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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해서 더 와닿았던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객석에서
올해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한반도의 뼈아픈 역사, 그 통한의 시대를 온몸으로 겪었던 한민족의 이야기가 잇달아 무대 위에 펼쳐지고 있다. (2019. 04. 03)
올해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한반도의 뼈아픈 역사, 그 통한의 시대를 온몸으로 겪었던 한민족의 이야기가 잇달아 무대 위에 펼쳐지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받았던 공연은 초연작인 <여명의 눈동자> 가 아닐까. 1990년대 초반 드라마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 뮤지컬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캐스팅부터 무대 구현까지 관심이 집중됐다면 이후에는 몇 차례 개막이 연기되며 과연 공연이 진행될 수 있을까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지난 3월 1일 우여곡절 끝에 작품은 무대에 올랐고, 알려진 것보다 초라했던 무대는 기대와 다른 감동으로 관객들의 가슴을 적시고 있다.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를 보며 공연장 안팎에서 들었던, 또는 관객들이 함께 나눴을 법한 이야기를 각색해 보았다.
나비석 B구역 1열 2번 : 부모님한테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를 볼 거라고 했더니, 90년 초반 대단한 드라마였다고 하더군. 채시라, 최재성, 박상원 씨 등도 당시 최고의 인기 배우였다고.
나비석 B구역 1열 3번 : 1991년 10월부터 4달간 방영됐는데 평균 시청률이 40%를 넘었다지. 우리 고향집에도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LP가 있어(웃음). 요즘 드라마 OST에는 인기 가수들이 대거 참여하잖아. <여명의 눈동자>는 연주곡만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20만 장 이상 판매됐다고 해. 드라마 OST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더군.
나비석 B구역 1열 2번 : 무대에서도 드라마 OST 중 메인 테마곡이 나오던데. 잔잔한데 깊은 슬픔이 있는 곡이랄까. 하긴 우리의 역사지만 저렇게 참혹한 시절이 있을 수 있을까 싶어. 주요 등장인물이 조선인 학도병 대치와 일본군 위안부 여옥, 위생병 하림이잖아. 상처뿐인 그 만남이 그들에게는 혹독한 시절을 견딜 수 있었던 작은 희망이었다는 점이 안타까워. 그 마저도 이념과 사상의 소용돌이 속에 또 다시 상처받고 헤어지잖아.
나비석 B구역 1열 3번 : ‘소용돌이’라는 말이 딱 맞는 것 같아. 그 격변의 시절에 자신의 의지나 선택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었을까? 떠밀려가다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맞닥뜨리는 대로, 겨우 목숨을 부지하며 살았겠지.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나라면?’이라는 대입조차 할 수 없는 시절인 것 같아. 그래서 세 사람의 운명이 너무나 가슴 아프고. ‘여명의 눈동자’라는 제목을 생각해 봤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새날이 밝아오기를 기다리는 시대였겠지만, 그 소용돌이 안에 있는 사람들은 좋은 날은 기대하지도 못했을 것 같아. 그저 서로가 작은 희망이고 여명이지 않았을까. 뼈아픈 시절을 버틸 수 있는 힘 말이야.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던 대치가 여옥의 죽음 앞에서 주저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도 같은 이유겠지.
나비석 B구역 1열 2번 :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10여 년이 배경인데, 따지고 보면 세 사람의 나이가 10대 후반에서 20대였을 테니 참 가혹한 현실이었던 거지. 꿈도 희망도, 사랑도, 어쩌면 오늘도 없는 삶이지 않았을까. <여명의 눈동자> 원작이 김성종 씨의 동명 소설인데 10권 분량이라고 해. 격동의 현대사, 그 소용돌이를 온몸으로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150분으로 무대에서 담아낸다는 게 쉽지 않았을 거야.
