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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미하일 “탈민족적 보편성의 문학을 향하여”

2019년 <소통과 평화의 플랫폼>이 만난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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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점점 더 정체성 보다 포용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러시아에는 140여 민족이 살고 있습니다. 러시아어로 대화하지만 서로 마음으로 인정하고 소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19. 0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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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인기

 

 

2019년 5월 20일부터 22일까지, 아라아트센터에서 해외 한인 작가들과 국내 작가들이 함께 모여 ‘소통과 평화의 플랫폼’이라는 주제로 교류 행사를 개최합니다.

 

 

한국문학번역원이 주최하는 2019년 <소통과 평화의 플랫폼> 문학축제 참가 작가 인터뷰 두 번째는 러시아 고려인 5세 작가 박미하일이다. ‘5세 작가’라는 소개처럼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의 이주 역사는 우리 근현대사의 아픈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박미하일은 한국과 러시아를 오가며 세 세기에 걸친 고려인들의 이주의 기억을 소설과 그림으로 기록하고 기억하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리즘 문학이 자칫 서로 다 섞이고 나라의 얼굴이 없어지는 것으로 흘러서는 안될 것이다.나라 마다 독창성이 있어야 한다. 재미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술적 독창성, 민족적 독창성이 어우러진 글로벌리즘이 중요하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이번 <소통과 평화의 플랫폼> 문학축제는 그런 맥락에서 중심과 주변을 나누지도, 기원과 갈래를 가르지도 않고 오롯이 문학을 사이에 두고 오래 전 헤어졌던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는 데서 가장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산문학’을 주제로 처음 열리는 이번 행사를 앞에 둔 기다림과 낯설지만 오래 전 만난 듯 여겨지는 다른 나라의 작가들을 만나게 될 설렘을 서로 나누며 짧지만 깊은 울림이 담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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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인기

 

 

박미하일 선생님은 재러한인동포 5세대입니다. 고조부 때부터 연해주에 사시다가 다시 러시아로 이주하신 것이지요. 특히 이 점은 선생님의 장편 소설 『해바라기 꽃잎 바람에 날리다』, 『천사들의 기슭』, 『발가벗은 사진작가』 등의 여러 작품의 중심 소재이며 배경으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선생님 가족사에 얽힌 이주의 내력과 선생님이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서 산 삶의 과정에 대해 먼저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할아버지는 연해주에서 살았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에 따라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어머님은 13살, 아버지는 25살 일 때 결혼해서 저희들을 낳았지요. 우리 형제들은 우즈베키스탄의 나보이 마을에서 학교도 다니며 성장했습니다. 그 마을에는 여러 소수민족들과 같이 살았습니다.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다카르, 터키 사람들도 있었어요. 한 식구처럼 자랐어요. 예를 들어서 터키 친구가 우리 집으로 놀러 오면 우리 집에서는 한국어를 했어요. 우리도 그 집에 가면 터키 말을 했지요. 어렸을 때는 다른 소수민족 말도 잘 들어왔어요. 자라면서 자꾸 잊었지요. 그때 소수민족 사람들과 많이 같이 지냈던 기억이 납니다.12살 때 타지키스탄으로 이사 갔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기술자, 엔지니어였습니다. 그때는 나라에서 사람들을 다른 나라로 보내기도 했어요. 우즈베키스탄이 그때는 독립국가이지만 소련의 한 나라였습니다. 우리는 타지키스탄의 수도 두샨베로 갔어요. 거기에서 나는 미대를 다니며 미술 공부를 했지요. 처음 아버지로부터 여섯 살에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화가가 되고 싶었지요. 그래서 미대를 갔지요. 그림을 그리게 되면서 여행을 더 많이 다녔던 것 같습니다. 구소련 구석구석을 다 다녔습니다. 미대를 나와서 전시를 하고 27살에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단편 소설부터 쓰기 시작했습니다.

 

연해주에서 살다가 당시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중앙아시아로 이주하신 가족사적 내력을 지니고 있군요. 선생님 작품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가족사의 특이성을 좀 더 자세히 소개해 주시지요.


