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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혜의 꽤 괜찮은 책] 불편함과 부당함의 사이에서 - 『가해자들』

<월간 채널예스> 2021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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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한 부분은 그처럼 불편함을 감내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때로는 부당한 일을 당하기도 한다는 사실. 그리고 많은 경우 우리가 불편함과 부당함을 구분하기 어려워한다는 사실이다. 사는 것은 그래서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2021.03.05)


“실례지만, 혹시 아이들이 뛰었나요?” 

어느 평화로운 일요일 오후, 관리실로부터 인터폰이 걸려왔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하며 별 생각없이 받았는데, 경비 아저씨의 조심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예상치 못한 질문이 흘러나왔다. 때마침 점심식사를 끝낸 아이들이 잠깐 장난을 치고 놀았던 참이었긴 하다. 깜짝 놀란 나는 서둘러 답했다. 

“애들이 잠시 장난 치느라... 혹시 아랫집에서 시끄럽다고 그러나요? 조심 시킬게요. 죄송합니다!!” “어딘지는 말씀드릴 수 없고요, 아무튼 부탁 좀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수화기를 내려놓는데 가슴이 쿵쿵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말로만 듣던 층간 소음의 가해자가 되다니. 그런데 이 아파트에 살았던 5년 동안 지금껏 이런 일이 한번도 없었는데...누군가 새로 이사온 것일까? 아주 잠깐이었는데 정말 그렇게 시끄러웠던 걸까? 만약 그랬다면 참으로 민망하고 미안한 일이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전화가 걸려오면 어쩌지? 우리도 1층으로 이사를 가야 하나? 요즘 시기에 이사갈 집을 구할 수 있을까? 공동주택이란 참으로 어렵구나.

그와 동시에 가슴 속 어딘가에서 부글부글 끓는 듯한 감정도 생겨났다. 잠깐만...지금이 늦은 밤도 아니고, 이른 아침도 아니고, 주말 점심인데 너무하는 거 아니야? 우리는 평일에는 거의 아무 소리도 안 내는데. 주말에 이 정도의 생활소음도 못 참겠으면 아파트가 아닌 절간에서 살아야지. 게다가 자기만 시끄러웠는 줄 알아? 나도 그동안 윗집 아랫집 쿵쿵 거리거나 음악 크게 들을 때 시끄러웠지만 공동주택이니까, 모두가 생활하는 시간대니까 참았단 말이다. 나는 심지어 새벽에 시끄러운 것도 다 참았다고! 나는 참는데 왜 당신은 안 참는 거야!

민망함과 미안함과 불편함과 부당함이 뒤섞인 그날의 복잡한 상념은 결국 아이들에게 뛰지 말라고 소리지르는 것으로 일단락 되었다. 하지만 그 뒤로는 아이들이 움직일 때마다 신경이 곤두섰다. 결국 조금이라도 움직임이 커질 낌새가 보이면 눈을 부릅뜨며 경고를 하곤 했다. “뛰지 마. 뛰지 말라고!” 그렇게 집 안에서 머무는 시간은 내내 아이들의 행동을 통제하면서 흘러갔다. 학교와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돌아오면 반가움과 두려움이 동시에 엄습했다.

그와 동시에 윗집과 아랫집에서 들려오는 소음에도 몹시 민감해졌다. 한번 귀가 ‘트이고’ 나니 이전에는 나는 줄도 몰랐던 온갖 소리들이 들려왔다. 혹여라도 아랫집에서 웅웅거리는 TV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면 분노 비슷한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나는 지금 내 집에서 아이들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어. 그런데 당신은 뭘 하는 거지? 그런 생각으로 부글부글 끓다보면 문득 『가해자들』속 등장인물들이 떠올랐고, 그러다보면 끓어오르던 피가 차게 식었다. 그런 밤에는 나 역시 그들처럼 될 것 같은 두려움을 다독이며 애써 잠을 청했다.


정소현 작가의 소설 『가해자들』은 층간 소음을 둘러싼 갈등을 소재로 하는 작품이다. 아마도 소설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짧게 줄여보면 “층간소음을 빌미로 이웃간에 칼부림까지 일어나”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신문기사나 뉴스에 종종 등장하곤 하는 헤드라인 같은 한 줄. 그만큼 엽기적이고 극단적인 어떤 사연. 나와는 아주 멀리 있을 것 같은 사건과 사람들. 하지만 소설은 그러한 현실이 실제 우리의 삶과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음을, 층간 소음 때문에 칼까지 휘두른 누군가가 한때는 아주 ‘멀쩡한’ 누군가였다는 사실을, 혹은 지금도 우리 가까이에 있는 누군가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소설 속에서 1111호에 사는 ‘나’는 아파트 주민 모두의 적이다. 그는 위, 아래, 옆집에서 들려오는, 남들은 듣지도 못하는 아주 작은 소음까지 찾아내고 그런 자잘한 소음에 매번 항의를 한다. 그럼에도 만약 소음이 사라지지 않으면 각종 도구를 이용하여 ‘보복’을 하기까지 한다. 결국 1211호, 1011호, 1112호 주민들은 1111호의 반복되는 항의 전화 속에서 작은 소음이라도 일으킬까 행동이 극도로 조심스러워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들 역시 ‘당하고만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전면전을 펼치기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그들 모두의 삶은 점차 망가진다.

여기까지 듣고 나면 소설 속 모든 사건은 1111호에 살던 극도로 예민한 ‘나’가 원흉인 것만 같지만, 사실은 ‘나’ 역시 일종의 피해자라는 사실이 이 소설의 흥미로운 부분이다. 소설은 ‘나’가 시어머니로부터 받는 부당한 취급을 꾹꾹 참기만 하다가 마침내 층간 소음으로 여태껏 쌓아왔던 분노를 폭발시키는 모습을 그려냈다. 가족들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극단적으로 고립된 상황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던 ‘나’는 점차 외부의 소음에 귀가 ‘트이고’, 그러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편집증적인 행동을 보인다. 어쩌면 그간 너무 참았기에 거꾸로 무엇도 참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을지 모른다는 것이 ‘나’의 비극이다.

여러모로 암울한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층간 소음 및 이웃과 공동체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데,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 질문은 한 가지이다. 우리는 과연 타인을 어디까지 참아낼 것인가. 나의 내면이 아닌 외부에 위치하는 타인은 본질적으로 불편한 존재일 수밖에 없고, 그러한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것 자체가 불편함을 감내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타인과 함께하는 한, 불편함이 완전히 사라진 무균의 상태는 만날 수 없다. 아이러니한 부분은 그처럼 불편함을 감내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때로는 부당한 일을 당하기도 한다는 사실. 그리고 많은 경우 우리가 불편함과 부당함을 구분하기 어려워한다는 사실이다. 사는 것은 그래서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가해자들
가해자들
정소현 저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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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한승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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