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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눈 사랑, 함께 떠난 사랑

그들의 사랑은 비극적으로 끝났지만 아마 영원의 세계에서 못다 한 사랑을 이루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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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 생명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망설임 없이 같이 손을 잡고 떠나기도 한다.

아침 신문에 40대에 사랑을 시작한 한 중년 커플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성폭행, 에이즈 환자와의 국제결혼 등 어두운 기사들 때문에 사회면을 펼치기가 두려운 세상에, 연인을 위해 췌장과 신장을 나누어준 한 중년 남성의 이야기는 따뜻한 봄바람만큼이나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었다.

우리는 가끔 “신장이야 어차피 둘인데 하나쯤 주면 어때?”라고 쉽게 생각하지만, 이것을 “신은 왜 인간에게 신장을 두 개나 만들어주었을까?”라고 바꾸어 생각해보면 문제는 달라진다.

신장은 많은 일을 한다. 신장이 두 개에서 하나로 줄어들면 한쪽 신장이 커지면서 두 개의 신장이 하던 일을 도맡아 하게 된다. 때문에 신장 공여자는 걱정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낌없이 한쪽 신장을 나누어준다.

그분들은 그나마 두 개여서 나누어줄 수 있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췌장은 좀 다르다. 췌장은 인체에서 수술이 가장 까다로운 부위 중 하나다. 또 췌장은 단 하나뿐이고 간처럼 일부를 잘라내면 나머지가 재생되는 기관도 아니다. 그런데도 한 남자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두 가지 모두를 기증했고, 기증받은 사람은 건강을 회복했다.

이것은 그야말로 사랑의 힘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같이 살고 같이 죽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또 사랑은 결과를 따지지 말고 늘 그렇게 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사랑의 결실도 늘 그렇게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김 간호사와 권 계장은 내가 좋아하던 분들이다. 김 간호사는 중환자실에서 내가 수술한 환자들을 성심으로 보살펴주던 하얀 천사였고, 권 계장은 환자에게 필요한 장비들을 수리하고 정비하는 의공학 기사였다. 중환자실에 즐비한 수많은 정밀기계들을 다루어야 하는 김 간호사와 기계들이 말썽을 일으킬 때마다 늘 고쳐주던 권 계장은 그렇게 중환자실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다.

김 간호사는 의식이 없는 중환자실 환자들의 시트를 갈면서도 늘 “죄송해요. 이불 좀 갈게요. 힘드시죠? 그래도 조금만 참으세요. 얼른 할게요.” 하고 귓속말을 전하던 고운 천사였고, 권 계장도 김 간호사가 요청하면 언제라도 달려와서 환자들의 생명을 유지하는 장치들을 손보고 점검해주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환자를, 또 한 사람은 장비를 돌보면서 둘이서 그렇게 중환자실을 든든하게 지키면서 서로의 사랑을 키웠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서 야유회를 갔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던 직원들은 폭포를 지나 자리를 잡았고, 계곡으로 흐르는 물이 폭포가 되어 떨어지는 절경에서 잠시 사진을 찍으면서 휴식을 취했다. 김 간호사와 권 계장도 두 사람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 서로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었다.

권 계장은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아래쪽 폭포를 배경으로 김 간호사를 세워두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러나 둘의 사랑을 시샘하는 운명은 가혹했다. 김 간호사가 서 있던 바위에서 미끄러지면서 폭포로 떨어진 것이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비가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폭포 아래에는 시퍼런 물이 커다란 소를 이루고 있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폭포 아래쪽으로 뛰어 내려갈 동안 권 계장은 뒤돌아볼 틈도 없이 그대로 수십 미터 아래 폭포로 뛰어내렸다. 그는 사랑하는 연인이 위험에 처한 것을 보고 잠시도 지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얼마 후 김 간호사는 이미 세상을 떠난 채로, 권 계장은 의식을 잃은 상태로 폭포에서 구조되었다.

권 계장은 사랑하는 연인이 의식 없는 환자들을 보살피며 늘 “죄송해요. 조금만 아프게 할게요.”라고 말하면서 지키던 그 병상에서 의식 없는 환자가 되어 누웠다. 권 계장의 침대 머리맡에는 김 간호사의 십자가 목걸이가 놓였지만, 사랑스럽고 고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 자리에 없었다.

권 계장은 나흘간의 사투 끝에 결국 김 간호사의 뒤를 따라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들의 사랑은 비극적으로 끝났지만 아마 영원의 세계에서 못다 한 사랑을 이루지 않을까. 이렇듯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 생명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망설임 없이 같이 손을 잡고 떠나기도 한다.

이런 사랑을 요즘 우리는 너무 쉽게 말하고 너무 쉽게 버리는 것은 아닌지.

함께 나눈 사랑, 함께 떠난 사랑, 서로 다른 두 가지 사랑에 눈물짓는 어느 날 아침이다.

착한 인생, 당신에게 배웁니다
박경철 저 | 리더스북 | 2007년 12월

시골의사 박경철이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이후 2년 만에 내놓는 에세이집. 작가가 신문, 잡지 등에 기고한 글과 따로 쓴 몇 편의 글을 모은 것이다. 작가 박경철은 그야말로 다방면에서 그의 다재다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다양한 일 중에서 하나만 택하라면 당연히 외과의사를 하겠다고 할 만큼 ‘의사’로서의 삶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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