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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오랜 시간의 아픔을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아픔도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픔을 통하지 않고는 절대로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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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고통의 시간이 있었다. 『연탄길』을 쓰면서 칠 년을 과로한 탓에 내 양쪽 귀에서는 전기톱으로 쇠를 깎는 소리가 들렸다. 1999년부터 지금까지 팔 년 동안 단 일 초도 멈추지 않고 들린다. 이명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음악도 밤낮으로 이십사 시간을 듣지 못한다. 쇠 깎는 소리가 8년이다. 미치지 않은 게 다행이다. 이명 때문에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달팽이 한 마리가 맨발로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느릿느릿 걸어가는 달팽이를 바라보며 한 꼬마 아이가 물었다.
“안녕, 달팽이야, 지금 어디 가니?”
“응, 산 속에 있는 옹달샘으로 물 먹으러 가는 중이야. 내가 사는 곳에는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물이 없거든.”
달팽이는 뿔처럼 생긴 눈으로 먼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꼬마 아이가 달팽이에게 다시 물었다.
“달팽이야, 너는 어디 사는데?”
“여기서 아주 먼 곳이야. 밤낮으로 3일 동안이나 걸어 왔어.”
“그렇구나. 그런데 어쩌니. 옹달샘에 가도 물이 없는데. 사람들이 바닥물까지 모두 퍼가버렸어. 산속에도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았거든….”
꼬마 아이는 혀를 끌끌 차며 달팽이에게 말했다.
“괜찮아. 내가 옹달샘에 도착할 때쯤이면, 물이 다시 고여 있을 거야. 나는 걸음이 너무 느려서 한참을 가야 하거든. 내가 좀 느리잖아.”
산속 옹달샘을 향해 달팽이는 가던 걸음을 계속 걸어갔다.
발바닥은 몹시 아팠지만, 달팽이는 웃으며 걸어갔다.

나에게도 고통의 시간이 있었다. 『연탄길』을 쓰면서 칠 년을 과로한 탓에 내 양쪽 귀에서는 전기톱으로 쇠를 깎는 소리가 들렸다. 1999년부터 지금까지 팔 년 동안 단 일 초도 멈추지 않고 들린다. 이명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음악도 밤낮으로 이십사 시간을 듣지 못한다. 쇠 깎는 소리가 8년이다. 미치지 않은 게 다행이다. 이명 때문에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명에도 종류가 있다. 매미 우는 소리, 귀뚜라미 소리, 물소리, 아기 울음소리,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 견딜 수 없는 최악의 소리는 전기톱으로 쇠를 깎는 소리다. 주파수가 가장 높은 고음이기 때문이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이다. 이명과 같이 동반되는 증상은 불면증, 우울증, 어지럼증, 심한 경우에는 자살충동이다. 나는 불면증과 우울증과 어지럼증으로 시달렸다. 이명 때문에 생긴 병이었다. 차라리 죽고 싶었다. 그냥 죽고 싶은 것과 정말 죽고 싶은 것은 많이 다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음을 생각했다. 하얀 상복을 입고 내 영정 사진 앞에 앉아 울고 있는 아내와 어린 딸아이의 얼굴이 자꾸만 보였다. 아주 가끔씩 환청도 들렸다.

이명으로 인한 심한 어지럼증으로 길을 걸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외출해야 할 때면 지팡이를 손에 들었다. 지팡이가 창피한 날은 지팡이 대신 딸아이의 킥보드를 가지고 다녔다. 킥보드를 지팡이 삼아 밀고 다니면 그래도 덜 창피했다.

방송국에 가는 날이었다.
“아빠가 어지러워서 그러는데 이 킥보드 좀 가지고 가면 안 될까?”
“아빠… 나 지금 친구들하고 킥보드 시합하고 있는데….”
어린 딸아이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늘 하루만 아빠가 가지고 나갈게. 오늘 하루만….”

