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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집 아이

스타벅스 같은 유명한 브랜드 커피 한 잔에도 헐값으로 일하는 커피 원산지 아이들의 땀과 눈물이 섞여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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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이 사랑의 징표로 선물하는 다이아몬드나 달콤한 초콜릿 속에도 제3세계 아이들의 땀과 눈물이 들어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슬프다 /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 모두 폐허다. - 황지우, <뼈아픈 후회>


“헤이~ 리Lee! 짜이, 짜이!”

아직 덜 깬 잠을 아쉬워하며 테레사 수녀의 봉사시설로 일을 나가던 이른 아침이었다. 숙소 맞은편에 인접한 골목 모퉁이에서 누군가 나그네를 불러 세웠다. 라주였다. 콜카타에 온 지 사나흘 되었다. 오며 가며 시간이 나면 라주의 찻집에서 차를 마셨다. 찻값이라고 해봐야 우리 돈으로 100~200원이나 할까? 소꿉장난에나 쓰일 법한 작은 잔에 따끈한 차 한 잔을 마시면 아침은 상큼하게 시작되고 저녁은 나른하게 마무리된다. 잠깐의 짬이 있을 듯하여 거의 습관적으로 라주의 가게에 앉았다.

인도에 한두 번쯤 가본 사람은 알 것이다. 거리마다 상점이라고 할 것도 없는 노점에서 연탄불에 주전자 하나와 흙으로 빚은 잔 몇 개를 놓고 파는 따끈하고 달콤한 한 잔의 차를. 언제 어디서든 가볍게 마실 수 있는 차의 이름은 ‘짜이’다. 커피우유쯤에 가깝다고 하지만 거기에 살짝 생강 맛도 나고, 인도식 마살라의 느낌도 나는데 마시다 보면 은근히 중독이 된다. 짜이 없는 인도 여행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며 짜이를 원 없이 마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도 여행은 여전히 퍽 매력 있는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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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카타의 수데르 거리는 늘 세계 각지에서 온 젊은 배낭여행자들로 북적이는데 이 거리에 며칠 머물게 된다면 저절로 하나쯤 단골 짜이 집이 생기기 마련이다. 5년 만에 찾은 수데르 거리는 지난 세월에 비해 그다지 변한 것이 없어 보였다. 유명한 ‘마리아’나 ‘파라곤’ ‘구세군’ 등의 여행자 숙소 맞은편 골목의 이 짜이 집이 이번 여행의 단골집이 되었다. 만으로 5년 만에 찾은 콜카타이기에 모든 것이 절반쯤은 낯이 익고 반가웠으며 또 그만큼 낯설고 조심스러웠다.

이 짜이 집의 주인도 면식이 있는 사내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으나 한두 번 가게 앞을 오가니 아는 체를 했다. 가게 주인뿐만 아니라 짜이를 끓여내던 아이 라주도 나그네가 그 어간을 지나고 있으면 어김없이 눈짓을 보내 자리에 앉히고야 만다. 낯선 나그네에게 알은 체하고 친한 척을 하는 데 인도인만큼 능숙한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사진을 찍어주고 보여주자 이 녀석, 제법 농담까지 던진다. 그렇게 오며 가며 딱히 마실 마음이 없는 짜이까지 합해 하루에 예닐곱 잔은 마신 듯하다. 어느새 나그네의 빈 주머니를 열게 하는 녀석의 수단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미얀마는 지리적인 위치 때문인지 절반쯤 태국이나 라오스의 느낌을 갖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인도와 비슷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남자들이 치마처럼 입는 넓은 천인 ‘론지’라든가 관광객을 태우는 인력거 등은 인도차이나의 다른 나라에선 볼 수 없지만, 인도와 인접한 나라인 미얀마의 수도 양곤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양곤을 대표하는 시장인 ‘보족 아웅산’ 시장에 갔을 때 나그네는 조금 익숙한 듯하면서도 어딘지 다른 느낌의 찻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분명 시장의 그늘 아래 낮은 의자에 철퍼덕 주저앉아 사람들이 마시고 있는 음료는 인도식 짜이였다. 배어나는 은은한 생강 맛이 조금 덜하다는 차이점만 있을 뿐 영락없는 짜이의 맛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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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생각부터 들어서 나그네 역시 그늘 아래 낮은 의자에 앉아 몇 잔의 차를 주문했다. 거기서 나그네는 미얀마의 아이로 변신한 라주를 만났다. 라주보다 나이도 적고 키도 작았지만 그 역시 차를 팔고 있었고 손님들에게 차를 나르고 있었다. 지나가며 관심을 보이는 행인들에게 짜이를 권하는 호객도 영락없는 라주의 모습이었다. 고백하건대 라주의 서늘한 눈매에서 읽히던 쓸쓸함과 그늘도 녀석에게 똑같이 보였다. ‘행복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라고 그때 라주의 눈매는 얘기했고 여기 보족 아웅산 시장의 찻집 아이의 눈망울도 말하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스폰서십을 자랑하며 세계인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음으로써 월드컵 특수를 톡톡히 누리는 나이키나 아디다스 같은 거대 브랜드에는 아시아 아이들의 피눈물 나는 고통이 담겨 있다고 들었다. 파키스탄의 아이들은 하루 1천 원 정도의 돈을 벌기 위해 열너댓 시간을 같은 자세로 앉아 축구공 꿰매는 일을 한다고 했다. 정작 그들이 가지고 놀 축구공은 하나도 없으면서 말이다. 스타벅스 같은 유명한 브랜드 커피 한 잔에도 헐값으로 일하는 커피 원산지 아이들의 땀과 눈물이 섞여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연인들이 사랑의 징표로 선물하는 다이아몬드나 달콤한 초콜릿 속에도 제3세계 아이들의 땀과 눈물이 들어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그런데도 많은 아이가 이런 돈벌이라도 없다면 살길이 막막하다며 모든 고통을 감수하고 산다.

가볍게 마셨던 짜이의 맛에는 결코 가볍게 마시지 못할 사연이 담겨 있었다.

※ 운영자가 알립니다.
<현자가 된 아이들> 연재를 마칩니다.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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