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눈빛을 바라보는 일
영화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영화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를 보고 오랜만에 옛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너를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다양한 면들을 바라봐 줄게. 그렇게 말하는 듯한 영화였다. (2020. 08. 21)
영화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를 보고 오랜만에 옛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인물들의 표정이 오래 마음에 남았고, 다들 어떤 눈빛을 하고 살아가고 있나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너를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다양한 면들을 바라봐 줄게. 그렇게 말하는 듯한 영화였다.
남자 둘, 여자 하나. ‘청춘영화’의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포스터를 보고, 전형적인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 빛나고 자유롭다. 동시에 세 사람의 관계 속에서 여주인공은 일종의 꽃, 뮤즈처럼 자리할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본 후, 이 영화는 ‘청춘의 장면’을 배치하는 방식에서 전형성을 비껴가고 있구나 생각했다.
영화는 낭만이 시작되는 첫 장면에서 딴청을 피우듯 기대를 배신한다. 주인공 남녀가 만나는 첫 장면은 다분히 낭만적인 색채를 띤다. 밤거리의 조명 아래 남녀는 우연히 스치고, 남자는 여자가 올 때까지 120초를 센다. 운명적인 만남이 이어지고 둘은 잠시 후 술집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한다. 전형적인 전개라면, 둘은 술집에서 만나며 끌림을 확인할 것이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의 약속을 저버리고 집에서 자버린다. 다음날 카페에서 여자가 “왜 바람맞혔어?”하고 묻자 남자는 무심히 답한다. “그게, 깜박 잠드는 바람에.”
첫 장면에서 알 수 있듯, 영화는 세 청춘을 낭만적인 색채로만 덧칠하지 않는다. 대신 인물들과 그들이 만나는 다양한 관계를 관찰하는 방식을 택한다. 영화는 ‘세 사람이 공존할 때’, ‘단둘이 있을 때’, ‘인물들이 홀로 있을 때’ 달라지는 면들을 섬세하게 직조한다. 이 영화에 인물의 표정을 담는 클로즈업신이 비교적 길게 들어간 것도 그들의 눈빛과 감정을 담아 내기 위해서다. 그렇기에 카메라는 표면에 머물며 인물들을 ‘청춘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대상화하지 않고, 인물의 개별적인 서사를 입체적으로 담아낼 수 있다. 남자 둘, 여자 하나의 구도에서, 여자 주인공 사치코가 그저 ‘꽃’이 아닌, 개별적인 내면을 지닌 사람으로 그려질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단연 아름다운 건 세 사람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신들이다. 편의점을 나오며 우산을 쓰고 장난치는 장면, 클럽에서 놀고 새벽의 거리를 걸어가는 장면. 이 장면들은 이야기의 전개에 특별히 기여하지 않지만, 그렇기에 아름답다. 청춘이란 그런 목적 없는 시간들을 아름다운 장면으로 간직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 시절’을 추억할 때, 함께한 장면을 떠올리듯이.
그런데 이같은 청춘 영화의 요소들은 낮의 시간과 공존한다. 보통 낭만적인 청춘의 특징은 ‘일하지 않음’이 아닐까. 대부분의 청춘영화에서 인물들이 일하는 장면은 중요하게 그려지지 않는 것 같다. 매일 같은 일상에 낭만이란 없을 테니까. 그러나 이 영화에서 ‘나’와 사치코가 서점에서 일하는 낮의 시간은 꽤 자세하게 묘사된다. 놀고 있는 시즈오 역시 ‘일하지 않음’을 끊임없이 의식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의 압박을 받고 있다. 그는 어머니에 대한 부양의 의무, 구직의 무게에 눌려 있다. 낮의 시간과 밤/새벽의 시간에서 인물들은 각기 다른 표정과 눈빛을 하고 있다.
이 이중의 시간 속에서 인물들을 홀로 비추는 신들은 내면을 디테일하게 담아내는 역할을 한다. 친구들이 일하러 간 낮에 홀로 방에서 시즈오가 짓는 눈빛. 점장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카페에서 홀로 있는 사치코의 눈빛, 관계에 연연하지 않는 듯했던 ‘나’가 모두가 떠난 방에서 홀로 밥을 먹을 때의 눈빛.
또한, 카메라는 인물들이 셋, 둘이 있을 때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관찰한다. 재미있는 것은 셋이 있을 때, 인물들은 나머지의 눈빛을 곁눈질로 응시하고, 둘이 있을 때는 대화에서 나머지 한 사람을 언급하는 방식으로 ‘셋’을 늘 의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온전한 둘의 행위인 섹스를 하고 나서 사치코는 ‘나’에게 “(시즈오가) 집에 안 오네. 너무 배려하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며, 노래방 데이트 신에서 시즈오는 “나, 둘에게 방해되지 않아?”라고 묻는다.
셋이 있을 때, 둘이 있을 때, 혼자 있을 때, 같은 사람임에도 다른 표정을 짓고 다른 시선으로 관찰한다. 셋이 있을 때 형성된 관계의 거리와, 둘이 있을 때의 미묘한 감정선, 혼자 있을 때만 짓는 공허하고 나른한 표정. 이런 표정을 따라가다 보면 인물 하나 하나가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보통의 현실에서는 홀로 있을 때의 표정은 아무리 매일 만나는 사람이라도 관찰할 수 없고, 늘 단둘이서 만나는 관계라면 집단 속의 그 사람의 모습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카메라는 넘나들 수 있다. 다양한 표정들이 있다는 걸 영화를 보며 배운다.
마지막 신에서 인물들은 서로 마주 본다. 두 눈빛이 정면으로 마주친다. 그동안 카메라는 측면에서 인물의 얼굴을 담아내거나 다른 이를 향하는 인물의 시선을 관찰했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카메라(인물)은 서로를 정면으로 본다. 마치 이제는 서로를 마주 보는 것이 남은 일이라는 듯. 상대의 눈빛 앞에서 주저하는 인물의 눈빛을 응시하면서. 결국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누군가의 눈빛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말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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