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가볍게
익숙한 것들을 가볍게 만드는 일이 좋다
우리가 서로를 좋아하여 익숙한 단어를 함께 가벼이 띄워 올렸으면 좋겠다. 그 아래 모여 참 즐겁다 하고 웃을 수 있기를. (2021.04.23)
인스타그램에서 낯선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어떤 프로필을 보고 눈이 멈췄다. 할..모니? Harmonie 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아주 멋진 한국계 미국인 여성의 계정이었다. 내가 모르는 무슨 단어인가 생각하다가 그게 할머니를 뜻한다는 걸 안 순간 아주 즐거웠다. 할머니는 무겁고 진득한 느낌이 드는 단어인 데 비해 harmonie는 새처럼 가볍게 날아오른다. 같은 뜻인데 낯섦의 정도에 따라 읽히는 뜻에 차이가 컸다.
한국어가 한글을 떠나 알파벳을 입을 때 비슷한 일이 자주 일어난다. Unnie, oppa, mukbang 같은 단어들. 너무 익숙해서 색이 바랬던 단어들에 색동옷이 입혀진다. 여전히 유튜브 댓글에서 unnie 같은 단어를 볼 때면 웃음이 난다. 이런 말은 어떻게 알고 쓰는 걸까? 참 열심히 좋아한다는 생각을 한다. 좋아하는 대상과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이런 현상을 불러오는 것이겠지. 손녀손자들에게 grandma보다 할머니로 불리고픈 마음이, 좋아하는 스타에게 스타가 익숙한 호칭으로 불러주고픈 마음이.
좋아하는 마음의 무게는 음의 성질을 가지는 것 같다. 그것 자체로는 전혀 짐이 되지 않는, 오히려 나와 상대를 날아오르게 하는 마음이니까. 그 마음이 닿은 단어 역시 가볍게 떠다닌다. 부드럽고 말랑한 단어가 되어 땅에서 멀어진다. 수반되는 고통과 현실이 없다면 그 자체는 깃털처럼 떠다닐 것이다. 지구와 인생의 중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누군가를, 무엇을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일 테다.
그렇다면 나는 당신을 어떻게 부르면 좋을까. 동료, 친구, 가족, 사랑. 우리가 서로를 좋아하여 익숙한 단어를 함께 가벼이 띄워 올렸으면 좋겠다. 그 아래 모여 참 즐겁다 하고 웃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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