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끝과 시작

마무리와 타협, 다시 기대와 다짐의 시간이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계획은 없지만 질문은 하나 들고 시작한다. 그렇게 방에 누워 굴러서 해를 넘어가고 있을 때 머리도 생각도 같이 굴러 그 뒹구는 와중에 책을 보고 친구들과의 대화를 들여다보며 질문을 하나 건졌다.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끝과시작.jpg
“와 저기는 세상의 끝인 것만 같다.” 라고 했는데 당연히 또 길은 이어졌다.

 

 

끝과 시작. 마무리와 타협, 다시 기대와 다짐의 시간이다. 12.31 23:59:59가 01.01. 00:00:00으로 바뀌는 순간 저 놀라운 숫자의 변화처럼 내 손에도 모든 걸 다시 설정하고 시작할 수 있는 버튼이 하나 생긴 느낌. 해가 바뀐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해가 바뀌는 것에 무감해진 지 꽤 됐다. 그러니까 올해는 ‘노는 수요일’이 하루 더 있었고, 어김없이 늦잠을 잤고(이번에는 새해 첫날까지 늦잠이냐는 잔소리도 없었다. 이런.), 먹을 건 또 먹어줘야 하니까 떡국을 먹고, 책을 한 권 보고, 눕고 앉고 먹고를 반복하는 충만한 하루를 보냈다. 게다가 이번에는 1월 1일이 되는 순간도 놓쳤다. 작년까지는 그래도 땡 하는 순간은 지켜보고 딴짓을 했는데 올해는 어라 하고 보니 새해가 밝았다.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올해는 계획도 없다. 실은 아무 대책 없이 새해를 맞은 것뿐이긴 한데, 가만 보니 이것도 크게 나쁠 건 없다는 생각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일 년 단위뿐 아니라 매달, 매주,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무언가를 시작하고 끝내니까. 순간순간 분 단위 계획을 세우고 하나하나 완수해가다 보면 하루가 가고 그렇게 한 주가 한 달이 지나가니까. 그러다 불쑥 일 년짜리 계획이 생겨버리면 그것은 그것대로 그때 시작하면 좋은 것이고. 새해 첫날 혹은 첫 달에 무언가를 꼭 시작해야만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게으른 자의 자기변명이라 한다면? 눈치 챘다면 변명의 여지는 없다.
 
계획은 없지만 질문은 하나 들고 시작한다. 그렇게 방에 누워 굴러서 해를 넘어가고 있을 때 머리도 생각도 같이 굴러 그 뒹구는 와중에 책을 보고 친구들과의 대화를 들여다보며 질문을 하나 건졌다.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종종 떠올리는 것이기도 하고, 특별히 답을 찾을 생각은 없어서(답이 있지도 않은 것 같다.) 언제까지고 계속되기를 바라는 질문이기도 한데 새삼 다시 꺼냈다. 본받고 싶은 청춘이었다는 말, 그 시절에 있어줘서 고맙다는 말, 미안했다는 말. 연말을 맞아 뜬금없이 시작했던 오글거리는 대화들을 다시 보면서 내가, 우리가 그런 사람인가 하다가, 그렇거나 말거나 그럼 이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달한 것이다.

 

그리고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 12월 31일과 1월 1일에 걸쳐서 읽었으니 이 책은 나의 2019년과 2020년을 연결한다. 아주 적절한 시기, 적절한 책이었다. 책은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였다가 ‘살아가는 우리들에게’가 되기도 했고, 조언자의 목소리였다가 나의 목소리가 되기도 했다. 나보다 반걸음쯤 앞서 걷고 있는 그들을 응원하고 싶어졌다. 뒤에서, 가끔은 옆에서 같이 걷고 싶어졌다. 나에게는 이 두 작가에 대한 경험치가 많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 책을 더 흥미롭게 했다. 의외의 발견이었다. 좋은 의미에서. 그렇구나 그렇지 오오 하다가 한번씩 극한의 공감에 겨워 한참을 푸드덕거렸다. 와 내가 쓴 줄. 이러면서.

 

그래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로 돌아가면, 책을 보는 동안은 나도 이렇게 살아야지. 혹은 아니 아무래도 이건 무리. 하는 생각들이 있었는데 책을 덮고 나니 지금은 그냥 내가 누군가에게 임경선이고 또 요조라면 좋겠다. 왜인지 이런 누군가가 옆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보다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게 남았다.

 

800x0.jpg

                                                             

 

이렇게 저를 오랫동안 지켜봐오고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던지는 이런저런 저에 대한 장담들은 때론 맞고 때론 틀리기도 하지만요. 맞고 틀리고랑 관계없이 매번 저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분명해요.


