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박현주의 초보운전자의 독서법
실기 시험에 대하여
실패에 대한 몸의 기억을 바꾸기 채드 하바크의 『수비의 기술』
몸이 기억한 것들을 계속해낼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나는 아직 ‘생각이 없는 존재로 되돌아간 존재’가 아니었기에 아쉽게도 주행 시험에서도 한 번 떨어졌다. (2018. 08. 17)
언스플래쉬
고백하자면, 내 운전면허 첫 시도는 2012년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10여 년 전, 미국에 살 때 면허를 따려고 해본 적이 있었다. 내가 살던 동네는 대도시로부터 고속도로를 타고 3시간 정도 걸리는 시골이었다. 대학 건물들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도시가 퍼져 있고, 그 경계를 벗어나면 굴곡 하나 없이 직선으로만 그려지는 들판이 이어진다. 곡물을 저장하는 사일로(silo), 농가와 헛간이 점점이 찍혀 풍경에 포인트를 준다. 너무도 오롯하게 혼자 서 있어서 외롭게도, 당당하게도 보이는 집들.
그런 동네에서 문화적 교양이라든가 생활의 필요를 갖추고 살려면 운전이 필요하다. 물론 많은 캠퍼스 타운이 그러하듯이 레드, 블루, 옐로, 그린처럼 색깔의 이름을 단 버스가 있다. 캠퍼스 근처에서 살면서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다가 6시 전에 들어오면 그린과 블루를 탈 수 있다. 6시 이후에는 블루는 운행이 중지된다. 가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장에 갈 때면, 짐을 들고 버스 타고 이동하는 게 쉽지 않을까봐 친절한 친구들이 태워준다. 대도시에서처럼 지나가는 택시를 붙잡을 순 없고, 예약해야만 한다. 영화나 공연은 버스 노선과 시간에 따라 정해진다.
그런 동네에서 2년쯤 살다가 운전을 배우기로 했다. 외국이라는 낯선 불안감도 극복했고, 친구들도 생겼다. 이제 진짜 정착하는 거야, 하고 결심하니 운전은 필수였다. 필기시험은 평소 암기 시험에 단련된 학생에게는 어렵지 않았다. 문제집을 사서 한 번 풀어보는 것만으로도 붙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다음 단계에서 나는 세 가지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1) 면허를 따기도 전에 차를 산 것 : 샀다기보다 이사하는 학생이 남긴 낡은 차를 헐값에 넘겨받았다. 연습할 때 쓰면 되겠지, 라고 태평하게 생각했다. 제대로 몰아보지도 못한 이 차는 애물단지가 된다.
(2) 정식 운전 교습을 등록하지 않은 것 : 당시에 대학 동기가 같은 동네로 이사 왔다. 성실하고 고압적이지 않은 친구인데 운전을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친구는 좋은 운전자고 자상한 교습자였다. 그러나 자신 없는 기술을 배울 때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3) 자신의 기질을 잘 모른 것 : 그때까지의 나는 제대로 된 운동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움직이지 않더라도 내 몸을 옮겨주는 물건들을 무서워했다. 엘리베이터도, 에스컬레이터도, 회전문조차도 통과할 때면 약간 두려움을 느끼는 유형이었다.
내 생애 최초의 운전 연습은 어느 가을의 이른 아침, 빈 주차장에서 시작되었다. 친구가 모는 차를 타고 시내의 적당한 공터를 찾았다. 미국 소도시의 야외 주차장은 예상 이상으로 넓었다. 처음 핸들을 잡았을 때가 기억난다. 손에 느껴지는 차가운 플라스틱의 감각. 오래된 만큼 크게 울리던 소리. 나는 친구의 지시에 따라 서서히 액셀을 밟고 나아갔다. 아마 그때의 속도는 시속 15킬로미터 정도 아니었을까. 그렇게 직진으로 10여 미터를 갔을 때 친구는 커브를 주문했고, 나는 호기롭게 핸들을 꺾은 결과…… 주차장 주위를 두른 쇠말뚝으로 돌진.
워낙 저속이었고, 친구가 옆에서 잡아주어서 간신히 사고 없이 멈췄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다치지 않았다. 차와 기둥 양쪽에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하지만 충돌이라는 가능성을 엿본, 첫 실패의 충격은 내 마음에 흔적을 남겼다.
그 이후로는 운전 연습을 하지 않았다. 실기 시험은 보지 않았고, 미국에서의 삶은 그렇게 다시 필요를 줄이는 것으로 재정비되었다.
그때 다시 도전하지 않았던 이유를 생각해본다. 잠재적 위험을 감수하고 굳이 운전을 해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때는 어렸다. 남의 도움을 받아서 사는 것을 괴로워하지 않을 만큼 어렸다. 외국에서 적은 생활비로 살다 보니 기본적 욕구를 채우는 데 급급하기도 했다. 이처럼 여러 가지 이유가, 핑계가 있었다.