딸아이는 잠시 망설이더니 킥보드를 내게 내주었다. 아빠가 어지러워서 걸음을 잘 걷지 못한다는 것을 아이는 알고 있었다. 나는 킥보드를 지팡이 삼아 바퀴를 굴리며 천천히 걸어갔다. 킥보드를 내게 내주고 아이들 옆에 서 있는 어린 딸을 돌아보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이명은 점점 더 심해졌고 우울증도 깊어졌다. 악마 같은 이명은 나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글 쓰는 일도 그만두었고, 학생 가르치는 일도 그만두었다. 하나님께 매달렸지만 이명과 우울증은 낫지 않았다. 우울증이 깊어지면서 기도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바보가 되어가고 있었다. 신경정신과에서 우울증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이명을 치료하기 위해 여기저기 많은 병원에도 다녔다. 양방은 물론 한방치료까지 꾸준히 받았지만 모두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명은 수술법도 없고 약도 없다고 의사들은 말했다.

우울증약 쎈시발은 나를 조금씩 일으켜주었다. 하나님께 다시 기도할 수 있었다. 이명을 고쳐주실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몇 시간씩 기도했다. 지옥 같은 고통에서 조금씩 일어설 수 있었다. 이명의 고통은 여전했지만, 그 고통 속에 갇혀 있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견딜 수 있는 힘이라도 달라고 기도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났다. 그리고 다시 봄이 왔다. 이명과 우울증과 어지럼증은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다. 아니, 더 심해졌다. 절망이 악어처럼 입을 벌리고 나를 삼키려고 했다.

주일 예배 때, 목사님의 설교도 들을 수 없었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큰 소리가 내 귀에는 천둥처럼 찢어졌다. 이명 때문이었다. 이명이 심한 사람은 큰 소리를 견디지 못한다. 본당에서 예배를 드릴 수 없었다. 아기 엄마들과 어린아이들이 예배를 드리는 자모실에 가보았다. 그곳의 마이크 소리도 천둥처럼 찢어졌다. 본관 2층에 있는 화장실에도 가보았다. 그곳에서라도 예배를 드리고 싶었지만, 목사님 목소리가 너무 희미하게 들려왔다. 냄새 나는 화장실은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믿음이 깊어서가 아니었다. 화장실에서라도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하나님께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하나님께 매달리고 싶었다. 더는 물러설 수 없는 곳에 서면,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도 될 수 있고, 개도 될 수 있는 게 사람이다. 내가 딱 그랬다. 할 수 없이 예배당 밖에서 예배를 드렸다.

예배당 창문 옆에 바짝 붙어서 목사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비가 오면 우산을 썼고, 눈이 오면 눈을 맞았다. 일 년이 넘도록 예배당 창가에 서서 예배를 드렸다. 이명과 우울증과 어지럼증은 좋아지지 않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에게 사람들은 “죽을 용기로 살지”라고 쉽게 말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가보지 않은 길은 아무도 모른다. 정상적인 사람들이 충동적인 자살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자살의 전 단계는 거개가 깊은 우울증이다. 깊은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용기가 없다. 용기가 있어서 죽는 게 아니라 용기가 없어서 죽는 것이다.

우울증은 티라노사우르스의 발바닥이 되어 사람의 용기부터 짓밟아 놓는다. 손톱만큼의 희망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이성적인 생각들이 모조리 차단된다. 얼굴에는 우울의 두터운 가면을 쓰고, 독한 우울증 약은 입속의 혀를 꽁꽁 묶어 놓는다. 말을 할 때마다 혀가 꼬여 발음이 허공 속을 굴러다닌다.

종일 어두운 방 안에 누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린 딸이 내 가슴에 안겨 말없이 눈물 흘릴 때도 나는 마음을 세울 수 없었다. 딸아이가 힘내라고 써온 편지를 어두운 방 벽에 붙여놓았다.

사랑하는 아빠에게

아빠, 아프지 마. 맨날맨날 방 안에만 누워있지 말구.
귓소리 괜찮아질꺼야.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으니까….
아빠 빨리 이러나서 소풍가자.
나는 엄마하고 아빠하고 소풍가는게 제일로 좋거든.
아빠 힘내. 꼭꼭.
아빠, 너무너무 사랑해.

