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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언 칼럼] 회사가 사람 잡네

<월간 채널예스> 202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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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나를 죽이는 것 같지만 사실 내 일상을 지탱해주는 물적 토대기도 하므로, 이곳을 쉽게 떠나질 못한다. 심지어 ‘죽어서도’ 일터를 서성거리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2021.10.07)


웹툰 <미생>의 명대사 중 하나는 “회사가 전쟁터라고? 밀어낼 때까지 그만두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였다. 구차한 직장인이 아니라 나만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창업을 꿈꾸는 이에게 던지는 무시무시한 일갈.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요일 출근 생각에 일요일 오전부터 이미 불행하다. 아침이 되면 “최소한 스타벅스 커피 그란데 사이즈 정도는 있어야” 극심한 수면 부족에 지친 뇌와 일하기 싫은 ‘월급 루팡’의 심보를 가까스로 가다듬을 수 있을 것이다. “커피를 마시기 전까지 그들은 살아 있는 시체나 다름없었다. 가까스로 곧추세워 일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 소설 『호러스토어』에서 제시하는 직장은, 한술 더 떠서 ‘진짜’ 지옥문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이케아보다 더 싼 가격으로, 더욱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한다는 미국의 거대 가구 회사 오르스크, “모두에게 더 나은 삶을 약속합니다!”라는 슬로건과 함께 ‘관’을 제외하고 삶의 모든 단계에서 써먹을 수 있는 물건들을 제공한다. 거기서 일하는 무수한 직원들에게는 “단순한 직장이 아닙니다. 평생을 함께할 가족입니다”라는 달콤한 약속이 주어진다. 소명, 책임감, 노동의 가치 같은 단어들도 따라붙는다. 열심히 일한 만큼 그에 걸맞은 성장이 기다릴 것이라는 약속, 자기기만이라 할지라도 놓을 수 없는 자기계발의 건전한 판타지. 

그런데 얼마 전부터 오르스크 매장에 기이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분명 전날 매장 청소와 점검을 마치고 퇴근했지만 다음날 아침 브루카 소파의 덮개에 악취 풍기는 오물이 묻어 있거나, 매트리스가 통째로 갈기갈기 찢겨 있거나, 화장실에는 전에 없던 괴상한 낙서가 괴발개발 적히고, 직원 핸드폰에 발신자가 확인되지 않은 수상쩍은 문자 ‘살려줘요!’가 찍힌다, 그러나 보안 카메라 영상을 확인해보면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깐깐한 부지점장 베이즐은 직원 에이미와 루스 앤에게 그날 밤새도록 함께 경비를 서자고 제안한다. 먹고사는 문제로 전전긍긍하던 두 사람은 추가근무수당에 혹해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또 다른 직원 맷과 트리니티는 매장에서 일어나는 초심리학적 현상을 촬영하여 방송계로 진출하겠다는 꿈을 불태우며 한밤중에 이곳으로 몰래 숨어들었다. 잡지식이 많은 맷은 오르스크 매장이 위치한 이 터가 원래부터 불길하다는 정보를 알려준다. 19세기의 이곳에선 미치광이 교도소장 요시아 워스가 죄수들을 24시간 감시하면서 치료하고 참회시켜야 한다는 신념을 관철시킨, “강제 노역, 아무 생각 없이 몸을 움직여야 하는 반복 작업, 그리고 완벽한 감시”가 삼위일체를 이루는 쿠야호가 원형감옥을 운영했다고 한다.



트리니티의 주도로 시작된 엉터리 교령회에 어느 순간 요시아 워스의 영혼이 강림한다, 그는 직원들 하나하나를 품평하며 각자에게 어울리는 치유 방법을 제시한다. 짝사랑에 빠진 맷에게는 회전 장치를 매일 1만 번씩 돌리기, 육체적 매력을 과시하는 ‘타락한 여자’ 트리니티에게는 쳇바퀴에 몸을 묶고 돌려서 으스러뜨리기, 냉소에 찌든 불안정한 에이미에게는 구속의자에 묶인 채 건강한 정신을 배우기.... 그리고 요시아의 선언대로 “문이 열렸다.” 오르스크의 안락한 일상생활 용품들이 요시아의 저주가 깃든 끔찍한 고문 도구로 뒤바뀌어 직원들을 압살하기 시작한다. “목적지 없이 영원히 걷고 싶으십니까? 결코 멈추지 않는 알보테르크 러닝머신을 사용해보세요. 꼭 어딘가를 향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우면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집니다. 머리를 비우고, 멈추지 않는 여행을 시작해 보세요.” 이런 설명이 붙어 있는 러닝머신 위에서, 운동화 바닥이 다 뜯겨나갈 때까지 미친 듯이,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달려야 하는 치료 같은 것 말이다.  

