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불후의 칼럼 > 박연준의 특별한 평범함
내 앞에는 당신의 등이 있다
밥 먹을 땐 좀 덜 사랑해줄래?
헤어질 때 한사코 등을 보이지 않고, 멀어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던 친구가 생각난다. (2018. 06. 14)
언스플래쉬
뒷모습에는 표정이 없다. 방심이 그의 표정이다. 뒷모습은 ‘무방비’라는 속옷을 입고 있다. 무얼 대비하기 전, 표정이 도착하기 전 생짜의 모습. 뒷모습에는 눈이 없다. 뒷모습은 타인의 시선이라는 화살이 날아드는, 눈빛들의 과녁이다. 방어율 제로인 과녁.
뒤는 백수다. 할 일이 없는 것으로 제 할 일을 다 한다.
등은 뒷모습에서 가장 중요하다. 구부정한 등, 꼿꼿한 등, 넓은 등, 좁은 등, 살집이 두툼한 등, 비쩍 마른 등, 나름의 성격이 있다. 물건을 옮기는 등, 잠든 등, 울먹이는 등, 달리는 등, 기다리는 등, 누군가를 안은 등, 매달리는 등, 노쇠한 등, 강건한 등, 흥분한 등, 권태로운 등, 등 등 등! 어떤 ‘상태’에 머물러 있는 등을 바라보는 일은 앞을 바라보는 일보다 편하다. 내 ‘바라봄’을 들키지 않고 볼 수 있다. 등의 위쪽에 자리한 모가지를 지나 뒤통수로 가면 ‘방심한 동물의 털’을 볼 수도 있다. 얼굴을 덮고 있는 털은 머리카락이지만, 뒤를 덮은 털은 ‘동물의 털’에 가깝다.
당신이 밥을 먹을 때 당신 등 뒤로 가서, 몸을 포개 앉은 적이 있다. 당신 허리를 끌어안고 등판에 귀를 대보면, 소리가 들린다. 당신이 음식물을 씹는 소리. 삼키는 소리. 삼킨 음식물이 아래로 내려가는 소리. 그것들이 당신과 섞여, 당신을 이루는 소리.
“밥 먹을 땐 좀 덜 사랑해줄래?”
당신이 투덜대면 포옹을 푼다. 내 앞에는 당신의 등이 있다. 뒤를 본다. 뒷모습은 당신이 모르는 당신이다. 머리를 수그리고 무언가를 떠먹는 등. 무방비로 시선에 침략당한 등.
“거북이 와서 형님, 하고 부르겠네. 허리 좀 펴.”
핀잔을 주면 당신 목은 곧 기다래지는가 싶더니 이내 구부정해진다. 밥을 먹는 사람의 등은 무고하다. 잠든 사람의 등만큼, 무고하다.
떠난 사람들이 떠오른다. 돌아선 등, 냉랭한, 멀어지는 등을 보이며 떠난 사람들. 그때 알았다. 떠나는 등은 표정을 짓기도 한다는 것을. 떠나는 등은 남은 자의 앞에 놓인 스크린이다. 어둠 속에서 자막을 올리는 중인 스크린. 한편 죽은 자를 염할 때, 뒤를 보여주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죽은 이의 뒷모습을 보며 이별해야 한다면……. 생사가 갈리는 이별은 한사코, 앞이어야 한다. 죽은 이가 뒷모습을 보이는 것, 그건 반칙이다.
헤어질 때 한사코 등을 보이지 않고, 멀어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던 친구가 생각난다. 지금은 소원해진 친구. 토실토실하고 넓은 등을 가진 그이는 등을 보인 적이 드물다. 가끔 그이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덕여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에 시 '얼음을 주세요'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속눈썹이 지르는 비명』『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가 있고, 산문집『소란』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