어린 딸의 편지를 읽고 또 읽었지만 나는 일어설 수 없었다. 야윌 대로 야윈 내 뺨 위로 눈물만 흘러내렸다. 이명과 우울증과 어지럼증과 불면증은 내 숨통을 꼭 쥐고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영혼을 뜯어먹는 악마의 이빨은 내 귀에 대고 죽음을 속삭였다. “삶은 슬픈 거라고, 삶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두 눈 가득 핏발을 세우고 내게 속삭였다. 자살 충동이 시시각각으로 내 숨통을 조여 왔다. 나는 내가 무서웠다.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매일매일 마셨다. 아침에 눈을 뜨면 술을 사러 나갔다. 술 한 병을 마시고 나면 한 시간 동안은 이명 소리가 작아졌다. 술이 깨면서 이명 소리는 두 배 세 배 더 커졌다. 그런 줄 알면서도 매일매일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신 건 내가 아니라 절망이었다. 아내와 어린 딸아이에게 미안해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어두운 방에 앉아 혼자 술을 마셨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미칠 것 같았다. 불안 때문에 미칠 것 같아 아침부터 술을 마셨다. 알코올 중독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 믿는다는 놈이 한 달이 넘도록 그 짓을 했다. 한 달이 조금 지날 무렵부터 술을 마시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딸에게, 아직도 나비잠을 자는 어린 딸에게, 아침부터 술을 마셔야 하는 아빠의 절망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착한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내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우리 같이 기도해요.”
“너나 많이 해. 나는 기도 같은 거 안 해.”
목울대를 세우고 말했지만 진심은 아니었다. 막말을 하기에는 내 안의 하나님이 너무 컸다. 하지만 기도는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렀다. 나는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아내는 나를 위해 새벽 예배를 다니기 시작했다. 새벽 예배를 다녀온 아내가 말했다.
“오늘 새벽, 교회 가는 길에 한 할아버지를 만났어요. 중풍에 걸리셨는지 걸음걸이가 많이 불편해 보이시더라고요. 부축해드리려고 가까이 갔더니 할아버지가 웃으시며 괜찮다고 하셨어요. 할 수 없이 앞서 걸어가는데, 뒤에서 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렸어요. 할아버지는 한 걸음 한 걸음 걸음을 뗄 때마다 ‘주여, 힘을 주세요. 주여, 힘을 주세요’ 하시더라고요. 어찌나 눈물이 나오던지요….”
아내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눈물을 감추려고 나는 고개를 숙였다.

다음 날 아침, 하나님은 내 무릎을 꺾으셨다. 나는 나를 송두리째 던져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도가 아니라 전투였다. 온종일 어두운 방에 엎드려 기도했다. 기도하다 지치면 쓰러졌고, 다시 정신이 들면 기도했다. 전투는 한 달이 넘도록 계속 됐다. 기도는 나를 낮추는 시간이었다.

하루는 머리가 텅 비워지면서 한 줄기 빛이 마음 깊은 곳을 파고들었다.
“하나님, 제가 이렇게 고통스럽게 눈물을 흘리는데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지요?”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네가 눈물 흘릴 때마다, 내가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아니?”
“하나님, 제발 저를 고쳐주세요. 저, 이대로 가면 죽어요….”

아무도 없는 어두운 방에서 간절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불렀다.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너를 통해 나의 뜻을 이룰 때까지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하나님, 이 고통을 이길 수 있게 해주세요. 다시 일어서면 저 하나만을 위해 살지 않겠습니다. 저보다 어려운 사람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겠습니다.”

어두운 방안에서 하나님과 나는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다. 나는 소리쳐 말했지만, 하나님은 침묵으로 말하셨다. “하나님….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려면 제가 쓴 『연탄길』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책 수익금으로 하나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온종일 엎드려 기도했다. 마음 깊은 곳에 응답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나는 그때부터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제가 텔레비전에 나가서 한 시간 동안만 『연탄길』에 대해서 말할 수 있게 해주세요. 『연탄길』에 날개를 달아주세요.”

