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불후의 칼럼 > 이슬아의 매일 뭐라도
일러스트 손은경
친구들과 목욕탕에 갈 때마다 왠지 청소년의 마음이 된다. 발가벗고 탕에 들어가기만 하면 꼭 중학생 때처럼 장난을 친다. 냉탕에서 어푸어푸 수영을 하거나 사우나에서 깔깔 웃으며 떠든다는 뜻이다. 혹은 비너스 흉내 따위를 낸다는 뜻이다. 온탕 중앙에는 물거품이 올라오는 자리가 있는데 거기 서서 친구들을 내려다보고 손끝을 우아하게 처리하면 꼼짝없이 비너스다. 이제 막 거품에서 태어난 것만 같다. 미의 신이 따로 없다. 그러고서 냉수마찰을 하고 샤워를 시원하게 마치고 친구의 로션을 빌려 찹찹찹 바르고 음료수를 마시며 수다를 떨다가 집에 돌아온 작년 어느 날 저녁에 구독자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작가님, 낮에 목욕탕에서 뵀었는데 부끄러워서 인사를 못 했어요....” (중략)
생각해 보니 아까 비너스 흉내를 낼 때 탕의 한쪽 구석에 몸을 담근 채 조용히 우리를 바라보는 여자분이 계셨던 것도 같았다. 서울 외곽의 오래된 목욕탕에서 <일간 이슬아>의 구독자를 마주칠 확률은 얼마만큼인가. 서울은 왜 좁은가. 구독자님은 왜 하필 나랑 같은 온도의 탕을 택하셨나. 나는 왜 비너스를 따라 했나. 내 친구들은 왜 한 술 더 떠서 포세이돈까지 따라 했나.
복희는 나보고 이제 출판사 대표도 되고 했으니 조금 더 조심히 지내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이 출판사의 유일한 직원의 권유여서 나는 알겠다고 했다. 그나저나 조심히 지낸다는 건 뭘까. 복희가 말했다. “데이팅 앱도 그만해야 돼.” 나는 대답했다. “진작 끊었어.” 하지만 사실 아직도 깔려있다. 접속하지 않을 뿐이다. 나중에 데이팅 앱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쓰기 위해서라고 핑계를 대 보지만 그 앱에서의 대화들은 소설이 되기엔 너무 후지다.
친구들은 놀리는 용도로만 나를 대표님이라고 부르고 나도 내가 대표인 걸 늘상 까먹고 지내는데, 가끔 ‘헤엄 출판사 대표님께’라고 시작되는 이메일을 받을 때마다 화들짝 놀라며 기억해 내곤 한다. ‘맞다, 나 사업자 냈지’ 하고 말이다. 언제부턴가 헤엄 출판사의 계정으로 다양한 투고 메일이 도착한다. 거기엔 책을 내고 싶어 하시는 중년 분들의 인생 요약본 파일이 첨부되어 있다. 처음엔 나를 진짜 출판사 대표로 생각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물론 진짜 출판사가 맞긴 하지만 누군가가 자신의 소중한 원고를 묶어서 보낼 만큼 진지한 대상이 된 줄은 몰랐던 것이다. 나는 자세를 고쳐 앉고 원고를 훑어본 뒤 정중한 거절 메일을 보낸다. “선생님, 소중한 원고를 보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현재는 제 코가 석자인 데다가 출판사가 영세하여 새 책을 작업할 여력이 없습니다. 다른 작가들의 책도 출간할 수 있도록 얼른 좋은 편집자로 성장하겠습니다!” (중략)
하루는 내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 왔다. 작년엔 별생각 없이 책 뒤편에 내 전화번호를 적어 놓았다. 판권 면에 출판사 전화번호가 적혀 있어야만 서점에서 입고를 해 준다는 얘길 들어서였다. 출판사 사무실도 없는 마당에 번호가 따로 있을 리는 만무하니까 그냥 내 번호를 적고는 잊어버린 터였다. “여보세요” 하고 전화를 받자, 낯선 아주머니가 사투리 억양으로 “여보세요?”라고 하셨다.
“네, 말씀하세요.”
“거기 출판사예요?”
나는 당황스러움을 추스리며 대답했다. “네. 출판사 맞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물었다. “출판사 맞아요? 가정집같이 전화를 받으셔서...”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아, 네. 가정집이기도 합니다.”
아주머니와 나 사이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는 아리송한 말투로 『일간 이슬아 수필집』 얘기를 꺼내며 물었다.
“이 책의 작가가 직접 출판사 대표 일도 하신다는 거예요?”
“네. 그렇게 됐어요.”
“잘됐네요. 제가 도서관에서 이걸 빌려서 읽어봤는데 너무 재밌더라고요.”
“아이고, 너무 고맙습니다!”
이때부터 아주머니는 호기로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 가셨다.
“근데 딱 보니까 저도 쓸 수 있겠더라고요~”
“그러시구나!”
“저도 이슬아 대표님처럼 일기를 맨날 쓰거든요?”
“와, 맨날 쓰신다니 대단하네요. 그런데 저는 일기는 아니..”
