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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랑 칼럼] 예능인 백종원과 사업가 백종원

윤아랑의 써야지 뭐 어떡해 - 마지막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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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패커>, <장사천재 백사장>, <흑백요리사>, 그리고 자신의 유튜브 채널 등에서 자신의 이념을 웃음과 함께 꾸준히 밀어붙이려는 그를 보고 있으면, 나는 사상가-사업가 백종원의 행보가 자꾸만 신경 쓰인다. (2024.10.11)

남들과 비슷하게, 나 역시 요즘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요리사>)을 보고 생각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원래는 먹방·쿡방으로 분류되는 쇼 장르에 별 관심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요리하는 걸 좋아하긴 하나, 남들이 하는 것까지 굳이 구경하고 싶은 마음은 없던 것이다. 하지만 백종원의 행보에 나름 큰 관심을 갖고 있기도 하고, 지금껏 방영됐던 국내의 다른 요리 예능에 비해 <흑백요리사>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분명 다른 방식과 질감으로 펼쳐지고 있기에, 결국 호기심에 못 이겨 <흑백요리사>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의 푹 빠졌다.

물론 푹 빠졌다고 해서 순전히 재밌게만 보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떤 출연자의 행동에 의심이 가거나 동의할 수 없는 순간들이 분명 있고, 팀전 다음에 바로 다시 팀전이 이어지고 거기서 갑자기 팀원을 방출시키는 구성은 잘못된 전개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포인트가, (담백한 캐릭터 스터디에 가까웠던 초반부에 확 변주를 주는 식으로써) 무언가 그럴듯한 판단을 내리고 싶어 하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더더욱 고조시킨다는 건 부정하기 어려우리라. 가령 유튜브에 <흑백요리사>를 검색하면 이에 대한 ‘리액션’과 ‘분석’으로 반사이익을 누리려는 콘텐츠들이 넘쳐나지 않던가? 드라마 <더글로리> 이후 한국산 넷플릭스 오리지널 중 최고 흥행작이란 명성에 걸맞게, <흑백요리사>의 흥행 비결에 대하여 수많은 ‘글쟁이’들이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내 생각에는 이런 쇼 내적인 불균질성도 흥행에 분명한 한몫을 하고 있다.

하나 이 글은 <흑백요리사>에 대한 리뷰가 아니다. 적어도 이를 목표로 삼고 있진 않다. 내가 여기서 얘기하고 싶은 건 <흑백요리사>의 심사위원 중 하나인 백종원에 대한 것이다. 그가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것을 두고 사람들 사이에 ‘백종원 단물 다 빠져서 지겹다’라는 식의 반응이 왕왕 있었는데, 개드립넷의 누군가가 이에 대한 반박 격으로 「백종원이 아니라 이름이 산체스라고 생각해 봐라」라는 제목의 글을 쓴 바 있다. 대강 인용해보겠다. “기업가치 4000억 / 연 매출 3000억 지점 1000개 / 증권시장 상장 준비 중인 / 요식업체 CEO (…) Plane bacon BBQ의 창시자 (…) 이런 산체스가 / 한국에 와서 요리심사를 보는데 / 뇌절이냐 ㅋㅋ” (글을 쓴 이는 백종원이 서구권으로 출장 나갈 때 쓰는 닉네임이 ‘산체스’란 걸 알고 있었을 게다.)

어쩌면 이 글에 무의식적으로 깔린 문화 사대주의를 먼저 비판할 수도 있을 테다. (왜 이런 비교를 할 때 굳이 대상을 서양인으로 상상하나?) 하나 그보다 더 필요한 태도는 이 글의 전제를 거꾸로 뒤집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이 모든 성과에도 불구하고 백종원은 왜 다수의 한국인에게 웃기고 친근하게 먼저 느껴지는가? 당연하지만 나는 지금 백종원이 안대를 쓰고 음식을 받아먹는 저 유명한 장면만 떠올리고 있지는 않다. 또 오랜 방송 출연 속 적절한 이미지 메이킹이 (중요하긴 하나) 그 유일한 원인이라고도 생각치 않는다. 아니면 질문을 비트는 게 더 적합할 수도 있겠다. 예능인 백종원과 사업가 백종원은 대체 어떻게 양립하는가?

이젠 기억하는 이가 많지 않겠지만, 지금과 같은 명성을 얻기 전인 2009년에 그는 『백종원의 식당 조리비책』이란 책을 낸 적이 있다. “식당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대용량 레시피 대공개”란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 이는 가정주부를 타깃 삼은 기존의 요리책과 달리 한식 식당을 운영하는 업자를 타깃 삼은 책이었고, 당시 백종원은 이미 새마을식당, 빽다방 홍콩반점0410 등을 프랜차이즈화해 운영하고 있었다. 달리 말해 그는 ‘”외식 경영 전문가”로서 공개할 필요가 없는 노하우를 일찍이 대대적으로 공개했던 것이다. 요리책으로 얻을 수익과 노하우를 비공개로 전수하면서 얻을 수익 중 어느 쪽이 더 클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금방 답이 나올 테다.

