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윤하정의 공연 세상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의 태희로 돌아온 배우 김지현
5년만에 만나는 김지현 배우
기본적으로 에너지가 다운돼 있는 사람이기는 해요. 평소에 감정 기복도 거의 없거든요. 화를 내거나 많이 낙담하거나 슬프지도 않고, 혼자 시간 보내는 것도 좋아하고 잘해요. (2018. 05. 16)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가 5년 만에 공연을 앞두고 있습니다. 지난 2001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제작된 창작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는 2012년 초연 당시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을 되살리는 음악과 시공간을 뛰어넘는 감성으로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요. 올해 세종문화회관 개관 40주년을 맞아 M씨어터 무대에 오를 예정입니다. 많은 관객들이 오래 기다렸던 뮤지컬이고, 남녀 주인공의 내면 연기가 중요한 작품인 만큼 연초 공연 계획이 발표될 때부터 어떤 배우가 인우와 태희로 캐스팅될까 이목이 집중됐는데요. 재연 때도 참여했던 강필석, 김지현 씨는 물론 이지훈, 임강희 씨가 새롭게 인우와 태희로 이름을 올려 기대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5년 만에 다시 만나는 <번지점프를 하다> 는 어떤 울림으로 다가올지,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연습을 마친 김지현 씨를 직접 만나봤습니다.
“재연 때와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아요. 대본을 다시 읽는데 정말 재밌더라고요. 첫 리딩하는데 이 작품이 갖고 있는 느낌이 훅 다가왔어요. 이래서 그때도 이 작품을 그렇게 좋아했었나 봐요.”
개인적으로 김지현 씨를 무대에서 처음 본 공연이 2013년 <번지점프를 하다>였습니다. 그때 생각이 나는데, 벌써 5년 전이네요. 그때보다 희미해진 것도 있고, 더 보이는 것도 있겠죠?
“태희가 나오지 않는 장면은 다 희미해졌더라고요(웃음). 하지만 아프고 설레는 감성들은 여전해요. 5년 전과는 좀 다르게 해야겠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어요. 그때는 신비롭거나 차갑다는 이미지에 갇혀서 태희가 좀 소극적인 면이 있었거든요. 행동은 같겠지만 에너지 자체를 이번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써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태희가 극 중 대학생이죠(웃음)?
“큰일이에요! 연습하면서도 대사 내뱉고 소름 돋을 때가 있거든요(웃음). (임)강희 언니와도 ‘목소리 톤 어떻게 할 거냐, 좀 더 상큼하게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농담처럼 얘기하고 있어요. 나이에 너무 역행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잘 끌어내야죠. 다행히 인우도 저보다 다 오빠들이고, 비슷한 에너지를 갖고 있는 나이들이라 잘 섞여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이를 뛰어넘어 태희와 이미지가 잘 맞는 거겠죠.
고수하는 긴 생머리도 한몫할 텐데, 지금은 단발머리네요?
여자가 헤어스타일을 바꿀 때는 뭔가 사연이 있다는데, 영상으로 확인해 보시죠!
예전에 영화나 공연은 ‘얼마나 사랑하기에’라며 인우 관점에서 봤는데, 김지현 씨를 인터뷰하려고 보니 ‘얼마나 대한한 여자기에 한 남자가 평생을 사랑하는 걸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생각을 재연 때도 했어요. 평생 한 사람 머릿속에 있는, 그 사람의 인생을 지배할 정도로 대단한 여자. 그런데 좀 더 현실적으로도 생각했던 것 같아요. 태희가 갑자기 사라져버려서라고. 저 사람이 운명처럼 느껴져서 인연의 끈을 잡았는데, 사랑을 제대로 시작하지도 못한 채 끈이 툭 끊어져서 평생 남을 수밖에 없는 거라고.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인 거죠. 정상적으로 연애했다면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저는 인우의 대사 중에 ‘이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야’를 좋아해요. 리딩 때 바로 눈물이 터지더라고요.”
강필석 씨와는 재연 때는 물론이고 얼마 전 <모래시계>에서도 함께 해서 호흡이 척척 맞겠습니다.
“네, 오빠와 작품을 꽤 많이 했더라고요. 그게 아니더라도 서로 대화가 잘 통해요. 집이 같은 방향이라서 오빠 차를 같이 탈 때도 있고, 연기 얘기도 많이 하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선배죠. 학교(한예종) 다닐 때는 안 친했는데(웃음), 대학로에서 공연으로 맺은 오랜 인연이에요.”
새로운 인우인 이지훈 씨는 어때요?
“작품으로는 이번에 처음 뵀는데, 저는 아는 사람이잖아요. 어릴 때부터 연예인으로 봤던 사람을 제가 나이 들어서 배우로 함께 무대에 서면 좀 이상한 느낌이 있어요(웃음). 인우와 이미지는 잘 어울리시더라고요. 태희는 무대에서 만나는 사람이 인우밖에 없는데, 모두 좋은 인우, 좋은 그림이 나올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김지현 씨는 대부분 우리나라 근현대를 다룬 작품에서 차분하고 조금은 차가운 느낌의 인물을 많이 연기하셨어요.