말도 안 되는 기도였다. 이루어질 가능성이 전혀 없는 기도였다. 아무것도 아닌 무명의 글쟁이를 방송국에서 부를 리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매일매일 말도 안 되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 『연탄길』은 나의 두 번째 책이다. 말이 좋아 글쟁이지, 나를 글쟁이로 인정해주는 사람은 아내를 빼고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 후로 나는 기나긴 어둠의 터널을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어둠의 그림자가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가까운 곳에 빛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두려움을 벗어 버렸을 때 용기가 열리기 시작했다. 파랑새 한 마리가 궁둥이를 딸막거리며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 사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지났다. 뜨거운 여름 동안에도 나는 기도의 끈을 놓지 않았다. 나의 기도는 지평선을 넘어 가고 있었다. 지평선 너머로 아슴아슴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을의 끝자락, 아침부터 전화벨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KBS방송국 표만석 PD입니다. 이철환 선생님을 ‘TV, 책을 말하다’에 초대하고 싶어서 전화드렸습니다. 저희 프로에 나오셔서 『연탄길』을 말씀해 주세요. 방송 시간은 한 시간입니다.”

소름이 돋았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화살처럼 떨어지는 눈물을 닦았다. 다음 날, 나는 KBS방송국으로 갔다. 친절한 PD분은 방송국 위층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한 분을 소개받았다. ‘TV, 책을 말하다’ 책임 프로듀서였다. 그분은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그는 사무실 한쪽에 있는 책꽂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연탄길』은 우리가 연말에 특집으로 방송하려고 지난 7월부터 준비해 두었던 책입니다.”

7월은 내가 『연탄길』을 위해 가장 치열하게 기도했던 시간이었다. 내가 쓰러져 기도했던 그 해 7월, 하나님께서는 ‘TV, 책을 말하다’ 책임 프로듀서 책꽂이에 『연탄길』을 꽂아 놓으셨던 것이다.

‘TV, 책을 말하다’에서 『연탄길』 편이 방송 되었다. 독자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뜨거웠다. 주문이 너무 많아 대형 서점에서 일시 품절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교양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은 TV방송의 힘이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방송에서 한 시간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모두 다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일시적으로 주목받는 책도 있지만, 대부분의 책은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경력이 20년이 넘은 한 출판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방송에서 한 시간을 이야기해도 최고로 많이 나가봐야 10만 부라고 했다. 그것도 몇몇 책들만 그렇다고 했다. 『연탄길』은 360만 부가 나갔다. 방송의 힘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많은 판매 부수다. 『연탄길』을 'MBC 느낌표 선정도서'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니었다. 방송의 힘은 인정하지만, 『연탄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시나리오였다. TV 방송에 소개된 것도 하나님의 시나리오였다.

『연탄길』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그 후 나는 각 방송사의 TV 프로그램에 초대되었다. 라디오 방송의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청소년 상담 프로그램에 고정 패널로 출연하기도 했다. 신문과 잡지의 인터뷰 요청도 많았고, 대학교와 기업체에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강연 요청이 들어왔다. 원고 청탁도 줄을 이었다.

7년이 지난 지금도 『연탄길』은 스테디셀러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지키셨다. 오히려 지금은 그래도 자유로운 편이지만, 『연탄길』이 전국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주목받고 있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인세 수익금이 내 돈 같지 않았다. 전철과 버스가 모두 끊어진 밤늦은 시간에도 나는 택시를 탈 수 없었다. 차가운 새벽바람을 맞으며 집까지 한두 시간을 걸어가야만 했다. 겨울 외투 하나를 장만하지 못하고 늘 빛바랜 외투를 입고 다녔다. 어린 딸에게 예쁜 인형 하나도 사줄 수 없었다. 가족과 함께 근사한 저녁 한 번 먹을 수 없었다. 가난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바꾼 인세 수익금을 함부로, 내 멋대로 쓸 수 없었다.