나비석 B구역 1열 3번 : 핵심적인 사건만 잘 다뤘지만, 우리의 역사이기 때문에 그 압축에서 빈약함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아. 역사를 잘 알든 모르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것들이 있으니 무대에서 상징적으로 하나만 제시해도 자연스레 가지가 펼쳐지잖아. 실제 무대에서 표현한 것보다 관객들은 풍성하게 극을 이해하는 셈이지.
나비석 B구역 1열 2번 :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공부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던데. 대충 알고는 있지만 정확히 모르는 게 많잖아. 공연을 보면서 반성하게 되는 부분도 있더라고. 다른 것보다 이 작품에서 제주 4.3사건이 두드러져서 다시 한 번 되새겨봐야겠다 싶더라.
나비석 B구역 1열 3번 : 그렇지. 사실 원작이 워낙 방대한 스토리이기도 하지만, 핵심적으로 다뤄야 할 내용이 일본군 위안부를 비롯해 생체실험, 수많은 무력충돌과 울부짖음이잖아. 당시의 모든 희생과 울분을 그대로 담아내면 피와 눈물로 가득한 무대가 될 텐데. 그것 때문에 관람을 주저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을 거야. 그런 부분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이 작품의 관건이라고 생각했는데, 미니멀한 무대에서 간접적으로 표현하니까 더 집중해서 극에 빠져들 수 있었던 것 같아.
나비석 B구역 1열 2번 : 그러게, 이 작품이 투자 문제로 결국 제작비가 부족해서 몇 차례 개막이 연기되고 별다른 무대장치 없이 MR로 단출하게 공연되는 거잖아. 일이 막힘없이 진행됐다면 어떤 무대였을까 궁금하면서도 어쩌면 이렇게 담백하게 담아내서 관객들의 마음에 더 큰 감동을 주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 난 이렇게 무대 위에서 공연을 보는 것도 처음이야. 마치 소극장 공연을 보는 것처럼 덩달아 가슴이 뛰더라고. 배우들의 눈빛과 호흡까지 고스란히 전해지고.
나비석 B구역 1열 3번 : ‘무대석’이라고 해서 기존 작품에서도 무대 위에 객석을 배치한 경우는 있었지. 대극장 공연에서 이렇게 대규모로 배치한 적은 없지만. 하긴, 대극장의 1층과 2층 객석이 거의 텅 빈 모습을 보는 것도 처음인 것 같다. 창작진과 배우들이 이렇게라도 이 작품을 무대 위에 올리고 싶었던 거겠지. 이른바 ‘엎어질 수도’ 있었는데, 그야말로 열정과 애정 페이 아니겠어. 그래서 무대가 더 뜨겁게 느껴지는 거겠지.
나비석 B구역 1열 2번 : 그러게, 일단 모든 제작진과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전면에서 무대를 보면 어떨까 궁금해. 나비석을 없애고 여느 공연처럼 무대 전체를 사용하면서 1층 객석을 채웠어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대단한 무대장치 없이도 잘 담아낸 작품이라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나비석 B구역 1열 3번 : 부족한 느낌보다는 아깝다는 느낌이 낫기 때문이 아닐까? 이번 공연은 분명히 관객들이 무대 위에서 배우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어서 가슴이 더 뻐근했을 테고. 그런데 확실히 객석 위치에 따라 시야 제한도 있고, 나비석의 경우 앙상블 합창은 너무 가까워서 오히려 대사 전달이 안 되더라.
나비석 B구역 1열 2번 : 초연으로 끝나지는 않겠지. 기본적으로 잘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하거든. 첫 장면이 지리산에서 세 남녀가 마주하는 씬이잖아. 퍼붓는 눈, 누군가를 찾는 숨찬 발걸음, 총성, 그리고 오열. 마지막에 다시 그 장면이 연결될 때 눈물이 나더라고. 처음에는 멀뚱히 바라봤던 장면이 마지막에 이해가 됐다면 잘 만든 거지. 그러니 재연 때 극 전체가 어떻게 보완될지 함께 기대해 보자고!
관련태그: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객석에서, 3월 1일 , 역사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