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그래, 난 취했는지도 몰라
용한 점집 어디 없나요
우리의 모습은 생각보다 많은 말을 하고 있다
이렇게 의심 서린 삐딱한 눈초리로 운명론을 대하면서도 마음 한 켠을 내주는 것은 어떻게든 삶을 설명해보려는 몸부림이다. (2017.12.05.)
운명을 믿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자의 휴대전화
우울한 계절이다. 지인이 말하길 이맘때가 괴로운 것은 2년치의 고민을 한꺼번에 하기 때문이란다. 가뜩이나 일조량이 감소하여 세로토닌 레벨이 낮아지건만 말초신경부터 꼬여 가는 듯 생은 도무지 풀려나갈 기미가 없다. 삶에도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이 있다고 믿게 되는 때는, 점집 생각이 난다.
물리 법칙은 시간의 방향에 구애 받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방향으로 시간이 흐르지 않아도 물리적인 우주는 큰 문제 없이 작동한다. 그러나 미래 방향으로 흐르는 시간 속에 살게 된 덕에 과거는 원인이고 미래는 결과라 믿으며 현재를 지나간다. 그러나 시간이 현재를 손쉽게 설명해내지 못하고 도리어 우연이 현재를 빚는 것을 보면서 우연에도 법칙이 있지 않을까 궁리한다. 이곳이 권선징악과 인과법칙이 작용하는 우주라면 설명되지 않는 일이 너무 많다. 차라리 수천의 페이지를 가진 운명의 책이 있고, 그 중의 한 페이지 대로 삶을 수행할 뿐이라고 믿는 쪽이 간편하다. 마이클 셔머는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라는 책에서 불확실한 것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패턴을 발견하고 어떻게든 인과관계를 찾아내는 쪽으로 인간이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운명론을 과하게 믿는 집안에서 자랐다. 우리 집에 전해오는 스님의 일화가 있다. 어릴 적 집에 한 스님이 들러 물을 청해 마시고는 뚜벅 '개천에서 용 났다'고 말하고 사라졌단다. 부모님은 굳이 2층까지 올라와 물을 청한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밤나무를 천 그루 심으라면 심을 것 같은 목소리로 아직도 그 일화를 들먹인다.
'용이 났다'는 것이 상상의 동물처럼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이 된다는 뜻인지도 모르지만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큰 인물이 될 것이야' 라고 말해주는 자체가 재미있어 보인다. 큰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기준이 없으니, 큰 인물이 되었다 치면 영험한 스님이 되고 아니면 만다. 게다가 우리 집처럼 아이가 둘인 집에서는 누가 용인지 해석의 여지가 있으니 영험해질 확률도 두 배가 된다.
운명 운운하는 말에 세모 눈을 뜨고 허점을 찾으려고 애쓰지만, 뜬 눈의 모양새와 달리 귀가 솔깃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살아갈수록 세상은 알 수가 없고, 조금이라도 법칙을 알고 있는 이가 있다면 일단 한번 들어보고 판단하고 싶어진다. 해서 이곳 저곳을 수소문했는데 용하다는 곳은 벌써 내년 초까지 예약이 잡혔다고 한다.
상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 해도 우리의 모습은 생각보다 많은 말을 하고 있다. 옷차림은 말할 것도 없고 말투나 억양, 신체의 움직임 등에서 수많은 정보가 읽힌다. 이렇게 심리를 읽어내는 기술을 콜드리딩이라고 하는데, 점쟁이란 뛰어난 콜드리더일 뿐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인간의 보편적인 면을 에둘러 말하면 누구에게나 꼭 들어맞는 것처럼 느껴진다. 예를 들어, "힘들어, 요새 힘들어. (그런데 그들은 왜 다 반말인가?) 변동수가 있는데 움직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많군. 밖에서는 괜찮은 척해서 남들은 잘 모르지만, 남몰래 속으로 끙끙하고 있네."
이런 식의 말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여의도를 오가다 보면 정치인 당선 여부를 족집게처럼 맞춘다는 사주 트럭이 서 있다. 당선 여부란 가부결정이니 애매모호하게 바넘 효과(Barnum effect)를 유도해 넘기기에는 한계가 있을 듯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자리에서 점쟁이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 사람들이 점 보러 와서 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수집하여 데이터로 삼는 것이 아닌지 고개를 꼬아 생각해본다. 출판 단지에 자리를 펴고 앉아 각 편집자와 영업자들이 갖고 오는 정보를 모아 “이번에 특판 칠천 부 나갈 거야”라던가 “그 저자는 안 돼. 다른 데와 계약했네.” 이런 식으로 선무당이 되는 건 가능할까, 아닐까?
이렇게 의심 서린 삐딱한 눈초리로 운명론을 대하면서도 마음 한 켠을 내주는 것은 어떻게든 삶을 설명해보려는 몸부림이다. '신이 내게 무언가를 알려주기 위해 이런 일이 일어났다'라고 설명하는 순간 인생에는 실패란 없다. '입춘까지만 기다려, 다 풀려' 이런 말로 몇 달 더 살아갈 힘을 얻는다. 하긴 점집까지 갈 것도 없이 고용주와 경영자는 많은 미래를 알고 있을 거다. 결국 정보의 비대칭성이 무속이라는 경제효과를 창출하는 셈인지도 모르겠군요.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마이클 셔머 저/류운 역 | 바다출판사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는 뉴에이지 과학, 지적 설계론 미신과 심령술 등 우리 시대의 모든 사이비 과학을 집대성하고, 이런 “이상한” 믿음들이 생겨난 이유를 진화론적으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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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난 취했는지도 몰라'라는 변명 아래 책과 전자책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작년부터 알코올 알러지를 앓고 있는데 개가 똥 알러지 같은 소리라는 핀잔만 듣고 있습니다. 고양이 4마리, 개 1마리와 살며 책에 관한 온갖 일을 합니다.
<마이클 셔머> 저/<류운> 역16,200원(10% + 5%)
사이비 과학과 싸우는 과학계의 전사, 마이클 셔머! 뉴에이지 과학, 지적 설계론, 미신과 심령술 등 우리 시대의 사이비 과학을 비판한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뇌가 과학적 사고를 따라잡지 못한 결과, 이상한 것을 믿게 된다고 진화론으로 그 이유를 설명한다. 과학적 이성! 이 책으로 예리하게 벼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