하지만 다시 운전대를 잡지 않은 진짜 이유는 또다시 실패하기 싫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제일 솔직하리라. 굳이 외국이라는 환경을 탓하지 않더라도,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는 삶은 하루하루가 사소한 좌절과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만도 버거운데 삶을 살짝 흔들 수 있는 중간 크기의 실패들이 적잖이 일어났고, 마음 아팠고, 그를 이겨 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정말로 필요하지 않다면, 없이도 살 수 있다면 가능한 한 실패를 피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실패는 주저앉기 쉽지만 언제까지나 머물 수는 없는 집과 같다. 우리는 실패를 두려워하고 너무나 미워하지만, 일단 한번 찾아오면 언제까지나 거기 있고 싶다는 마음도 든다. 또 다른 실패는 더 크고, 더 아프고, 더 강렬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미 맛본 실패는 헤어날 수 없는 나쁜 친구처럼 어느새 편안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안온한 실패에서 언젠가는 떠나온다.
한국에서 다시 실기 시험에 임하는 나의 마음도 비슷했다. 이번엔 준비도 했고, 전문 강사에게 연수도 받았고, 이전보다는 여유가 있었다. 실패하면 새로이 시도하면 된다…….
여유가 지나쳤던 걸까, 나는 심지어 기능 시험에서 두 번 연속으로 떨어졌다.
운전 시험 간소화의 시절이었다. 기능 시험이라고 해봤자, 지시에 따라 벨트를 매고 시동을 걸고 방향 지시등을 켜는 등의 간단한 조작을 해 보이고, 50미터를 가서 커브 한 번을 돌고 들어오면 완수되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나는 한 가지를 할 수 없었다. 커브 돌기. 10여 년 전에 향했던 그 주차장의 쇠말뚝과 유사했다. 한 번은 너무 빨리 돌았고, 다른 한 번은 선을 벗어났다. 나는 어찌해야 제대로 커브를 돌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우리 몸은 생각보다 실패를 더 오래 기억하는지도 모른다. 10년 전에 몰랐던 것처럼 몸은 여전히 핸들을 살짝 트는 그 동작을 몰랐다.
채드 하바크의 『수비의 기술』 은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야구에 관한 책이다. 작품 내에서는 아파리치오 로드리게즈라는 전설적인, 그러나 가상의 선수가 쓴 자기 수련을 가르치는 책 제목이기도 하다. 소설의 주인공은 미국 중서부의 웨스티시 대학의 야구 선수들이다. 풋볼팀 주장과 야구팀 주장을 동시에 맡고 있으며, 로스쿨을 준비하고, 동시에 선수들을 엄마처럼 보살피는 마이크 슈워츠. 체구가 작고 소심해 보이지만, 아파리치오만큼이나 전설적인 유격수가 될 헨리 스크림섄더, 헨리의 룸메이트이자 문학청년이고 동시에 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오웬 던. 그리고 대학 총장 거트 어펜라이트의 딸 펠라. 이들은 각기 인생에서 어떤 실패와 상실을 겪고 좌절에서 딛고 일어나려고 노력하는 청춘들이다.
나의 운전면허 시험 실패가 이들이 겪은 실패와 완전히 동일하진 않을 것이다. 적어도 헨리의 좌절은 나보다 깊었다. 큰 야심 없이 야구를 하던 꼬마 헨리는 마이크의 눈에 들어 웨스티시에 오고, 3년 만에 눈부신 활약을 보이며 스카우터들의 눈에 든다. 무실책 연승 기록까지 세워가며 꿈에 그리던 세인트 카디널스의 입단까지 거의 다다랐던 헨리는 어느 날 실수로 오웬을 다치게 하고 그다음부터는 제대로 송구할 수 없게 된다. 야구에서 완벽을 추구했던 헨리가 쌓아올린 모든 것들이, 그의 삶이 무너지고 만다.
가상의 책 『수비의 기술』 에는 운전의 기술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몇 가지 잠언들이 있다. 가령,
“3. 세 단계가 있다. 생각이 없는 존재. 생각하는 존재. 생각이 없는 존재로 되돌아가는 존재. 33. 첫째와 셋째 단계를 혼동하지 말라. 생각이 없는 존재가 되지 못할 사람은 없다. 생각이 없는 존재로 되돌아가는 사람은 극소수다.”(『수비의 기술』 1권, 34쪽)
모든 기술이 이러하다. 익히기 전에는 아무 생각이 없고, 익힌 후에는 공들여 그를 행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그 기술을 익혔다고 말하려면 다시 생각 없이 행해야만 한다. 심리학의 정보처리 모델에서 자동화된 상태가 되었을 때 결국은 그 기술을 익혔다 말할 수 있다. 실패는 생각하는 존재에 머물러 있을 때 일어난다. 자신의 동작을 하나하나 의식하고, 그를 재연하려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을 때 실패하고 만다. 생각하는 존재에서도 과업을 이룰 수는 있지만, 결국 어느 순간 동료의 머리로 공을 던지는 것 같은 실수를 저지르면, 아무리 해도 눈앞의 길에서 핸들을 틀 수가 없으면 원하는 경지에 다다를 수 없다.
