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안부 인사가 아팠던 적이 있다. 무탈히 자랐던 첫째와는 달리 생후 3개월부터 도드라지게 손이 많이 가서 품에서 내려놓지 못하던 둘째 이야기다. 1차 병원, 2차 병원도 구분 못 했던 시절, 처음으로 종합병원에 입원도 해봤고 한 아이를 키운다는 버거움을 온몸으로 느끼며 둘째를 키웠다.
첫 아이를 가정 출산으로 한우리 조산원에서 낳고 거기서 2명의 엄마를 만났다. 그 인연이 큰아이 나이만큼이니 어느새 8년이다. 간헐적인 만남의 시간엔 이유식에는 이게 좋고, 책은 뭐가 잘 읽히고, 교구는 이게 좋다 하며 엄마들의 소소한 수다가 이어지곤 했다. 첫째 아이는 가리는 것 없이 잘 먹고, 잠투정이랄 것 없이 잠들고 했으니 아이의 타고난 성품을 내 육아 실력이 탁월한 줄 착각 속에 빠져 살았다. 공부를 많이 하며 아이들의 변화에 민감했던 두 엄마 사이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특별히 귀담아들은 적도 없고, 나랑은 상관없는 예민한 아이를 위한 이야기들이라고 치부했었다.
세상은 이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 예민한 아이가 우리 둘째가 되었다. 얼굴이 울긋불긋, 매일 가렵고 진물이 나던 시절. 어린이집에 있는 큰아이를 데리러 가기 위한 잠깐의 나들이조차 자유롭지 못했다. "아이 얼굴이 왜 그래요? 화상 입었어요?" "태열이 심하네, 한의원은 다녀요?" "어성초가 좋다는데, 끓여서 그 물로 씻어보지 그래." 등등 세상에 아토피 치료에 관한 박사님들 천지였다. 사람들은 한마디 하고 지나갔지만, 열 사람을 마주친 날은 열 번의 비수가 되어 가슴에 박혔고, 문을 열고 마주치는 현관 거울 속에 나와 둘째 얼굴에는 서글픔이 가실 날이 없었다.
이미 생후 100일에 농가진과 태열로 한 시기를 보냈던, 첫째 조산원에서 만난 설이 엄마는 작은 쪽지를 넣어 택배를 보내왔다. "한참 심할 때 썼던 항생연고인데, 뜯지 않은 게 있어서 보내요, 눈가에 발라도 괜찮은 안연고 들이니 부담 없이 상처에 발라줘도 좋을 것 같아요." "겨울이라 많이 건조해지죠? 대용량이고, 자연 추출물 성분의 로션이라 몸 전반에 바르기는 좋았어요."
사려 깊은 편지와 배려 섞인 챙김에 나는 설이 엄마 이름이 적힌 택배 상자가 도착할 때마다 일말의 위로를 받았다. 어느 날은 두 아이가 일찌감치 잠들고, 나는 고해성사를 하듯 하얀 A4지 위에 아이에게 첫 징조가 나타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치료하며 겪었던 좌절감들, 앞으로 나아지지 못할 거라는 절망감들을, 우물에서 물을 길어내듯 마음 깊은 곳의 감정들을 흰 종이 위에 적어 나갔다. 그리고 설이의 겨울용 조끼를 함께 준비해 편지와 같이 택배로 부쳤다.
설이가 이 시기를 지나며 겪었던 변화들, 다시 꺼내 보기도 힘들 사진들을 공유 해왔을 때, 덧붙여 엄마의 노력 못지않게 아이 역시 스스로 이겨내고 있다는 설이 엄마의 메시지를 받은 날은 마음으로 함께 울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터널 속에서, 거짓말처럼 하루하루 아이의 피부가 부드러워지며 긁지 않고 자는 날들이 많아졌고, 그만큼의 마음의 여유가 생겨났다. 설이 엄마와 나누는 대화 속에서 닫혀있던 마음의 빗장이 풀어지며 처음으로 긍정적인 마음을 품었다. 그녀의 조언을 마음으로 받아들였고, 계절이 바뀌면 찾아오던 궁극의 건조함과 가려움 증상 역시 아이에게서 서서히 사라져 갔다.
이제는 밖에 나가서 뛰어다니면 감당하기도 어려울 만큼 건강하게 많이 자란 둘째를 바라보며, 그 시절 얼었던 내 마음을 따뜻한 난로처럼 녹여주었던 설이 엄마를 떠올린다. 정말 고마웠어요.
정미란 자려고 누우면 첫 문장이 떠올라 늦은 밤까지 잠 못 이루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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