어릴 때 할아버지에 대해서 많이 알고 싶었어요. 그래서 부모님께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연해주에서 어부였다고 합니다. 바다에 가서 물고기를 잡고 여러 사람들과 회사를 만들어서 살았다고 합니다. 1860년경에 우리 조상들이 연해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왜 갔는지는 질문해도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아마 양반들의 수탈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아니면 농사가 잘 안되니까 그런게 아니었을까 생각되기도 하고요. 연해주에는 한국에서 들어온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고 합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교회와 학교도 짓고 마을을 이루어 생활했다고 해요.


러시아 쪽으로 들어올 때는 러시아 이름도 받고 러시아어도 배워야했어요. 제가 할아버지 말씀을 듣고 문학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우리 식구들의 역사를 쓰자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해바라기 꽃잎 바람에 날리다』 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물론 러시아 말을 배우고 써왔습니다. 한국어는 언제 배우게 되었는지요? 그리고 성장기에 한국말이나 문화, 한국의 문학 등을 접할 기회가 있었는지요?

 

소련에 있을 때 한국학교는 없었습니다. 러시아에서 한국말을 배우는 학교는 사십 대에 찾았어요. 1989년이었습니다. 알마타에 한국 교수님들이 오셔서 한국교육원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거길 다니면서 한국말을 배웠어요. 그때는 나이가 많아서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계속 배우고 있습니다. 아직 멀었어요. 제가 한 번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한국어로 짧은 소설을 쓰고 싶다. 그런데 잘 안됐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어떤 소설가들이 있고 예술가들이 있는가? 늘 궁금했습니다. 그때 일본, 중국 문학은 많이 번역되었는데 한국 문학은 별로 없었습니다. 춘향전 정도가 있었어요. 시조 시집 몇 권과 짧은 아동용 동화가 조금 있었어요. 지금 시대의 소설가는 없었습니다. 제가 처음 만난 한국 소설가는 윤후명 선생님이었습니다. 알마타에서. 거의 40년 전이었지요. 윤후명 선생님께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1993년에 작업실에 놀러 오시고 한국에서 개인전을 하면 좋겠다는 말씀도 해 주셨지요. 윤후명 선생님 도움으로 1993년에 인사동에서 개인전을 했어요. 선생님 소설 『돈황의 사랑』 을 제가 러시아어로 번역하기도 하고요.

 

선생님께서는 타지키스탄의 두산베미술대학을 나와서 여러 차례 전시회를 치른 화가입니다. 그리고 1967년부터 소설 창작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소설에는 「천사들의 기슭」의 아르까지의 경우처럼 주인공이 화가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화가이면서 소설가의 길을 함께 선택하게 된 배경이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림과 소설, 선생님께 어떤 점에서 서로 같고 다른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미대를 나와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하면서 소설도 쓰게 된 것은 문학도 똑같은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방법은 다르지만 똑같은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글 쓸 때에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림을 그리면서는 어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두 가지가 섞여요. 물론 둘 다 같이 하면서 힘들어하지요. 미술도 힘이 들고 글 쓰는 것도 힘이 들고요. 저는 같이 두 가지를 하는데, 글을 오래 쓰면 그림이 그리고 싶어져요. 하나를 멈추면 다른 것도 할 수가 없어요. 문학과 미술이 저에게는 똑같은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작품에는 주인공들의 자기 정체성 찾기가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러시아에서의 고려인의 정체성 그 실체는 과연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밤, 그 또 다른 태양』  등의 작품에 는 ‘흰색’의 이미지로 등장합니다. 이런 추상적인 것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을까요?

 

소설을 쓰면서 제가 어떤 사람인가 알고 싶었습니다. 민족적 정체성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저의 문학적 정체성은 어떤 것인가? 러시아에서 자라면서 한국말을 모르기 때문에 책도 읽고 싶고 역사도 알아보고 싶고 했습니다만 모든 것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제 작품에 정체성 문제가 꼭 억지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요즘은 점점 더 정체성 보다 포용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러시아에는 140여 민족이 살고 있습니다. 러시아어로 대화하지만 서로 마음으로 인정하고 소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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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인기

 

 

