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와 공감 사이의 거리 - 연극 <콘센트:동의>
살인이나 강간 가해자들을 변호하는 변호사들과 피해자의 삶이 얼마나 견고하게, 또 허술하게 얽혀있는지 보여준다
성폭행 피해자 게일은 가해자의 변호를 한 에드워드의 집을 찾는다. (2019. 06. 19)
무너진 듯 보이는 그리스 고대 극장의 흔적을 앞뒤로 두고, 쨍한 핫핑크 큐브가 가운데 놓였다. 이야기는 주로 무엇도 균열을 낼 수 없을 것 같은 반듯하고 정갈한 큐브 무대에서 펼쳐진다. 그러나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는 고대 극장의 흔적에서 가만히 관객을 응시하는 성폭력 피해자 ‘게일’이 있다.
위태로운 관계가 완전히 균열되는 지점
큐브 안에서 이야기를 이끄는 건 격식 있게 차려입은 두 쌍의 부부다. 키티와 에드워드가 출산한 아기를 보기 위해 레이첼과 제이크가 그들의 집을 찾았다. 어두운 계열의 옷을 몸에 꼭 맞게 차려입은 네 사람이 핫핑크 큐브 위에서 두드러진다.
키티를 제외한 세 사람은 변호사다. 그들은 현재 자신이 변호하고 있는 인물을 이야기할 때 1인칭으로 표현한다. 가령 너는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물음에 “나? 살인”이라고 대답하고, 동기가 뭐냐고 묻자 “섹스! 당연한 거 아닌가?”라고 받아치는 식이다.
자신이 변호하는 인물에 이입하거나 일에 너무 몰입해서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들의 말투는 마치 줄에 매달린 인형 끝을 한 손가락으로 잡고 지루한 표정으로 위에서 내려다보는 절대자 같다.
말끔한 옷차림과 대비되는 거친 말들이 쉴 새 없이 무대를 채운다. 뒤이어 게일이 등장한다. 극 중 게일은 자신을 성폭행한 사람을 고소했다. 게일이 성폭행 당한 날은 남동생이 세상을 떠난 날이었고, 거실에서 오빠와 그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집으로 돌아온 게일은 자신의 방에서 잠이 들었다. 이상한 느낌에 눈을 떠보니 새벽 세 시였고 일을 당했다. 게일을 성폭행한 사람은 게일도 그 관계에 동의했다고 말한다. 에드워드는 그의 변호사로 법정에 선다.
에드워드는 게일의 진술에 일관성을 무너뜨리고 자신의 의뢰인을 변호한다. 게일은 자신의 피해를 증명하지 못했다. 재판장에서 억울함을 풀지 못한 게일은 파티를 하는 에드워드의 집을 찾는다. 그때 게일의 이야기를 들은 키티는 게일에게 공감하며 사과하지만 에드워드는 키티의 사과에 동의하지 못한다. 묘하게 삐걱거리던 둘의 관계가 완전히 균열하기 시작한 지점이다.
수많은 질문을 던지다
<콘센트?동의> 는 현재 영국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극작가 겸 연출가인 니나 레인의 작품이다. 2017년 영국 로열내셔널시어터에서 초연했고, 한국에서는 인천시립극단의 강량원 예술감독이 연출했다.
매우 빠른 전개와 극을 이끄는 배우들의 에너지가 세 시간이라는 시간을 잊게 한다. 관계 속에서 피해 보는 사람과 주는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뒤섞어 놓았다. 극 중에서 피해자로만 등장하는 것은 게일뿐이다.
게일은 결정적으로 균열을 일으키는 인물이지만, 그의 삶 자체만 바라보면 끝까지 비참하다. 결국 다른 인물들이 잘못에 대한 용서와 동의를 구하는 것도 그들의 세계 안에서만 진행된다. 직사각형 큐브와 고대 극장의 흔적으로 나뉜 무대처럼 섞이거나 공존할 수 없는 세계로 느껴져 씁쓸했다. 동의할 수는 있지만 공감하기는 어려운 거리인 것이다.
자본주의, 부부 관계, 위계, 동의, 복수, 용서 등의 키워드가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연극 <콘센트-동의> 는 20세 이상 관람가이며, 7월 7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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