몸이 자연스럽게 해낼 수 없다. 내가 겪은 실패였다. 하지만 아직 희망이 있었다. 헨리 스크림샌더처럼 수없이 많은 공을 던지고, 한없이 멀리 뛰고, 수없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 후에 겪은 실패가 아니었기에. 나는 아직 생각이 없는 존재였기에, 생각을 하며 몸을 만들지 않았기에. 모든 사람이 수월히 통과하는 기능 시험에 두 번이나 떨어진 것은 내가 겪었던 실패들에 비하면, 앞으로 겪을 실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인간의 삶은 이제 더 실패할 기회조차 남지 않았다고 생각할 때 끝나버린다. 『수비의 기술』 에는 그런 비극적인 이야기도 있다. 실패는 이제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을 때 더는 이어지지 않는 삶이 있었다. 그에 비하면 운전면허 시험은 마냥 너그럽다. 성공할 때까지 기회를 계속 준다. 나는 운전면허 시험에서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얼마든지 연습할 기회가 있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잇따라 시험을 볼 수 있다.
『수비의 기술』 에서는 또한 실패한 자들을 위한 위로도 있다.
“영혼이란 사람이 처음부터 지니고 태어나는 게 아니라, 노력과 실수, 학습과 사랑을 통해 만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라고.”(『수비의 기술』 2권, 419쪽)
영혼은 타고 나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우리 몸이 행하는 많은 일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다못해 운전면허 실기 시험 연습을 통해서도, 떨어지고 다시 연습하고 붙으려는 노력을 통해서도 영혼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수만 개의 공을 던지든, 연습장을 계속 빙글빙글 돌든, 우리 몸에서 실패를 몰아내고 성공의 시도를 기억할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원하는 곳에 당도하게 된다.
『수비의 기술』 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게 또 하나 있다. 게임을 이기는 기술은 오로지 홈런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배팅 연습을 수천, 수만 번 하는 건 매번 홈런을 치기 위해서가 아니다. 안타를 치고 진루하기 위해서만도 아니다. 방망이를 계속 휘두른 사람이 번트도 칠 수 있다. 헨리가 슬럼프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했던 것도 그러한 엄청나고 화려한 기술이 아니었다. 보기 좋고 근사한 방법은 아니었지만, 작은 기술로 팀과 자기 자신을 구했다. 운전면허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서는 홈런이 필요 없다. 백 점을 맞아야만 통과하는 것이 아니기에, 사소한 실책이 게임을 완전히 망치진 않는다. 커브 길이 닥쳐왔을 때 살짝 손목을 꺾기만 해도 되는 것이다. 타자가 번트를 치기 위해 손목을 꺾듯이. 그 번트를 치려고 연습했던 많은 시간의 기억을 몸으로 불러내면서. 기능 시험이 야구가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가. 몇 시간의 연습만으로도 번트를 칠 수 있으니. 그렇게 번트를 치고 나는 기능 시험에서 합격했다.
몸이 기억한 것들을 계속해낼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나는 아직 ‘생각이 없는 존재로 되돌아간 존재’가 아니었기에 아쉽게도 주행 시험에서도 한 번 떨어졌다. 이번에는 노란 신호에서 조급해져서 속력을 냈다는 이유였다. 마음이 급했고, 실책을 범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너무 걱정하거나 좌절하거나 괴로워하지 않았다. 그저 또 한 번 레슨에 등록했을 뿐이었다. 연습하면 몸이 기억하고, 그러면 언젠가 실패라는 편안한 고뇌에서 떠날 수 있다는 것을 그때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운전면허 학원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이었다.
수비의 기술 1채드 하바크 저/문은실 역 | 시공사
기존의 단순한 스포츠 소설이 아니라는 점은 주인공 헨리의 포지션이 투수나 타자가 아니라 내야 수비의 중심인 유격수라는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소설을 번역하고 에세이와 로맨스 추리 소설을 쓴다. 그리고 드라마를 본다.
<채드 하바크> 저/<문은실> 역10,800원(10% + 5%)
‘야구 소설, 캠퍼스 소설은 이럴 것이다’라는 선입견을 깨고 11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본 집념의 소설 채드 하바크가 2000년부터 쓰기 시작한 『수비의 기술』은 2009년 말 크리스 패리스-램이라는 출판 대리인을 만나기 전까지 셀 수 없는 출판사와 출판 대리인들로부터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수비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