓여 있는 것.

그러나 그것을 먹지 않을 수 없는 그 명명백백한 ‘써늘한 현실’ 앞에서 나는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이따금 맥이 탁 풀린다. 나의 솔지를 위하여 나는 세상의 모든 부추김치들에게 저항을 해야 쓰겠는가. 알고 보면 지가 좋아하는 찔레꽃도, 뻐꾸기도 울어주지 않는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느라 저도 힘들었을 부추이니, 그저 내 밥상에 올라와준 것만도 감사할밖에 다른 수는 정녕 없는 것인가?

내가 나의 솔지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힘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부지런히 나의 솔지를 증언하는 일이다. 나의 솔지들이 있었던, 그 자리들을 말하는 것이다. 나나, 당신이 말하지 않으면 솔지의 찔레꽃, 솔지의 뻐꾸기는 누구도 말해주지 않을 것이고, 다만 찔레꽃이니 뻐꾸기니 우리는 알 바 없고, 간장이 몇 스푼, 설탕이 몇 스푼, 고춧가루 몇 스푼을 넣어야 ‘맛있는 부추김치’가 되는지만 말하는 사람들만 있을 테니까.


쓰르라미 소리 안 듣고도 속이 노란 봄배추

동네에 시집온 새댁들은 한복에 하얀 에이프런(구식 엄마들의 넓은 광목 앞치마가 아니라, 그야말로 끝단에 바이어스를 댄 에이프런)을 두르고 예쁜 바구니 들고 솔밭으로 갔다. 엄마들은 낫으로 자르기도 하는 솔을 새댁들은 꼭 가위로 잘랐다. 그 옆 밭에서 하루 일을 끝내고 담배 한 대 피우던 과부 할미가 새댁에게 묻는다.
“솔 반찬 해서 누구랑 묵으까?”
새댁이 대답 없이 웃는다.
“님허고 묵제 누구랑 묵어 잉? 아이고 이녀러 님은 콩을 팔러 갔는가, 퐅(*팥.)을 사러 갔는가, 한번 가서 오지를 않네.”

나도 이담에 커서 꼭 녹색 바이어스 댄 에이프런을 두르고 석양의 솔밭에 나와 솔을 베리라. 새댁들이 솔밭에서 솔을 베는 동안 신랑들은 고운 새색시하고 부자로 살고 싶어서 ‘특용작물’들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동네에 그런 집들이 부쩍 많아졌다. 배추를 밭이 아니라 논에 심는 집이 생기고부터 봄배추라는 게 생겼다. 가을배추같이 속이 노란 봄배추가 나는 신기했다. 어떻게 저 배추는 쓰르라미 소리를 안 듣고도 저렇게 속이 노랄 수가 있을까, 하구서.

우리 엄마가 말하길, 왜 가을배추속이 노란고 하니 쓰르라미 소리를 하도 들어 쓴물이 차서 그렇다고 했다. 쓴물인데 왜 다냐고 하니 엄마는 쓴 것이 달다고 했다. 그럼 단것은 어떠냐 했더니 단것은 쓰다고 했다. 엄마는 짠 것은 시고 신 것은 짜다 했다. 차가운 것은 뜨겁다 하고 뜨거운 것은 ‘션하다’ 했다. 우리 엄마가 지금 내 나이보다 더 젊어서 한 소리를 나는 살아생전 우리 엄마보다 더 나이 먹은 지금도 요령부득이다.

하여간, 쓰르라미 소리도 안 듣고 산국 냄새도 안 맡고 물비린내만 나는 논에서 자란 봄배추가 낯설어 나는 한동안 힘이 들었었다. 힘든 내 마음을 귀여운 솔밭이 위로해줬다. 집집마다 조그만 솔밭이 있다는 게 나는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부추 하우스’는 있어도 ‘솔밭’은 없다. 어스름녘 빨간 다홍치마에 노랑 저고리 입고 하얀 에이프런을 두르고 솔밭에 나와 싹둑싹둑 솔을 자르던 새댁도 없다. 그런 새댁을 한번 하고 싶었는데, 그런 기회는 나에게 오지도 않고 세월이 가버렸다. 새댁 할 나이는 지난 지 오래여도, 지금이라도 어디 조그만 솔밭 하나만 있다면 원이 없겠다. 그 솔밭에다 나는 나의 정을 담뿍 주리라. 그래서 상긋하고 고소한 나의 솔들을 베어다 나의 정다운 ‘님’에게 주고파라. 님은 솔 향기 속에서 찔레꽃 향기가 난다고 좋아하려나. 그런데 그 님은 지금 어디 있는가? 말 그대로 콩 팔러 갔는가, 팥 사러 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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