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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랩 신의 구세주, 플레이보이 카티의 Whole Lotta Red

플레이보이 카티(Playboi Carti) <Whole Lotta 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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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 출신의 신인 래퍼에서 트랩 신의 메시아로. 그것은 불과 1년 만에 이뤄진 일이었다. (2021.01.26)


애틀랜타 출신의 신인 래퍼에서 트랩 신의 메시아로. 그것은 불과 1년 만에 이뤄진 일이었다. 2017년 셀프 타이틀 믹스테입과 더불어, 플레이보이 카티(Playboi Carti)는 형태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추임새와 뇌를 마비시킬 정도의 실험적인 비트를 무자비하게 점철한 2018년도 문제작 <Die Lit>으로 그간 금기시되던 조항을 정면으로 돌파하며 진부함으로 면역된 리스너의 신경망을 침투하기 시작했다. 젊음을 불태우고 장렬히 산화하려는 선포 아래 불씨는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지금껏 저급한 상업 음악이라 폄하 받던 멈블 랩이 비판의 주된 요소인 '원시성'과 '단조로움'을 극단으로 파고들자, 도리어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그로부터 홀연히 모습을 감춘 채 간간이 협업 소식만을 알려온 그는 소문만 무성하던 정규 2집 <Whole Lotta Red>로 2년 만에 다시금 정체를 드러낸다. 작품이 화제를 얻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흥행의 척도인 빌보드에서 핫 샷 데뷔를 이뤄내며 여전히 촉망받는 기대주임을 증명한 것, 그리고 또 한 번의 돌파를 꾀하며 반전을 주도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 핸들은 고착화된 힙합이 아닌 본인이 설립한 <Die Lit>의 몽환경을 향한다. 페르소나 격의 프로듀서 피에르 본(Pi'erre Bourne)의 지분을 과감히 내치고 다양한 작업진과의 협업으로 구상한 새로운 체계. 또렷한 시선과 빨간 문구로 그가 가져온 것은 마이클 잭슨의 <Bad>가 선행한 파격 변신의 데자뷔다.

전작이 비트와 랩의 몽롱한 주파수를 철저히 합일시키며 특유의 사이키델릭하고 중독성이 강한 마약류의 인상을 집요하게 자아냈다면, 본작은 그런 순도 높은 청적 쾌감과는 정반대에 위치한다. 멈블의 신기원을 다루는 극단적 태도는 공통으로 적용되더라도, 릴 우지 버트(Lil Uzi Vert)의 <Eternal Atake>로 대변되는 사이버 풍의 미래지향 비트와 하이 톤으로 치솟은 래핑이 협력보다는 각자 존재감을 피력하고 서로 칼을 겨누기 바쁘기 때문. 결과적으로 <Whole Lotta Red>의 인상은 기존의 부유하는 탑승감이나 선공개 싱글 '@ Meh'의 가벼운 미니멀리즘 주행보다는 일정량의 따가움과 덜컹거림을 동반한다.

물론 달라진 작풍에도 여전한 능청은 장점으로 작용한다. 가벼운 신시사이저를 윤곽으로 삼은 'Beno!'와 'Meh'는 능란한 래핑을 대치하며 새 국면을 성공적으로 펼쳐내고, 묵직한 베이스 위로 가쁜 숨을 몰아쉬는 'Stop breathing'과 아케이드성 비트의 호우 속에서 헤엄치는 'Control', 'On that time'은 독보적인 인상을 남긴다. 다만 행해진 변화만큼이나 상응하는 실망감도 존재한다. 'Stop breathing'과 흡사한 구성을 지닌 'Rockstar made'는 구성이 다소 부자연스럽고, 구호를 편파적으로 거듭하는 'Jumpoutthehouse' 와 바흐의 오르간 도입부를 샘플링한 'Vamp anthem'은 컨셉트 아래 진부한 짜맞추기처럼 보일 뿐이다. 카니예 웨스트, 키드 커디 등의 강대한 지원군은 전반적인 기조와 엇나가며 몰입을 방해하고, 임팩트가 부족한 후반부는 러닝타임 동안 축적된 피로를 해소해주지 못한다.

어떤 태도로 듣는지에 따라 평이 상이하게 갈릴 듯하다. 점층적 구조를 쌓아가다 의도적으로 진행을 끊어버리는 'New n3on'이나 재생이 끊긴 듯한 연출의 'Place' 등, 본작에 등장하는 진보적인 장치는 신선함을 부여하지만 미완의 느낌이 강해 무례함으로도 둔갑할 여지를 갖는다. 전술한 킬링 트랙은 수많은 잉여 트랙 속 드문드문 산재한 탓에 무디게 다가오며 주인공인 카티보다 매력적인 비트 메이킹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다. 쾌락주의의 교리 아래 역십자가를 매달고, 뱀파이어와 록스타 같은 온갖 반골 캐릭터를 호출하며, 다양한 작법과 높낮이로 시선을 분산하는 <Whole Lotta Red>은 또 하나의 방법론 제시보다는 현재 본인이 지닌 특수한 입지와 이미지를 정당화하기 위한 일시적 책략으로 보인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개는 좋으나, 랩 게임의 판도를 한 번 더 뒤집기에는 그 충격이 예전만 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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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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