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나의 ○○은 어디에서 오는가

쉬이 해답이 나오는 일은 없었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서서히 감정의 고취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한 권, 두 권, 세 권, 전권을 모두 읽었을 때 깨달을 수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책에서 드러낸 ‘○○’은 나의 원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2019. 09. 25)

사진01 (1).JPG

카페 홈즈에서 사진을 찍는 백민석 작가.

 

 

대학 시절, 등록금이 너무 아까웠다. 대체 왜 이렇게 많은 돈을 내고 학교에 다녀야 하는지 불만이 많았기에 낸 만큼 가져가겠다는 생각으로 매일 도서관을 찾았다. 그렇게 하다 보니 자연스레 작가별로 책을 읽게 됐다. 일주일간 밀란 쿤데라를 읽고 나면, 다음엔 나라를 바꿔 무라카미 하루키를 찾았다가도, 어느새 슈테판 츠바이크를 골몰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느낌이 온다. 이 작가는 ‘○○’이로구나. 그의 수많은 소설은 ‘○○’을 조금씩 변형시킨 것이구나, 하고 말이다. 여기서 ○○은 화두라고 하기에는 거창하고, 주제의식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좁으며, 정체성이라고 하기엔 섭섭한 어떤 것이다. 무어라고 한마디로 정의를 내릴 수는 없으면서도 ○○을 보는 순간 “이건 그 작가의 소설이 분명해!”라고 느끼게 만드는 어떤 것이랄까. 그렇게 한참을 들여다보자면 나의 ○○은 무엇일까 궁금해지기도 했지만, 쉬이 해답이 나오는 일은 없었다.
 
여전히 ○○을 찾지 못했던 스물네 살 무렵의 일이다. 당시 나는 지쳐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마음처럼 일이 풀리지 않았다. 매일같이 수유역에 있는 스타벅스로 출퇴근을 하면서도 의구심의 나날, 정말 이대로 영화 시나리오를 써도 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 날도 그랬다.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 집을 나오며 생각했다. 누군가 지금 날 지켜보고 있다면 사인을 주면 좋겠다. 내가 하는 일이 옳다고 말해주면 감사하겠다. 그리고 수유역에 들어섰을 때, 나는 마치 응답처럼 노래 한 곡을 들을 수 있었다.
 
제프 백의 「할렐루야」.
 
왜 하필 그 순간, 수유역 스타벅스에서 「할렐루야」가 흘러나왔을까. 집에서 듣던 미라 앨범의 「할렐루야」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고양감이 왜 그 순간, 찾아왔을까. 원인은 알 수 없다. 다만 그 노래가 그 순간 내게 ○○을 얼핏 보여줬다는 사실은 알겠다.
 
2016년 여름, 또 물음이 생겼다. 이번 물음은 차기작의 고민이었다. 가까스로 상을 타고 책을 출간하긴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될지는 계획이 없는 상태였다. 눈앞에 큰 벽이 서 있는 듯 갑갑하기만 했다. 그 때 마침 페이스북에 공지가 떴다. 소설가들의 소설가로 통하는 백민석 작가가 단편소설 창작 수업을 연다는 소식이었다. 바로 신청했다. 가르침을 갈망했기에 무턱대고 벌인 일이었다. 그렇게 찾아간 강의에서 백민석 작가는 조금 당황했다. 내게 “아니 왜 프로가 왔어?”라며 웃었고, 나 역시 웃었다. 헤헤거리며 “그러게요, 왜 왔을까요.” 하고 얼버무렸다. 속으로는 웃을 기분이 전혀 아니었으면서. 대관절 프로작가라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없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으면서. 강의 첫날, 백민석 작가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중에서도 백민석 작가가 가장 많이 이야기한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와  『1Q84』  였다.
 
한동안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지 않았다.  『1Q84』  는 더더욱 읽을 생각이 없었다. 백민석 작가의 수업을 경청하자니 새삼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고 싶어졌다. 대학 시절 흠뻑 빠졌던 무라카미 하루키, 그 때 나는 무엇을 발견했기에 그토록 읽어댔던 것일까. 그래서 오랜만에 읽었다,  『1Q84』 . 처음엔 재미가 없었다. 예전에 읽었을 때에도 이런 치기 어린 느낌을 받았을까 싶기도 했고, 뭔가 상당히 오래된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서서히 감정의 고취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한 권, 두 권, 세 권, 전권을 모두 읽었을 때 깨달을 수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책에서 드러낸 ‘○○’은 나의 원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올해 7월, 페이스북의 백민석 작가 계정에 재미난 공지가 떴다. 백민석 작가가 새 카메라를 산 기념으로 프로필 사진을 찍어주는 이벤트를 연 것. 나는 바로 모델을 지원했다. 3년 전 그때처럼 가르침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덕이었다. 예상대로 나는 이번에도 가르침을 얻었다. 더불어 멋진 사진이란 별책부록도 얻었으니, 그렇게 배운 것과 사진은 모두 차기작에 잘 써먹을 예정이다. 


 

사진01 (2).jpg

백민석 작가가 찍어준 내 모습.

 

 


 

배너_책읽아웃-띠배너.jpg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ㆍ사진 | 조영주(소설가)

별명은 성덕(성공한 덕후). 소설가보다 만화가 딸내미로 산 세월이 더 길다.

1Q84 1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13,320원(10% + 5%)

당신의 하늘에는 몇 개의 달이 떠 있습니까? 그곳에 사랑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완벽한 사랑일지 모른다…… 일본 출간 한 달 만에 220만 부 돌파! 전세계 독자가 손꼽아 기다려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5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로 시작하여 『노르웨이의 숲』으로 마..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트럼프의 귀환, 위기인가? 기회인가?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거머쥔 트럼프. 글로벌 무역 질서를 뒤흔들 트럼프 2기 정부의 명암과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국제 정세에 미칠 영향에 대해 설명하는 박종훈 저자의 신간이다. 강경한 슈퍼 트럼프의 시대에 직면한 대한민국이 어떠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지 그 전략을 제시한다.

이래도 안 읽으실 건가요

텍스트 힙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독서가 우리 삶에 필요해서다. 일본 뇌과학계 권위자가 뇌과학으로 입증하는 독서 예찬론. 책을 읽으면 뇌가 깨어난다. 집중력이 높아지고 이해력이 상승하며 즐겁기까지 하다. 책의 장르는 상관 없다. 어떤 책이든 일단 읽으면 삶이 윤택해진다.

죽음을 부르는 저주받은 소설

출간 즉시 “새로운 대표작”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 관련 영상을 제작하려 하면 재앙을 몰고 다니는, 저주받은 소설 『밤이 끝나는 곳』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등장인물들이 함께 떠난 크루즈 여행 중 숨겨진 진실과 사라진 작가의 그림자가 서서히 밝혀진다.

우리 아이 영어 공부, 이렇게만 하세요!

영어교육 전문가이자 유튜브 <교집합 스튜디오> 멘토 권태형 소장의 첫 영어 자녀 교육서. 다년간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초등 영어 교육의 현실과 아이들의 다양한 학습 성향에 맞는 영어 학습법을 제시한다. 학부모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지침과 실천 방안을 담았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