당신께선 다음처럼 반문할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알 듯 백종원의 요리 노하우는 엄청 대단하고 맛있는 게 아니라 적당히 가성비를 추구하는 방법일 뿐인데, 그런 그를 자선가 마냥 묘사하려는 건가? 당연히 백종원은 전업 요리사도 자선가도 아니다. (프랜차이즈를 확장하고 다루는 “효율적” 방식에서도 알 수 있듯, 의심의 여지 없이 그는 냉혹한 자본가다.) 하나 여기서 중요한 건 백종원이 레시피를 유포함으로써 가성비에의 추구를 좀 더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는 사실이다. 만약 그에게 있어 가성비에의 추구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 중 하나라면 어떨까?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울려 퍼지던 그의 유행어 “그럴싸하쥬”나, 호텔 더본 제주의 (관광객들의 평균적인 여로에 따른) 철저한 가성비 지향적 구조 등이 그 자신의 이념에 따른 결과물이라면?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아직 기억한다면, 여기서 백종원이 컨설턴트로서 요식업 점포들에 제공한 ‘솔루션’이 요리에 국한된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것 역시 떠오를 게다. 극단적인 사례지만, 서울 포방터시장의 홍탁집에 제공된 ‘솔루션’은 사장의 아들이 가게 운영에 참여하도록 훈련시키는 것이지 않았던가. 이 외에도 매번 메뉴 가짓수를 간소화하고 적극적인 접객 서비스를 촉구하는 등, 그는 모종의 총체로서 식당의 질을 다소 높이고 평준화하는 데에 열을 올렸다. 이를 앞서 거론한 사례들과 겹쳐볼 때 우리는 그의 이념을 짐작할 수 있다. 사업가로서 백종원은 단지 가성비에 대한 대중의 수요를 충족시키려는 사람이 아니라, 요리에 있어 맛과 가격과 서비스를 가능한 평준화한다는 이념을 갖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려는 사람인 것이다. 종종 이념이 사업을 초과하더라도, ‘적당한 식사’의 지표를 세우기 위하여. 거창하게 말하자면 사상가-사업가랄까? (사실 이런 성격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건 예산시장 살리기 프로젝트인 유튜브 콘텐츠 <백종원 시장이 되다>이다)

물론 (테슬라를 숭배하는 이들 마냥) 그를 순전히 찬양하려는 건 절대 아니다. 가령 평준화에 대한 굳은 확신은 그의 브랜드가 그저 ‘싼 맛’으로 사람들에게 각인되는 걸 막지 못했을뿐더러 몇몇 개인 요식업자들로 하여금 그에게 ‘브랜드 빌런’ 같은 오명을 붙이게끔 만들었다.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이념이 늘 그에 걸맞은 결과를 내놓지는 못한다는 걸, 우리는 여기서도 새삼스레 확인하는 것이다. 그 점에서 사상가 백종원은 분명 어느 정도 실패를 했다. 하지만 최근 <백패커>, <장사천재 백사장>, <흑백요리사>, 그리고 자신의 유튜브 채널 등에서 자신의 이념을 웃음과 함께 꾸준히 밀어붙이려는 그를 보고 있으면, 나는 사상가-사업가 백종원의 행보가 자꾸만 신경 쓰인다. 그 점에서 예나 지금이나, 내게 백종원은 극렬한 애증의 대상이다.

하지만 명심하자, 예능인 백종원은 사업가 백종원의 일부거나 그로 내삽되는 게 아니다. 백종원을 ‘겉으론 웃기지만 실은 냉혹한 사업가’로만 생각해선 안 된다는 말이다. 애초에 우리가 그를 그렇게만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안대를 쓴 채 음식을 받아먹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사상가-사업가로서 온전히 설명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의 특징적인 둥글둥글한 외모나 구수한 말투 그리고 화법은 자꾸만 사업가 백종원을 초과해 그 자체로 기능한다. 즉 예능인 백종원은 사상가-사업가 백종원의 이미지 메이킹을 넘어 분리된 존재감을 발휘하며, 때론 그 역할을 배반하기도 하는 것이다. 계속 자신은 전문 예능인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는 충분한 재능의 예능인이다. (그리고 이 점이 ‘전문가 예능’의 다른 대표주자인 오은영과 강형욱으로부터 백종원을 결정적으로 분리한다)

‘나’라는 존재가 순수하게 주어지는 게 아니라 연기/수행(Perfomance)의 과정과 간격 속에서 생성된다고 논한 질 들뢰즈를 따른다면, 우리는 우스꽝스러운 예능인 백종원과 영악한 사업가 백종원이 동등하게, 종종 뒤섞이며 활동한다는 걸 문자 그대로 생각해야 한다. 동시대의 아이콘으로서 백종원은 바로 그런 복합적이고 역설적인 방식으로써 존재하며, 우리네 세계 역시 바로 그렇게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어도 지금까지 <써야지 뭐 어떡해>의 여러 칼럼에서 나는 이를 잘 논하려 꾸준히 애썼다. 당연하지만, 그것이 당신께 닿았는지는 별개이다.


*지금까지 윤아랑의 <써야지 뭐 어떡해> 연재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젠가 다른 자리에서 더 재밌는 글로 다시 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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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아랑(평론가)

비평가. 대중문화와 시각예술을 주로 다루며, 주체성과 현실 감각을 문제 삼는 문화비평에 관심이 있다. 지은 책으로 『뭔가 배 속에서 부글거리는 기분』(2022),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공저, 2023), 『악인의 서사』(공저, 202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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