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의 우정, 사실은 짝사랑이 아닐까? - 연극 <트러블메이트>
남녀 사이에 우정이 존재하는가
“남녀 간의 우정이라는 거, 사랑이란 감정이 끼어든 순간 깨질 수밖에 없는 사이 아닌가 싶어” (2017.10.11)
결혼을 한다고?
친구 녀석이 결혼을 한단다. 술자리에서 이루어진 깜짝 발표였다. 폭탄을 투하하듯 결혼 사실을 공표한 태윤은 득의양양한 표정이다. 곧바로 친구들의 축하가 이어질 터였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두환은 제 일인 양 기뻐했다. 그러나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진짜 폭탄을 터뜨린 사람은 자신이 아니었다. 분연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연홍, 그녀의 입에서 짐작하지 못했던 말이 흘러나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연홍은 물었다.
태윤과 두환, 연홍은 12년 지기 친구들이다. 스무 살에 처음 만난 이래로 한 몸처럼 붙어 다니며 어울렸다. 함께 야구 경기를 보고, 첫 눈 내리는 날이면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진한 우정을 쌓아갔다. 아니, 그랬다고 생각했다. 그 날 밤 연홍이 화를 내기 전까지는.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면서 경멸하듯 말했다. ‘어떻게 네가 미영이랑 결혼할 수 있냐고.’ 이어지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흠, 이해 못할 수도 있겠군.’ 싶다. 미영은, 그러니까 태윤의 신부가 될 이 여성은, 2년 동안 두환과 연인 사이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연홍의 반응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태윤이 친구의 연인을 뺏은 것도 아니고, 그가 미영과 연인이 됐다는 건 두환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두환과 미영은 태윤 때문에 헤어진 것도 아니다. 연홍은 ‘두환이 미영과 2년을 만났는데, 그동안 두 사람이 섹스도 안 했을 것 같으냐.’고 묻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태윤이 생각할 문제이지 연홍이 관여할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날카로운 말들을 내뱉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지난 12년 동안 연홍은 태윤을 짝사랑했기 때문이다.
남과 여, 그들의 우정에 대하여
<트러블메이트>의 곽두환 연출은 “어느 책에서 ‘남녀 간의 우정은 어느 한쪽의 지독한 짝사랑이 아닐까?’라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때 그가 생각한 것은 “얼마나 지독한 짝사랑이면 우정으로 포장해서라도 그 간절함을 유지시킬까? 그들은 차마 표현하지 못하는 사랑에 대한 아픔을 어떻게 치유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 아픔의 크기는 얼마만큼일까?”라는 것이었다. 당시의 의문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트러블메이트>는 탄생했다.
우정으로 포장해서라도 간절함을 이어가는 지독한 짝사랑. 연극 <트러블메이트>가 보여주는 사랑의 단면은 바로 그것이다. 태윤의 결혼 발표를 계기로 연홍과 두환이 감춰왔던 감정이 분출하기 시작한다. 우정인 줄 알았던 마음이 실은 사랑이었고, 소울메이트인 줄 알았던 친구들이 한 순간에 트러블메이트로 바뀌어버렸다. 누군가에게는 당황스럽고 슬며시 화도 치밀어 오르는 순간이다. 누군가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인 줄 알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우정이라는 이름으로나마 상대의 곁에 머무르기를 원한다.
세 사람의 관계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남자와 여자가 친구 사이를 유지한다면, 둘 사이에는 우정이 아니라 짝사랑이 존재하는 걸까. 남녀 간의 우정이란 사랑이 끼어드는 순간 어김없이 깨져버리는 ‘위태롭고 연약한’ 감정일 뿐일까. 이들 질문에 대해 연극 <트러블메이트>은 제법 확고한 태도로 답하는 듯 보이는데, 성급하게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런 경우가 전혀 없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남과 여의 우정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관람할 수 있는 작품이다. 연극 <트러블메이트>는 대학로 위로홀에서 오픈런으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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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