착한 마음 때문이 아니었다.
양심 때문도 아니었다.
하나님이 무서웠다.
하나님과의 약속이 나는 무서웠다.

<연탄길 나눔터> 사무실을 얻었고, <연탄길 나눔터 기금> 통장도 만들었다. 봉사 단체를 만들어 무의탁 할머니들이 살고 계신 <덕성 사랑의 집>을 방문했다. <성모 자애원>을 방문해서 상처받은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전부는 아니지만 『연탄길』의 수익금은 <연탄길 나눔터 기금>을 통해 여러 곳에 보내졌다. 지금까지 내가 쓴 책들 중 3권은 저자 수익금 전액을 후원금으로 보내고 있다. 나머지 모든 책들도 저자 수익금의 10%를 후원금으로 보내고 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빛을 주었고, 심장병을 앓고 있는 어린아이들에게 새 생명을 주었다. 무의탁 노인들과 부모 없는 아이들에게 국과 밥이 돼 주었고, 집이 없는 행려병자들에게 주사약과 치료약이 돼주었다. 장애우들을 위한 전동 휠체어도 돼주었다. 맹세코, 후원금을 보내는 일은 내가 하는 일이 아니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나는 내 것을 쉽게 나눌 수 있는 놈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 건너가라고 내 등짝을 선뜻 내줄 수 있는 놈이 아니다.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후원금을 보내는 일은 자랑도 아니고 크리스천의 신념도 아니다. 착한 일을 해서 천국에 가고 싶은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내 몸에 불을 켜려는 개수작은 더욱 아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을 것 같았다.

오랜 시간의 아픔을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아픔도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픔을 통하지 않고는 절대로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2007년, 내 양쪽 귀의 이명은 여전하다. 하지만 충분히 견딘다. 어지럼증도 없어졌고 지팡이도 필요없다. 우울증과 불면증도 없어졌고, 3년 동안 먹었던 우울증약도 먹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메마른 얼굴을 털고 일어서던 날, 세숫대야에 물을 떠다가 어린 딸의 발을 닦아 주었다.

“미안해… 아빠가, 너무 미안해…”

나는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어린 딸 아이 앞에서 소리 내어 울었다.

『연탄길 1,2,3』이 나온 뒤에 『행복한 고물상』『곰보빵』『보물찾기』『못난이만두 이야기』가 출간되었고, 그림동화책 『송이의 노란 우산』『낙타 할아버지는 어디로 갔을까』가 출간되었다. 『연탄길』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책들도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독자들의 눈물겨운 사랑이었다. 어머니와 아내와 두 딸아이의 기도였다. 나를 위해 기도해준 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사랑이었다.

이명을 고쳐달라는 나의 기도를 하나님은 아직 들어주지 않으셨다. 사람이 생각하는 기도의 응답 방식과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기도의 응답 방식은 달랐다. 이명을 없애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나에게 더 이로울 거라고 하나님은 생각하셨는지도 모른다. 이명이 없어졌다면 나는 더 큰 병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에게 박수받는 일이 좋아서 몸을 돌보지 않고 곱추춤을 추었을지도 모른다. 잘 쓴다고, 잘 쓴다고 고개 장단을 맞춰주는 사람들을 위해 못 쓰는 글을 미친놈처럼 써댔을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잘난 체를 하고 어깨에 힘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많은 돈이 생겼으니 더 많은 돈을 탐했을지도 모른다. 앉으면 기대고 싶고, 기대면 눕고 싶은 게 사람이다. 나는 나를 믿지 않는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다.

아주 잠깐 동안이었지만, 최고가 된다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박수를 받는다는 것이 허방다리라는 것을 알았다. 폭격기 사랑은 별똥별의 섬광처럼 아주아주 짧다는 것을 알았고, 별은 별처럼 생기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씨를 퍼뜨리기 위해 열매를 맺는 돌배나무는 되지 말자고 다짐했다.

