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뭐길래] 뒤표지까지는 제발 자랑하지 말길 – 단호박 편
당신이 지금 읽는 책이 궁금해요 ④
취미로 읽는 책이라도 어딘가 지면에 써먹을 내용이 없을까 딴마음을 먹고 읽게 되어서, 일부러라도 무용한 책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2018. 12. 18)
<채널예스>가 미니 인터뷰 코너 ‘책이 뭐길래’를 매주 화요일 연재합니다. 책을 꾸준하게 읽는 독자들에게 간단한 질문을 드립니다. 심각하지 않은 독서를 지향합니다. 즐기는 독서를 지향합니다. 자신의 책 취향을 가볍게 밝힐 수 있는 분들을 찾아갑니다.
자기 소개 부탁 드립니다.
우주 최고 도서 팟캐스트 <책읽아웃> 에서 책을 소개하는 일을 한다. NO.1 문화웹진 <채널예스> 의 정의정 기자이기도 하다. 요즘은 어느 게 먼저인지 알 수 없다.
요즘 어떤 책을 읽고 있나?
일과 관련 없는 책으로는 『펀치 에스크로』 와 『시스터 아웃사이더』 , 『아침의 피아노』 . 참, 뜬금없지만 『피아노 조율』 을 읽었다.
그 책을 선택한 계기는?
『펀치 에스크로』 는 출판사에서 홍보용으로 보내줬다. SF가 세계를 만드는 방식에 흥미를 느끼던 참이라 읽어보았다. 일을 끝마치면 일과 멀리 떨어져 있고 싶어 할 때가 많은데, SF 소설은 나를 더 멀리로 데려다 놓는 기분이 든다. 하드 SF라는 장르답게 하드한 내용이 많았지만 어려운 내용은 과감히 생략하고 철저히 재미를 추구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읽었다. 피 대신 일산화탄소를 먹는 모기가 개발되어 대기 오염 문제가 해결되고 순간 이동 기술로 교통수단이 완전히 바뀐 2147년이 배경이다. 홍보용이었지만 홍보할 데가 없었는데, 여기라도 홍보했으니 다행이다.
『시스터 아웃사이더』 는 최근 페미니즘의 교차성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교차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같아, 빚진 마음으로 쌓아만 뒀다 최근에야 펼쳐 읽기 시작했다. 경계를 사유하는 일은 늘 어렵고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내년까지 독서가 이어질 것 같다.
취미가 피아노다. 피아노가 제목에 들어간 책은 다 못 읽어도 일단 사서 쟁여놓는다. 한 주제에 꽂히면 책을 모으는 호더 기질이 특히 피아노에서만 발현된다. 『아침의 피아노』 는 전혀 피아노와 관련한 내용은 아니지만, 결론적으로는 매우 좋은 책이었다. 계속 어딘가 이상한 음을 내는 피아노를 혹시 고칠 수 있을까 싶어서 욕심을 부려 『피아노 조율』 책도 샀다. 조율하는 방법이 나올 줄 알았는데 화음 맥놀이 현상과 음정별 비율이 나왔다. 그거 아나? 완전 4도와 완전 5도의 맥놀이 비율은 1:1.3454545… 라는 사실을? 이렇게 쓸데없는 지식을 책에서 얻어 가는 거, 좀 좋아한다. 장바구니에는 『매일 기초 연습법』 과 『건반 위의 철학자』 가 담겨 있다. 나중에 또 소개할 일이 있겠지.
책을 선정할 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인가?
출판사에서 만드는 도서 소개와 보도자료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정확하게 책을 말한 상세 자료를 보자면 책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한다. 행여 책을 읽고 실망하더라도 소개 글이 좋으면 용서가 된다. 그 밖에는…… 저자가 누구인가, 출판사가 어디인가, 책 디자인이 어떤가, 신간인가 정도? 다양하게 영향을 받고 있다. 취미로 읽는 책이라도 어딘가 지면에 써먹을 내용이 없을까 딴마음을 먹고 읽게 되어서, 일부러라도 무용한 책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이런 책을 보면, 좀 화가 날 때는 언제인가?
표 1(표지)부터 내지를 거쳐 표 4(뒤표지)까지 자기 자랑일 때. 유행에 편승해 기존에 판매가 많이 됐던 책의 주제와 내용과 디자인을 그대로 베껴 냈을 때. 타인을 이해할 생각 없이 독자에게 훈계조로 썼을 때. 드물지만 <채널예스>를 채널예스24 라든가 예스채널이라든가 채널yes라고 쓴 책을 봤을 때. 투덜이 스머프처럼 너무 많이 썼군. 화가 나는 일이 많아 읽으면서 화가 나면 얼른 책을 덮는다. 더 이상 화가 많아지면 익은 단호박이 된다.
구구절절이 썼지만 내가 읽기 불편한 책을 만나면 판단을 유보하는 편이다. 좋게 말하면 유보고 정확히 말하면 책임 회피다. 누군가 행여나 혹시나 그 책에 대해 물어본다면, ‘어… 난 이런 점에서 별로였는데 다른 사람은 저런 점에서 좋을 수도 있어’라고 황희 정승처럼 말한다. 내가 읽고 화났다고 해서 모두가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모든 책은 쓸모가 있다고 믿는다.
평소 책 선물을 즐겨 하나?
즐겨 하지는 않는다. 나보다 해당 책이 더 필요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가볍게 제안하고, 거절해도 상처받지 않는다. 읽고 나서 별로면 버리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책을 만든 분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책 하나만큼의 공간을 요구하는 건 나의 권리 바깥에 있다. 선물보다는 추천이 마음 편하다. 단톡방에서 이야기하다 무슨 주제가 나오면 ‘호호 그와 관련해서는 이런 책이 있답니다’ 하면서 <채널예스> 기사를 붙여 넣는다든지.
2019년 기대하는 책 또는 저자가 있다면?
정세랑 작가님 계약이 밀려 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좋아하는 작가가 열심히 일하는 건 참 좋은 일이다. 부디 아프지 말고 할머니 될 때까지 오래오래 써주세요. 사이행성에서 『젠더 메디신』 나온다고 했는데 영영 조용하다. 대표님 보고 계십니까… 잘 계시죠(찡긋찡긋) 성심성의껏 읽고 소문낼게요 책 내주세요!
단호박에게 책읽아웃이란?
어쩌다가 내가 이걸 하게 되었지 종종 생각하는 업무.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던 수순을 밟아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이렇게 말하면 또 투덜이 같겠지만, 솔직히 즐겁고 열심히 하고 있다. 김하나 작가님의 진행에 늘 감탄하고, 오은 시인님의 다정다감함에 늘 감동받는다. 힘 써주시는 그냥 님, 프랑소와 엄 님, 캘리 님, 이지원 PD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참, 챙겨 들어주시는 청취자 여러분은 말할 것도 없고! 누구도 혼자 만들지 않는 방송이어서 기쁘다.
아침의 피아노김진영 저 | 한겨레출판
자신 안에서 나오는 사유를 위한 공부를 귀히 여기라고 늘 당부했던 선생의 마음처럼 책은 선생이 선생 자신과 세상과 타자를 사유하며 꼼꼼히 읽어낸 문장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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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mji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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