선생님의 소설 중에,  『사과가 있는 풍경』  의 주인공 드미뜨리는 아버지가 러시아인이고 어머니는 조선인입니다. 드미뜨리가 태어났을 때 외할머니는 검은 머리카락 이외에는 한민족적 특성이 드러나지 않는 손자를 보고 안도합니다. 러시아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소수자로서의 차별과 소외감을 엿보게 하는 대목입니다. 러시아에서 고려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환경과 실태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 등을 들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사과가 있는 풍경』  에서 왜 그런 말이 나왔냐 하면, 트미트리의 윗대가 강제 이주로 중앙아시아에 간 슬픈 역사잖아요. 또 할아버지, 아버지의 역사는 사회주의에서의 억압과 차별도 겪었지요. 그래서 어머님, 할머님 생각에 드미트리 팔자가 자신의 팔자와 달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요. 지금은 우리 교포들 특별히 차별 받거나 힘든 것이 별로 없어요. 일만 잘하고 똑똑하면 크게 어려울 게 없는 실정입니다. 앞으로는 더 그럴테고요.

 

2017년 우리 나라에 번역된  『헬렌의 시간』  에는 등장 인물, 소재, 배경이 러시아가 아니라 한국의 제주도라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주인공 또한 한국인인 강소월입니다. 강소월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에서도 부각되고 있는 다문화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세계 각국에서 온 이방인들입니다. 이제는 민족적 정체성 찾기에서 탈민족적 보편성의지향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언제 한국을 문학적 배경과 주제로 하여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제주도를 세 번 다녀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귤 농사 짓는 것과 제주도 생활하는 것도 느끼고 그랬습니다. 소설 쓰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오랫동안 대전 지역 엄사리 계룡시에서 살았는데요. 거기 살면서 친구들이 많이 생겼어요. 작은 마을에서요. 컴퓨터가 고장 난 적이 있는데 컴퓨터 고쳐주는 사람이 인연이 됐어요. 같이 식사도 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에티오피아를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역사적인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고요. 그래서 갑자기 제주도 방문한 것이 기억나면서아이디어가 생겼어요. 한국 주인공 이름을 강소월로 만들었어요. 제가 김소월 시인의 시를 좋아했어요. 러시아에서 번역을 했었는데 러시아의 문학하는 사람들도 김소월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김소월의 이름에서 따서 강소월이란 이름을 짓게 되었습니다. 책이 나오고 걱정이 많았습니다. 한국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해서요. 나중에 괜찮다고 해서 기쁩니다.

 

선생님은 한국과 러시아를 왕래하면서 ‘세계적 지역인’으로서 살고 있습니다. 『헬렌의 시간』  과어느 한민족의 정체성 찾기보다 탈민족적 보편성의 지향을 보여주는 것 역시 지금 살고 있는 선생님의 않다고 생각됩니다. 앞으로 쓰고 싶은 문학 세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글로벌리즘이라고 해서 지나치게 다 합친다는 것은 별로 좋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글로벌리즘 문학이 자칫 서로 다 섞이고 나라의 얼굴이 없어지는 것으로 흘러서는 안되겠지요. 나라 마다 독창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재미가 있으니까요. 예술적 독창성, 민족적 독창성이 어우러진 글로벌리즘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지금 쓰고 있는 소설 제목이 아주 긴데. 그것도 주인공이 화가입니다. 지금 억지로 쓰고 있지는 않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게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봐야하겠습니다.


아주 유려하고 능숙한 한국어가 아니었기에 박미하일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더 소중하고 깊은 울림을 전해주었다. 장황하게 길고 난삽하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침묵의 기다림에 맘이 달아 오르지는 않을 정도의 적당한 빠르기로 풀어내는 세대를 넘어 이어진 기억과 다음 세대를 향해 건네려는 삶의 지혜가 적절하게 어우러진 인터뷰는 이번 행사를 기다라는 두 사람의 반가움과 설렘을 가감없이 전해주었다. 늦봄 오후 햇살이 살며시 열린 창 틈으로 스며들어 나무 탁자와 의자를 따스하게 덥혀 주듯 그의 말끝을 따르다 보니 어느새 그의 품속 깊숙한 곳에 잠겨 드는 듯 푸근했던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 2019 ‘소통과 평화의 플랫폼’ 문학축제 사전예약 페이지

//booking.naver.com/booking/5/bizes/222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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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홍용희(소통과 평화의 플랫폼 기획위원,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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