“네, 그렇게 많이 보시고요. 기본적으로 에너지가 다운돼 있는 사람이기는 해요. 평소에 감정 기복도 거의 없거든요. 화를 내거나 많이 낙담하거나 슬프지도 않고, 혼자 시간 보내는 것도 좋아하고 잘해요. 그런데 나이가 들고 작품도 많이 하면서 점점 바뀌더라고요. 어렸을 때는 덜 활달해서 말씀하신 면이 강했는데, 그런 성격이 답답해서 의지를 가지고 바꾸기도 했고요. 그래서 지금은 <카포네 트릴로지> 캐릭터가 저와 가장 비슷해요(웃음).”
정말요? 가장 파격적인 변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성격이 털털한 편이라 여성스러운 면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아요. <카포네 트릴로지> 3가지 에피소드는 저한테 다 있는 부분인데, ‘빈디치’가 가장 잘 맞아요. 조용하고 눌려 있는 에너지가 제 기본적인 습성이라서. 반면 지금은 ‘루시퍼’가 힘들어요. 밝고 예쁜 모습이 훨씬 에너지가 많이 들거든요. 처음에는 옆집 언니 같은 캐릭터가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프라이드>나 <카포네 트릴로지>를 하다 보니까 소화가 되고 나중에는 편하더라고요. 내 안에 있지만 무대에서 인물로 만날 때 걱정이 있었는데, 이제는 편하게 구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삼연이라 이제 익숙하겠지만, <카포네 트릴로지>는 독특한 공연장, 공연 형식만으로도 배우에게는 부담일 것 같습니다.
“연습 때는 전혀 감이 없었는데, 처음 극장 들어가서 좀 놀랐죠. 첫날 지인들 불러서 프리뷰를 했는데, 그 구조가 훨씬 큰 동력이 되더라고요. 객석이 가까이 있으니까 딴 생각을 할 틈도 없고, 도망갈 수도 없고, 가짜로 할 수도 없고. 고도의 집중과 긴장감이 필요하고, 거짓 없는 에너지를 쏟을 수밖에 없도록 관객들이 만들어 주세요.”
이렇게나 색깔이 다른 뮤지컬과 연극 무대를 넘나드는 모습도 보기 좋습니다.
“뮤지컬과 연극을 병행할 수 있다는 게 무척 감사해요. 딱 필요하다고 느끼는 시기에 작품이 오더라고요. 뮤지컬은 노래가 있어서 정말 좋고, 연극은 노래가 없어서 정말 좋아요(웃음). 뮤지컬은 노래할 때 힘들지만 그 노래가 있어서 아름답고, 연극은 노래가 없어서 마음이 편하고 다른 부분에 집중할 수 있고요.”
그런데 드레스 입는 인물은 일부러 안 하는 건가요(웃음)?
“그건 상상도 할 수 없어요(웃음). 대극장에 선 게 <그날들>, <모래시계> 정도예요. 특히 <그날들>에서는 많은 부분을 책임지고 끌고 가는 인물이 아니라서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았는데, <모래시계>는 정말 긴장하고 제가 부족하다는 걸 느꼈거든요. 대극장은 연기나 드라마적인 것 외에 큰 공간을, 많은 관객을 아우르는 또 다른 에너지가 필요한 것 같아요. <모래시계>에서 대극장에 많이 서는 배우들과 함께 했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정말 대단하다고 박수를 쳐주고 싶었어요.”
김지현 씨가 대극장에 서는 모습도 전혀 낯설지 않았는데요. 그리고 소극장 공연에서도 드레스는 입을 수 있습니다(웃음).
“과찬이세요. 만약 드레스를 입게 된다면 저에게는 또 다른 도전이 아닐까(웃음).”
마지막으로, 인우에게 태희는 영원한 사랑으로 남아 있는데, 관객들에게 김지현 씨는 어떤 배우로 생각되길 바라나요?
“눈을 뗄 수 없는 배우(웃음)? 얼마 전에 연극 <아마데우스>를 보는데 (한)지상이가 정말 잘해서 눈을 뗄 수가 없더라고요. 그 긴 시간, 그 많은 분량을 너무나 유연하게 귀에 쏙쏙 들리게. 무대 위에서 재밌게 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고, 그래서 배우가 참 빛난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배우라면 좋을 것 같아요. 어떤 역할이든 매력 있게 소화하는 배우요.”
차분하고 조금은 차가워서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김지현 씨와의 인터뷰는 한 시간을 훌쩍 넘겼습니다. 생각보다 얘기도 많고 웃음도 많았는데요. 그래서 5년 만에 다시 만나는 김지현의 태희는 어떤 모습일지 더 궁금해집니다. 참,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가 6월 12일 개막하는데요.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막바지와 맞물려 있습니다. 관객들에게는 태희로 오버랩 되는 김지현 씨의 엄청난 변신을 보는 재미도 클 것 같죠? 그리고 이른 시일 안에 드레스 입는 여성이 등장하는 작품에서도 김지현 씨를 만나보고 싶군요. 그때 다시 인터뷰하러 가겠습니다!
관련태그: 번지점프를 하다, 김지현 배우,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첫사랑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