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해방되는 순간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Liberation』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적지 않은 수록곡을 밀도 있게 담아냈다. 록과 소울, 알앤비와 힙합을 아우르면서도 산만하지 않다. (2018. 07. 18)

Liberation_cvr.jpg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에게 지난 10년은 그리 쉽지 않았다. 일렉트로닉을 대대적으로 이식한 4집 <Bionic>(2010)과 좀 더 다채롭게 구성한 5집 <Lotus>(2012)는 다소 난해하고 들쑥날쑥한 만듦새로 쓴맛을 봤다. 대중과 평단이 기억하는 그의 모습은 레트로 싱어로 변신했던 3집 <Back To Basics>(2006)가 마지막이다. 핏불(「Feel this moment」), 어 그레이트 빅 월드(「Say something」) 등과의 협업이 아니었다면 그의 이름을 되새길 기회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6년 만에 발매한 6집 <Liberation>에는 고뇌의 흔적이 가득하다. 신보의 키워드는 앨범 제목 그대로 해방이다. 사람들의 시선과 기대, 유행에 대한 강박은 걷어내고, 잘 할 수 있는 것과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매번 새로운 콘셉트로 대중을 매혹했던 그가 가면을 벗고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자체로 돌아온 것이다. 화려한 소리 장식 대신 알앤비와 힙합을 중심으로 정돈된 톤을, 일정치 않은 곡 단위의 펀치 대신 인트로와 인터루드(interlude)를 적소에 활용해 부드러운 흐름을 만든 것도 포인트다. 물론 이는 카니예 웨스트, 앤더슨 팩(Anderson .Paak), 엠넥(MNEK), 줄리아 마이클스 등 앨범에 참여한 특급 뮤지션들의 공이기도 하다.

 

이러한 특징은 음반의 초반부에서 두드러진다. 영화 <문라이트>(2016)의 음악을 담당했던 니콜라스 브리텔(Nicholas Britell)이 선사한 서곡 「Liberation」과 「Searching for Maria」를 보자. 아길레라의 미들 네임이 마리아임을 생각하면, 이는 곧 해방과 함께 자신을 찾아 나선다는 뜻으로 읽힌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1965)의 「Maria」를 무반주로 소화한 노래는 마이클 잭슨의 1972년 고전 「Maria(You were the only one)」을 인용한 「Maria」로 매끄럽게 이어진다. 그는 어린 마이클 잭슨과 멜로디를 주고받으며 비장미를 쌓아 올리고, 펑크(funk) 록의 옷을 입은 「Sick of sittin’」에서 감정을 폭발시킨다. 실로 짜릿한 전개다.

 

「Right moves」 「Like I do」 등 감각적 힙합 비트를 동원한 중후반부에선 「Accelerate」를 주목할 만하다. 평범을 거부하는 카니예 웨스트가 선사한 노래는 수록곡 중 가장 이질적이다. 신경질적으로 바뀌는 리듬, 촘촘하게 교차하는 랩과 보컬, 종잡을 수 없는 진행은 불친절의 극치다. 분명 호불호가 극명히 갈릴 곡이나, 복잡한 가운데서 발견되는 규칙성과 여기서 비롯되는 캐치함이 재미있다. 한편, 「Beautiful」 「Hurt」 등으로 획득한 ‘발라드 퀸의 명성은 본 앨범에서도 유효하다. 몽환적인 신스 사운드의 「Masochist」 가스펠의 요소를 딴 「Unless it’s with you」가 두루 아름답지만, 피아노 반주에 맞춰 극적인 감정 표현을 연출한 「Twice」는 반드시 확인해야 할 곡이다.

 

앨범 전반에서 개인적 자유를 소망하는 그는 여성을 위한 외침에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어린 소녀들이 저마다의 꿈을 털어놓는 간주곡 「Dreamers」와 이들에게 손을 건네는 「Fall in line」의 이야기다. 둘째가라면 서러운 파워 보컬 데미 로바토와 호흡을 맞춘 노래는 ‘그들이 만든 규칙’에 순순히 따르지 않겠노라 우렁차게 소리 높이며 여성들을 대변한다. 2집 <Stripped>(2002)의 「Can’t hold us down」이 그랬듯, 각국의 소녀들과 여성들에게 오랫동안 용기를 불어넣을 곡이다.

 

적지 않은 수록곡을 밀도 있게 담아냈다. 록과 소울, 알앤비와 힙합을 아우르면서도 산만하지 않다. 냈다 하면 히트였던 과거의 그가 아니기에 낼 수 있는 솔직한 앨범이다. 핑크,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 또래 가수들과 달리 늘 앨범 제작에 긴 시간을 들였던 그는 이번 앨범 이후로 공백기를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다가오는 가을에는 10년 만에 순회공연도 개최한다. 이제 그는 오랜 부담과 압박에서 벗어난 듯 보인다. 그의 앨범으로썬 처음으로 히트를 겨냥한 댄스곡이 없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병 속의 지니(「Genie in a bottle」)가 마침내 해방되는 순간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오늘의 책

트럼프의 귀환, 위기인가? 기회인가?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거머쥔 트럼프. 글로벌 무역 질서를 뒤흔들 트럼프 2기 정부의 명암과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국제 정세에 미칠 영향에 대해 설명하는 박종훈 저자의 신간이다. 강경한 슈퍼 트럼프의 시대에 직면한 대한민국이 어떠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지 그 전략을 제시한다.

이래도 안 읽으실 건가요

텍스트 힙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독서가 우리 삶에 필요해서다. 일본 뇌과학계 권위자가 뇌과학으로 입증하는 독서 예찬론. 책을 읽으면 뇌가 깨어난다. 집중력이 높아지고 이해력이 상승하며 즐겁기까지 하다. 책의 장르는 상관 없다. 어떤 책이든 일단 읽으면 삶이 윤택해진다.

죽음을 부르는 저주받은 소설

출간 즉시 “새로운 대표작”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 관련 영상을 제작하려 하면 재앙을 몰고 다니는, 저주받은 소설 『밤이 끝나는 곳』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등장인물들이 함께 떠난 크루즈 여행 중 숨겨진 진실과 사라진 작가의 그림자가 서서히 밝혀진다.

우리 아이 영어 공부, 이렇게만 하세요!

영어교육 전문가이자 유튜브 <교집합 스튜디오> 멘토 권태형 소장의 첫 영어 자녀 교육서. 다년간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초등 영어 교육의 현실과 아이들의 다양한 학습 성향에 맞는 영어 학습법을 제시한다. 학부모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지침과 실천 방안을 담았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