더군다나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요즘의 인간관계를 생각해보면 더 그래요. 타인으로부터 상처를 입는 것도 싫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도 않은 조심스러움을 저는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것이 가끔 무미건조하게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잖아요.


특히 스스로 많이 나약하고 고독해졌다고 느껴질 때 ‘야, 너 바쁜 거 아는데 그래도 나랑 이번 주말에 카레를 먹으러 가야 해. 거기 카레 완전 네 스타일이야’ 같은 연락은, 쭈뼛쭈뼛 간만 보다 끝나는 것 같은 세상 속에서 참으로 다정하고 감동적인 침범이에요.


- 요조,임경선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148쪽

 

 

무미건조했던 연말 연초를 파릇파릇하게 장식해준, 친구들의 조금은 쑥스러운 그 말들은 아마 무척 오래 가지고 있던 것들일 거다. 자주 꺼내서 만지고 고치고 다시 매무새를 다듬은 문장일 거다. 나도 그러니까.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힘을 줄 수 있을까, 앞뒤없이 믿을 구석이 되어줄 수 있을까, 꼭 필요한 그 때에 에두르지 않고 오해의 여지 없이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을 고민하면서 말들을 차곡차곡 저장해 두니까. 늘 고마움을 먼저 얘기해주는, 말도 안되는 나를 늘 말도 안되게 멋있게 받아주는 이들에게 간 볼 것 없이, 마음껏 다정한 사람이 되어야지. 이건 일단 일 년짜리 계획이다.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요조, 임경선 저 | 문학동네
어린 시절 다른 이들이 침범할 수 없는 우정을 나누던 단짝소녀들이 그랬듯이 ‘교환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완연한 어른 여성이 되어 여자로 살아가며 보고 느끼고 경험한 모든 것에 대해 낱낱이 기록한 교환일기를 주고받은 두 여자, 바로 요조와 임경선이다.

 

 

 

 

 

 

 

 

 

 

배너_책읽아웃-띠배너.jpg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ㆍ사진 | 박형욱(도서 PD)

책을 읽고 고르고 사고 팝니다. 아직은 ‘역시’ 보다는 ‘정말?’을 많이 듣고 싶은데 이번 생에는 글렀습니다. 그것대로의 좋은 점을 찾으며 삽니다.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요조>,<임경선> 공저13,950원(10% + 5%)

이토록 무례하고 고단한 세상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 여자로 일하고 사랑하고 돈 벌고 견디고 기억하고 기록하며 우리가 나눈 모든 것. 두 여자가 있다. 한 여자는 솔직하고 ‘앗쌀하다’. 다른 여자는 자신이 대외적으로 하는 말과 행동에 가식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두 여자는 서로가 재미있고 흥..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ebook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요조>,<임경선> 공저10,900원(0% + 5%)

다정하고 감동적인 침범 이토록 무례하고 고단한 세상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 ―여자로 일하고 사랑하고 돈 벌고 견디고 기억하고 기록하며 우리가 나눈 모든 것 여기, ‘낙타와 펭귄’처럼 서로 다른 두 여자가 있다. 한 여자는 솔직하고 ‘앗쌀하다’. 다른 여자는 자신이 대외적으로 하는 말과 행동에 가식..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트럼프의 귀환, 위기인가? 기회인가?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거머쥔 트럼프. 글로벌 무역 질서를 뒤흔들 트럼프 2기 정부의 명암과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국제 정세에 미칠 영향에 대해 설명하는 박종훈 저자의 신간이다. 강경한 슈퍼 트럼프의 시대에 직면한 대한민국이 어떠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지 그 전략을 제시한다.

이래도 안 읽으실 건가요

텍스트 힙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독서가 우리 삶에 필요해서다. 일본 뇌과학계 권위자가 뇌과학으로 입증하는 독서 예찬론. 책을 읽으면 뇌가 깨어난다. 집중력이 높아지고 이해력이 상승하며 즐겁기까지 하다. 책의 장르는 상관 없다. 어떤 책이든 일단 읽으면 삶이 윤택해진다.

죽음을 부르는 저주받은 소설

출간 즉시 “새로운 대표작”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 관련 영상을 제작하려 하면 재앙을 몰고 다니는, 저주받은 소설 『밤이 끝나는 곳』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등장인물들이 함께 떠난 크루즈 여행 중 숨겨진 진실과 사라진 작가의 그림자가 서서히 밝혀진다.

우리 아이 영어 공부, 이렇게만 하세요!

영어교육 전문가이자 유튜브 <교집합 스튜디오> 멘토 권태형 소장의 첫 영어 자녀 교육서. 다년간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초등 영어 교육의 현실과 아이들의 다양한 학습 성향에 맞는 영어 학습법을 제시한다. 학부모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지침과 실천 방안을 담았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