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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만 있으면 괜찮을 것 같아

『반려견과 산책하는 소소한 행복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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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방을 까먹고 내리게 한 문제의 책에는 그런 개몽돌씨를 꼭 닮은 개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그 개의 이름은 홍동구, 그가 주인공인 책의 제목은 『반려견과 산책하는 소소한 행복일기』다. (2019. 05.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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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전철을 탄 횟수를 모두 합치면 몇 회나 될까. 하루 왕복 두 번씩 스무 살 때부터 20년을 이용했다고 치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2만 번 이상은 탔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자주 전철을 타다 보면 당연히 ‘그 일’이 생긴다.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일, 즉 소지품 분실 말이다.

 

덤벙거리는 성격이라 자주 물건을 잃어버린다. 대부분 작은 것들. 지갑이라던가 책, 휴대폰, 가벼운 옷이나 우산, 카페에서 입을 앞치마에 커피 텀블러, 심지어는 생일 선물로 받은 인형을 받자마자 잃어버린 적도 있다. 최근엔 이런 일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남양주로 이사를 온 후 전철 자체를 타는 일이 드물어진 덕이다. 지금이야 망원동의 카페 홈즈까지 출퇴근을 하느라 경춘선을 타고, 서울 지하철을 갈아타고 한 시간 반 넘게 통근을 하지만 이러기 전까지는 매일 집과 동네 주변을 걸어 다니는 게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그래서일까, 다시 경춘선을 타고 출퇴근하자 더 심한 덜렁이가 되어버렸다. 평소보다 훨씬 잦은 빈도로 뭔가를 떨어뜨린다. 책갈피, 신용카드, 휴대폰, 가끔은 옷이나 가방을 열고 다녀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주변의 친절한 분들이 내게 “이거 떨어뜨렸어요.” 라던가 “가방 열렸어!” 하고 달려와 알려주는 일을 일주일이 멀다하고 겪고 있자면 세상은 아직 따듯하구나, 새삼 깨닫는다. 이번에도 이런 식으로 멍청히 걷다가 물건을 하나 잃어버렸다. 어지간해서는 까먹을 일이 없을 것 같은 3kg이 넘는 백팩을 선반에 올려놓은 채 종착역인 상봉역에서 내렸다.

 

출퇴근하는 시간이면 혹시 지루할까 책을 몇 권씩 가방에 넣고 다닌다. 가끔 퇴근하며 이 가방에 근처 서점에서 구입한 책 몇 권을 추가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나는 전철에 타면 일단 가방을 선반에 올린다. 커다란 가방을 잊는 일은 어지간해서는 없다. 늘 책을 넣고 다니다 보니 평균 무게가 3kg이 넘는다. 게다가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면 바로 눈앞에 가방이 있으니 잊을래 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날은 달랐다. 한손에 책, 다른 손에 핸드폰과 교통카드가 잘 있는 것을 확인한 후 눈앞의 가방은 잊어버렸다.

 

책을 읽다가 내려야 할 지하철 역을 지나친 적이 잦다. 어렸을 때부터 책이나 게임 등 뭔가에 집중하면 늘 그런다. 이 날도 그랬다. 집에서 들고 온 책에 너무 푹 빠져든 탓에, 가방을 갖고 탔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이렇듯 날 푹 빠지게 만든 책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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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우리 집에 온 개와 9년을 함께 살았다. 이름은 외자 몽이지만 부르는 방법에 따라, 혹은 털을 깎는 방식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개몽돌씨, 호나우딩몽, 해골몽, 개나리 등으로 부르다가 최근엔 개몽돌씨에 정착했다. 개몽돌씨는 언제나 나와 함께 글을 쓴다. 내가 글을 쓸 때면 무릎 위에 올라와 팔꿈치에 턱을 괴고 심할 때엔 코까지 드르렁드르렁 골며 잠이 든다. 나는 이런 개몽돌씨를 깨울 수 없어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꼼짝도 못하고 글을 썼고, 이 결과물이 한 권 두 권 책으로 나와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개몽돌씨는 나를 바른 길로이끄는 페이스메이커일지도 모르겠다고, 지금의 내가 있는 건 8할은 개몽돌씨 덕인 것 같다고.

 

내가 가방을 까먹고 내리게 한 문제의 책에는 그런 개몽돌씨를 꼭 닮은 개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그 개의 이름은 홍동구, 그가 주인공인 책의 제목은  『반려견과 산책하는 소소한 행복일기』  다.


동구와 작가가 함께 살아온 이야기를 들여다보자니 그저 웃음이 난다. 작가의 모습이 나와 닮아서, 개와 함께 사는 이야기가 우리 집 이야기 같아서 그만, 가방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고도 “동구만 있으면 괜찮을 것 같아.”라는 안일함에 젖어버린다. 종착역인 상봉역에서 내려 인파에 밀리듯 계단을 걸어 내려가면서도 책의 여운에 빠져 “아아, 가방쯤 잃어버려도.”라고 중얼거리며 행복했던 것이다.

 

물론, 그 행복은 10분 후 “아악, 안 돼!” 비명을 지르며 역무실로 뛰어가는 걸로 끝나버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반려견과 산책하는 소소한 행복일기최하나 저 | 더블엔
동구를 산책시켜준다고 생각했는데, 한 번씩 지독한 슬럼프에 멈춰 있는 주인을 동구가 세상 밖으로 산책시켜주고 있었다. 반려견을 만나 인생의 둘레가 더 넓어지게 된 작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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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은 성덕(성공한 덕후). 소설가보다 만화가 딸내미로 산 세월이 더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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