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에게 보내는 편지 - 뮤지컬 <팬레터>
비밀과 상상이 만나다.
그 누구라도, 그 어떤 이야기라도 상상할 수 있도록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게 균형 잡힌 연출을 선보인다. (2017.11.30.)
안녕, 나의 빛 나의 악몽
뮤지컬 <팬레터>가 1년 만에 다시 관객들 앞에 돌아왔다. 초연 당시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두루 받으며 웰메이드 창작 뮤지컬로 자리 잡은 바로 그 작품. <카포네 트릴로지>, <로기수>, <오펀스> 등 섬세하고 감각적인 연출로 마니아층을 형성한 젊은 연출가 김태형을 필두로 한채은, 김길려 등 실력파 제작진이 총 출동한 작품 <팬레터>는 2016년 초연 당시 관객들이 뽑은 올해의 창작 뮤지컬로 선정된 바 있다. 1년 만에 돌아온 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선정한 “올해의 레퍼토리”에 선정되며 초연에 이어 재연까지 성공적으로 공연되고 있다.
뮤지컬 <팬레터>는 일제강점기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하는 모던 팩션 작품이다. 일제의 신체적 정신적 억압이 극에 달하던 그 시절, 문학에 대한 순수한 애정과 뜨거운 열망 하나로 예술혼을 불태웠던 젊은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작품은 소설가를 꿈꾸던 고등학생 세훈이 자신이 동경하는 작가에게 보낸 팬레터를 계기로 문인모임 ‘칠인회’에 들어가게 되면서 시작된다. 이상, 정지용, 박태원 등이 속한 문인 모임이었던 ‘구인회’에서 모티브를 얻은 대로, 극 중 칠인회의 멤버들 역시 순수예술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추구하며 예술적 교류를 나눈다. 서로의 작품에 대해 토론하고, 시대적 상황에 대해 울분을 토하는 그들의 일화를 통해, 비극적이고 아픈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삶과 고뇌를 느낄 수 있다. 거기에 예술가들에게 작품을 창작하게 하고, 작품을 완성할 수 있게 하는 영감의 원천 ‘뮤즈’에 대해 이야기 하며 보다 매혹적이고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관객들의 몰입을 이끌어 낸다.
꿈꾸던 문인 모임에 들어갔지만 결국 소설가가 아니라 사업가가 된 청년 세훈은 어느 날 히카루라는 죽은 여류작가의 소설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 소식에 크게 놀란 세훈은 칠인회의 멤버로 함께 활동했던 이윤을 만나기 위해 그가 수감된 유치장을 찾아가고, 이윤에게 히카루의 책을 출간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이윤은 히카루의 애인이자 요절한 천재 소설가 김해진이 히카루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에 대해 이야기 하며 책 출간을 반대하는 이유를 밝히라 협박한다. 이에 세훈은 자신과 김해진 그리고 히카루 세 사람의 얽히고 설킨 관계에 대해 이야기 시작하고, 세훈의 이야기를 통해 감추어져 있던 진실이 하나 둘 드러난다.
극의 중심 인물인 세훈과 해진의 두 사람은,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 애틋한 애정 관계로, 혹은 존경하고 아끼는 거리낌 없는 사제관계로도 이해될 수 있다. 뮤지컬 <팬레터>는 이러한 인물들간의 관계를 명확하게 구분 짓지 않는다. 그 누구라도, 그 어떤 이야기라도 상상할 수 있도록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게 균형 잡힌 연출을 선보인다.
뮤지컬 <팬레터>는 매혹적인 스토리, 개성 있는 캐릭터, 서정적인 가사가 돋보이는 음악, 세련된 연출 등 작품의 모든 요소들의 조화롭게 어우러진 작품이다. 여기에 다양한 감정 변화를 겪는 극중 인물을 완벽히 표현해내는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 또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초연에 비해 보다 사실적으로 구현된 무대와 캐릭터의 강화 등 보완, 수정작업을 거치며 한층 더 탄탄한 완성도를 자랑한다.
일제의 검열과 감시에 시달리면서도 문학을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예술가들의 순수한 열정과 삶의 고민을 엿보게 하는 뮤지컬 <팬레터>는 내년 2월까짇 동숭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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