“저는 밤마다 일기를 그냥 엄청 많이 써요. 우리 아들이 썩을 놈인데 아유, 그 새끼 얘기만 써도 하루에 다섯 장이야.”
“다섯 장이나요...? 저보다 많이 쓰시는데요?”
“쓸 말이 넘쳐나니까요. 애가 고등학생인데 사고를 너무 많이 쳐.”
“어떤 사고를 치는데요?”
“술! 담배! 여자!”
“근데 저도 고등학생 때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남자 만났는데...”
“도박!”
“아, 도박은 안 했어요.”
“걔는 마약도 해요!”
“아드님께서 마약도 하시는구나... 네... 힘드시겠어요.”
“암튼 걔만 보면 내가 울화통이 터져. 어디 말할 데도 없고 그래서 밤마다 나름대로 일기를 쓰는 거예요.”
“쓰고 나면 좀 괜찮으세요?”
“속이 시원하죠. 감정을 그냥 다 배출하니까.”
“다행이네요!”
“암튼 그렇게 쌓인 게 벌써 몇 십 장인데 어떻게 출판을 좀 해 보세요. 『일간 이슬아 수필집』 처럼 딱 묶으면 될 것 같은데.” “아... 저희 출판사가 겨우 시작 단계여서 아직 다른 책 출판은 못 하고 있어요.”
“그래요? 난 이걸 책으로 내면 딱 좋을 것 같은데.”
“다른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 보시거나, 아니면 저처럼 직접 독립 출판하시면 어떠세요?”
“그건 어떻게 하는 건데요?”
“쓰신 글을 문서로 옮겨서 편집을 해서 디자인을 해서 인쇄소에 맡기고 서점에 입고를 하시면 돼요.”
“그래요? 너무 귀찮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수고스러운 일이긴 하죠.”
“대표님이 대신해 주시면 안 돼요?”
“아이고, 선생님. 제 코가 석자예요.”
“그러면 내년에는요?”
“내년에는... 어...”
“내년에라도 내 책 좀 내 줘요. 내 인생도 보면은 소설보다 더해요. 산전수전 다 겪고 장난 아니야.”
“아마도 그렇겠지요...?”
“그래가지고 내가 밤마다 울분에 차서 글을 쓴 거 아니에요. 내 아들, 그 썩을 놈의 새끼한테 화가 너무 나 가지고.”
“그러셨군요, 선생님! 그렇지만... 너무 화가 난 분의 글은 출판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왜요?”
“화는 물론 소중하지만... 작가가 너무 화난 채로 쓴 글은 독자가 읽기에 버거울 때가 많아서요.”
“그래요?”
“네, 혼자 보시는 일기는 아무렇게나 써도 좋은데, 책으로 나올 글이라면 역시 화를 조금 다스리신 다음에 써야 하지 않을까요? 근데 책을 출간하는 게 아드님한테 과연 괜찮을지 잘 모르겠어요. 공개적으로 욕을 하는 모양이라면요.”
“그 생각은 안 해 봤네요.”
“저도 그 부분이 늘 어려워요.”
“대표님 아니 작가님은 그럼 어떻게 했어요? 사람들한테 허락 받고 썼어요?”
“아뇨... 저는 그... 거의 다 지어낸 얘기예요.”
“어머나, 진짜요?”
“네...”
“세상에 상상력이 장난이 아니네요.”
“네...”
“아무튼지 내가 화를 좀 가라앉혀 볼게요.”
“너무 힘드시면 안 가라앉히셔도 돼요. 사실 출판만 안 하셔도 그냥 지금처럼 자유롭게 쓰실 수 있을 텐데요.”
“그럴까요?”
“네. 혼자만 보는 일기도 얼마나 소중한데요. 아무 말이나 맘대로 써도 되고, 화도 마음껏 낼 수 있고요.”
“아유, 그러니까 내가 화풀이할 데가 일기 말고는 없어. 썩을 놈의 새끼 땜에 가슴에 열불이 나고 속이 터져 가지고 진짜...”
통화는 30분이나 더 이어졌다. 나는 아주머니 아들이 친 사고들에 관해 상세히 듣게 되었다. 아주머니는 말했다. “말하니까 속이 다 시원하네! 종종 이렇게 또 전화해서 하소연하고 싶네!” 나는 속이 시원하시다니 다행이라고, 책을 읽어 주셔서 감사하다고만 대답했다. 그 통화 이후로는 더 이상 책에 내 전화번호를 쓰지 않는다.
다른 출판사의 대표님들은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분명 나보다 많은 투고를 받으며 지내실 것이다. 어쩌면 목욕탕에 갔다가 독자를 만나고 지방에 사는 아주머니로부터 걸려 온 울분의 전화를 받으실지도 모를 일이다. 손쓸 수 없이 심각한 통화도 겪어 보셨을 테고 말이다. 그러므로 나처럼 번호를 아무 곳에나 적는 실수 같은 건 안 하실 것이다. 그래도 언제나, 좋은 이야기를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 그분들에게 어떻게 지내시느냐고 묻고 싶은 밤이다.
관련태그: 전화번호, 통화, 제 코가 석자, 좋은 이야기
연재노동자 (1992~). 서울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있다. <이슬아 수필집>,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