바람 불지 않는 인생은 없다.
바람이 불어야
나무는 쓰러지지 않으려고 더 깊이 뿌리를 내린다.
바람이 나무를 흔드는 이유다.
바람이 우리들을 흔드는 이유다.
아무리 험한 산도
그 가슴 속 어딘가에는 오를 수 있는 길이 있다.

삶은 때때로 우리들에게 선물 상자를 준다.
아픔이라는 끈을 풀어야만 가질 수 있는 선물이다.
아카시아나무의 가시는 제 몸을 찌르지 않는다.

글쓰기를 통해 나는 나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글쓰기를 통해
나는 나를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고쳐나갈 수 있었다.
친구의 슬픔을 위로해주는 것보다
친구의 기쁨을 축하해주기가 더 힘든, 돼먹지 못한 나를 향해
사정없이 주먹질, 발길질도 할 수 있었다.

지난한 삶은 삶의 비의를 가르쳐주고 삶의 감사를 가르쳐준다.
달개비꽃처럼 멍든 가슴으로도 우리는 사랑을 배운다.
반성과 겸손을 통해 우리들은 세상과 대결하는 방식을 배운다.
올바른 것도 진실이지만 뉘우침도 진실이다.
삶의 문제는 슬픔이 아니다.
슬픔을 해석하는 우리들의 방식이다.
화살은 우리들 심장 속에 머물지 않는다.

화면 가득 비가 내리는 흑백 영화처럼
나는 나의 그늘을 인정해야 한다.
삶이 밟고 간 자리마다 꽃은 피어난다.
아픔이 코뿔소처럼 밟고 간 자리마다 꽃은 피어난다.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는 없지만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기를 수는 있다.
문학을 위해 나는 나를 반성해야 하고, 나는 진실해야 한다.

내가 소리를 지른다고 타잔이 되는 것은 아니다.
타잔이 되기 위해 내가 소리를 지르는 것도 아니다.
삶의 삼투압이 스며 있는 글을 쓰고 싶은 것이다.
감각이 진실을 뛰어 넘지 않고,
인간의 사랑이 윤리가 되는 글을 쓰고 싶은 것이다.
나의 지평선을 넘어 지붕 낮은 집 유리창마다
노오란 불빛을 매달아주고 싶은 것이다
화살처럼 떨어지는 절망의 맨발 아래
스카이콩콩을 놓아주고 싶은 것이다.
나를 지독히 속이지 않는 글을 쓰고 싶은 것이다.

빛은 어둠이다. 어둠은 빛이다.
어두워야만 빛나는 것들이 있다.
고통은 대문처럼, 입구이면서 동시에 출구다.
나무와 풀꽃들은 어둠을 불평하지 않는다.
비바람이 팔 다리를 꺾어도
나무와 풀꽃들은 소리 없이 자란다.

아픔도 길이 된다.
슬픔도 길이 된다.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달팽이가 되어 그 길을 달려가리라. 불빛처럼. 불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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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사람, 작가 김신지의 에세이. 지금 이 순간에 느낄 수 있는 작은 기쁨들, ‘제철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1년을 24절기에 맞추며 눈앞의 행복을 마주해보자. 그리고 행복의 순간을 하나씩 늘려보자. 제철의 모습을 놓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은 우리 곁에 머무를 것이다.

2024년 런던국제도서전 화제작

실존하는 편지 가게 ‘글월’을 배경으로 한 힐링 소설. 사기를 당한 언니 때문에 꿈을 포기한 주인공. 편지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모르는 이와 편지를 교환하는 펜팔 서비스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성장해나간다. 진실한 마음으로 쓴 편지가 주는 힘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소설.

나를 지키는 건 결국 나 자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물질적 부나 명예는 두 번째다. 첫째는 나 자신. 불확실한 세상에서 심리학은 나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무기다. 요즘 대세 심리학자 신고은이 돈, 일, 관계, 사랑에서 어려움을 겪는 현대인을 위해 따뜻한 책 한 권을 펴냈다.


문화지원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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