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려는 자와 밝히려는 자의 게임 - 뮤지컬 <주홍 글씨>
비극적인 운명의 하모니
죄를 지은자, 죄를 숨긴 자, 죄를 밝혀내는 자 (2017.11.09)
왜 지금, 이 이야기였는지
소설 <주홍글씨>는 1850년대 미국 작가 너새니얼 호손이 쓴 작품으로, 17세기 중엽, 청교도의 식민지였던 미국 보스턴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금욕주의, 엄격한 도덕주의로 대변되는 보수적인 청교도 사상 속에서 발생한 간통 사건을 통해, ‘죄’ 에 대해 섬세하고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뮤지컬 <주홍글씨> 또한 원작 소설과 맥락을 같이 한다. 주인공 헤스터 프린은 나이 많은 남편과 반강제적으로 결혼 한 후 미국 보스턴으로 이민을 떠나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남편은 행방불명 되고, 먼저 보스턴에 도착한 헤스터는 몇 년 후 아버지를 모르는 딸을 낳게 된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보스턴 사람들은 헤스터를 간통녀로 몰아가며 재판에 그녀를 회부하고, 아이의 아버지 이름을 밝히지 않은 그녀는 가슴에 간통을 뜻하는 'A(adultery)'자를 평생 가슴에 붙이고 사는 형벌을 받게 된다. 그러던 중 행방불명 되었던 헤스터의 남편이 7년 만에 마을에 나타나게 되고, 그는 칠링워스라는 가명을 사용하며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헤스터의 주변을 맴돈다. 우연한 기회에 그 마을의 젊은 목사 딤즈데일이 아이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칠링워스는 두 사람을 파멸로 몰아가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뮤지컬 <주홍글씨>는 원작 그대로 사건이 전개 된다. 헤스터는 함께 간통을 저지른 딤즈데일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모욕을 견뎌내고 희생을 감내한다. 사실 자신이 모든 죄를 받으며 고통을 받을 테니, 그는 용서해달라고 비는 그녀의 모습이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한다. 간절하고 애절하게 서로를 그리워하는 헤스더와 딤즈데일의 사랑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가녀리고 여린 이미지로 대변되는 헤스터의 캐릭터는 19세기 초 낭만주의 문학에서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존재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녀의 캐릭터가 주는 메시지는 조금 불편하게 다가오기까지 한다. 왜 그녀 혼자 이 모든 희생을 감내 하는지, 왜 그녀의 일생이 이토록 처참해야 하는지가 와 닿지 않는다. 그런 그녀를 고통 속에 살게 한 엄격하고 폐쇄적인 사회와 그 사회에 길들여진 마을 사람들의 오독과 이기적인 모습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묘사했던 원작의 날카로움 역시 무대 위에서는 잘 표현되지 않는다. 당시 시대의 신념에 맞선 당당한 여성이라고 하기에 헤스더는 지나치게 나약하고 연약할 뿐이다. 그 부분을 무대 위로 옮겨 오려 했던 의도가 진부하고 단조로운 사건의 전개에 가려져 드러나지 않는다.
원작을 그대로 따랐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일지라도, 무대 위에 그려내는 캐릭터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못하다보니 나아가 작품의 몰입까지 방해한다. 딤즈데일 목사의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이지이다. 명예와 덕망 때문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지 못하는 나약한 인물이지만, 그가 가진 고뇌와 괴로움이 충분히 설득력 있게 다가오진 못한다.<주홍글씨>를 보며 내내 든 생각은, 왜 지금 이 이야기를 무대 위로 옮겨 냈는가 하는 점이다.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는지, 각 캐릭터를 통해 관객들이 어떤 상징을 느껴야 했는지 파악하기가 힘들다. 죄에 대한 날카로운 심리 묘사나, 사회에 속한 개인이 타인으로부터 받게 되는 문제 상황에 대해서 보다 세밀하게 표현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두고두고 남는다.
뮤지컬 <주홍글씨>는 지난 2013년 창작산실 대본공모 우수상을 받은 작품으로 그 이듬해 우수작품 제작 지원작에 선정되었다. 2015년 초연 된 이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선발하는 2017 창작산실 ‘올해의 레퍼토리’에 선정되며. 2년 만에 관객들 앞에 다시 찾아왔다. 서재형 연출, 한아름 작가, 박정아 작곡가가 의기투합한 작품으로 소극장 뮤지컬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허문 신선한 연출로 눈길을 사로 잡은 바 있다. 뮤지컬<주홍글씨>는 오는 11월 19일까지 대학로 TOM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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