현대의 호러 소설이 내놓을 수 있는 차별화된 공포에는 무엇이 있을까. 호러와 블랙 코미디, 스릴러가 뒤엉킨 하이브리드 『호러스토어』는 21세기를 살아가는 (국경을 가뿐히 넘나들며) 아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정확하게 타격한다. 내게 월급(혹은 주급, 일당)을 주는 이 일자리가 사실 그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하는 ‘불쉿잡(bullshit job)’이고 설령 내가 오늘 때려치운다 하더라도 이 자리를 대체할 사람은 너무나 많디많다는 데서 오는 자괴감, 나의 하루의 대다수를 바치는 이 회사가 더 좋은 무언가의 모조품에 불과하다는(오르스크처럼) 데서 오는 냉소, 불현듯 치밀어오르는 ‘진짜’ 나를 찾고 싶다는 욕망... 그러나 이 모든 불평불만에도 불구하고 차마 회사를 그만둘 순 없다. 당장의 생활비, 당장의 카드값, 당장의 집세, 그리고 무엇보다 이 정도 일도 견뎌내지 못하는 나약한 정신머리로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겠나 싶어서 스스로 우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 채찍질하는 근면성실의 흔적이 내 발목을 잡는 것이다.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는 것을 관두면, 뭐든 될 대로 되라고 내버려 두면 어떻게 될까? 에이미가 기억하기에 그녀는 발버둥을 멈췄을 때 어디까지 떨어지게 될지를 두려워했다.” 일이 나를 죽이는 것 같지만 사실 내 일상을 지탱해주는 물적 토대기도 하므로, 이곳을 쉽게 떠나질 못한다. 심지어 ‘죽어서도’ 일터를 서성거리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게 점점 분명해진다는 사실이다. 턱없이 높은 스펙을 갖추고도 제대로 된 직장에 들어가 사회에 정상적으로 편입되지 못한다는 젊은이들의 좌절은 불안과 공포로 부풀려지며 갈수록 위험한 리스크 관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장소에 투영되는 사람들의 정념은 그렇게 시간이 갈수록 더욱 복잡해지고 위태로워진다. 한국 사회에서도, 예전엔 학교가 공포의 무대였다면 지금은 직장이야말로 무시무시한 감정을 폭발시킬 수 있는 새로운 무대가 아닐까.



『호러스토어』는 21세기 대형 쇼핑몰의 이윤 추구의 화사한 가면이 19세기 미치광이 교도소장이 만든 원형감옥과 다를 게 없다는 익숙한 구도를 만들며 회사 내 지옥도를 생성했다. 사실 좀 순진하고 진부하게 느껴지는 이 이분법을 넘어서서, 『호러스토어』의 흥미로운 컨셉을 얼마든지 다르게 응용시키고 연장시켜나갈 수 있지 않나 하는 욕심이 생긴다. 이를테면 약간 과유불급의 완성도가 아쉽긴 하지만 한국 직장의 생지옥을 일찌감치 조명했던 홍원찬 감독의 2014년 호러물 <오피스>(고아성, 박성웅, 배성우 출연)는 한국식 『호러스토어』의 변형이 될 소지가 충분하다. 



추신 1. 『호러스토어』의 큰 장점이라면 무엇보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케아의 냄새와 색깔과 촉감과 심지어 그 작명을 곧장 연상시키며 생생하게 따라갈 수 있게 만든다는 점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이케아 매장에서 울려퍼지는 직원들의 안내 멘트와, 무수한 입장객들의 개별적인 냄새를 지워버리는 강렬한 방향제 향이 얼굴 근처를 맴도는 것 같다.

추신 2. 이 소설에서 제일 웃긴 순간은 엉터리 교령회 장면이다. 그럴 듯하게 섬뜩한 신음 소리를 내던 루스 앤이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당신들...필요 없고....지점장...나오라고 해...”라고 내뱉는 순간, 서비스업종에 일하는 독자라면 이 장면에서 웃음을 터뜨리거나 비명을 지르거나 오열하거나 토하거나 넷 중 하나는 하지 않을까.



호러스토어
호러스토어
그래디 헨드릭스 저 | 신윤경 역
문학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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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용언(<미스테리아> 편집장)

미스터리 전문지 『미스테리아』 편집장. 『범죄소설』, 『문학소녀』 등을 썼고, 『코난 도일을 읽는 밤』, 『죽이는 책』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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