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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에세이스트] 10월 우수상 - 그의 별명은 미친개였다

살면서 가장 억울했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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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별명은 미친개였다. 폭력이 학교에서 은연하게 허용되던 시대가 낳은 인간과 개의 혼종. (2021.10.07)

언스플래쉬

그의 별명은 미친개였다. 폭력이 학교에서 은연하게 허용되던 시대가 낳은 인간과 개의 혼종. 학년 구별 없이 어떤 학생에게든 은총을 내리듯 자연스럽고도 편안하게 손찌검, 발찌검을 하던 그에게는 우리가 여고생이라는 것과 그가 선생이라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러니 그날도 마찬가지로 미친개에겐 아주 평범한 ‘폭력의' 날이었을 것이다.

친구 둘과 함께 만날 그렇듯 점심시간 동안 학교 앞 문방구인가 분식집인가를 향했다. 성장은 멈췄지만 늘 입이 심심하던 열여덟의 한여름, 떡볶이인가 핫도그인가를 사 먹고 들어오는 길에 하필이면 미친개를 마주쳤다. ‘하필이면'인 이유는 그가 미친개라는 교내 대명사라서가 아니라 마침 우리가 실내화를 신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복 치마 아래에 체육복을 입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내화를 신고 교문을 나서는 것은 절대적인 금기사항이던 시절이다. 쩡쩡거리는 불호령에 불려 간 우리는 알고 보니 우리가 아니었다. 그는 나를 지목한 것이다. 미친개는 다짜고짜 내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양갈래로 머리를 땋고 있다 풀은 탓에 꼬불꼬불해진 머리칼을 낚시질 하듯 이리저리 휙휙 돌려댔다. 한껏 잡아당겨진 내 눈초리가 점점 사나워질 때쯤 안경 너머 번뜩이는 눈으로 그가 물었다.

“너거 아빠 뭐하노”

영화 대사가 아니다. 정말이다. 미친개는 느닷없이 호구조사를 시작했다. 선생이 물으니 학생이 대답하는 게 인지상정. 솔직하게 가정사를 말했다.

“아빠 없는데요.”

그런데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미친개는 째진 눈을 부라리며 내 뺨과 머리통을 때렸다. 살다 살다 그렇게 억울하게 맞아본 적은 그 전으로도 그 후로도 없다. 없는 걸 없다고 하지 뭐라고 해야 하나. 다시 말해 봐라! 아빠 없다고요! 난 악을 쓰며 말했고 그는 악을 쓰며 때렸다. 딩동댕, 수업종이 날 살렸다. 끝까지 매섭게 저를 쳐다보는 내게 ‘내일 3학년 교무실로 찾아오라’는 말을 남기고 미친개는 떠났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가슴에 피가 맺혔다. 고2 여름, 처음으로 폭력의 무자비함과 수치심을 느꼈다. 눈물이 폭우처럼 쏟아지고 화와 억울함, 분노가 폭우에 섞여 들었다. 한 친구는 ‘니 이래 우는 거 처음 봤다’며 어쩔 줄 몰라 교내 동상처럼 서 있었다. 그토록 두들겨 맞은 것도 그것을 목격한 것도 우리에겐 모두 처음이었다.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었다. 난 다음날 곧장 3학년 교무실로 찾아갔다. 미친개와 눈이 마주쳤다고 느끼는 순간, 바로 곁에 있던 수학선생님이 말을 걸었다. 가끔 뵐 때마다 나를 예뻐하던 선생님이다. 미친개는 흘끔이며 보더니 이제 그만 다 귀찮아진 건지 아는 체도 없이 자리를 떠났고 나도 다시는 그를 찾아가지 않았다.

물론 그 이후에도 종종 그의 모습은 볼 수 있었다. 매점 가는 길, 엎드려뻗쳐하는 몇 명의 여학생 앞에서 부목을 들고 서서 험한 문장들을 내뱉거나 누군가의 볼이 벌게질 때까지 때리고 있었다. 처음엔 그런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칼이 쭈뼛 서고 울컥 화가 치밀었지만 이내 무심한 타인처럼 ‘하던 거 하네'하며 지나갔다. 그날의 울분을 기억 저 구석으로 온 힘을 다해 밀어낸 결과였다. 

이제와 생각한다. 만약 그날로 돌아간다면 상황을 바꿀 수 있을까. 잡힌 머리채를 살살 빼내며 여기에 잠시 오해가 있음을, 이건 파마가 아니라 몇 시간 한정의 굴곡임을 설득시킬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니면 내 나이 여덟 살 때부터 부재했던 아빠라는 존재를 선선히 이해시킬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어쩌면 시간을 돌리는 것보다도 굳어진 사람의 심지를 푸는 게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자기가 사고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자기의 영역 안에서 말하고 행동한다. 그는 분명 솔직함보다 반항에 납득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스무 번을 돌아 다시 여름이다. 뜨거운 태양빛과 푸른 나뭇잎들이 넘쳐흐른다. 하지만 분명 어딘가에는 여전히 미친개라는 인간과 개의 혼종이 다른 얼굴을 하고 으르렁대고 있을 것이다.




*윤신

남학생들은 운동화를 신고 교내에 들어가서 혼나고 여학생은 실내화를 신고 교외로 나와서 혼난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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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신(나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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