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윤하정의 공연 세상
‘댄싱9’이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된 그를 뮤지컬 <킹키부츠>의 엔젤로 만날 때는 정말 반가웠습니다. 누구보다 어울리는 캐릭터였으니까요. 무용과 연극적인 요소가 결합된 댄스시어터 <컨택트>의 귀족으로 무대에 설 때도 마음이 설렜죠. 고운 선과 아름다운 동작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뮤지컬 <배쓰맨>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반가움보다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앞선 작품에서는 무용을 전공한 그의 매력이 돋보일 수 있었다면 <배쓰맨>은 춤이 무기가 되지 않는, 연기로서 승부해야 하는 뮤지컬이기 때문인데요. 그의 팬이라면 다들 비슷한 감정이겠죠? 바로 현대무용가 한선천 씨 얘기인데요. 뮤지컬 <배쓰맨>을 통해 배우로 첫발을 내딛은 한선천 씨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직접 만나봤습니다.
“팬 분들이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왜 뮤지컬을 하려 하느냐고. <배쓰맨>에서 줄리오라는 배역을 맡으니까 ‘선천 씨 발음 많이 안 좋은데, 노래는 잘 할 수 있나?’ 더 걱정을 하시더라고요(웃음).”
그러게요, 이번 공연은 안무가 돋보이는 뮤지컬이 아닌데 참여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장르고, 사실 대사도 해보고 싶었고, 노래도 해보고 싶었어요(웃음). 배우로 활동하고 싶어서 3년 정도 연기와 노래를 꾸준히 배웠거든요. 무용은 전체적인 흐름이나 분위기를 만들면서 동작의 세세함을 표현하는데, 연기는 직접 캐릭터가 돼서 표현하는 게 정말 재밌더라고요. 캐릭터 안에서 표현하니까 제가 아닌 다른 사람도 돼 보고, 그 인물을 만들어가는 과정도 재밌고요.”
주위의 평가는 어떤가요?
“기대를 많이 안 하셨나 봐요, 대부분 ‘생각보다 잘 하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웃음). 팬 분들도 재밌게 봤다고 하시고요. 물론 다른 배우들보다 연기나 노래 모두 실력이 뒤쳐질 거라 생각하지만, 어차피 제가 배우로 걸어갈 생각이 있으니까 그런 얘기를 듣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요. 제 성격이 일단 해보고, 거기에 대한 평가를 듣고, 필요한 부분을 바꾸는 편이거든요. 적절한 시기에 좋은 작품을 만난 것 같아요.”
무용가로 춤이 기반이 되는 뮤지컬에 참여하는 것과 아예 배우의 길을 걷겠다는 것은 다르잖아요. 다른 배우들보다 약한 점에 대해 가혹한 평가가 뒤따를 수도 있는데요(웃음).
“무용가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까 오디션을 보러 갈 때도 ‘쟤는 그냥 춤추는 사람이잖아’ 라는 편견이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무용을 10년 한 만큼 다른 분들은 오래 연기를 하셨고, 저는 이제 시작하는 거니까 좀 더 노력하고 겸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많이 배우고 매도 많이 맞아야죠. <배쓰맨> 연습 초반에도 주눅이 너무 들어서 대본 리딩할 때도 자신이 없었는데, 형들한테 많이 배웠어요. 특히 최석진(귀현), 최미소(비너스)는 중학교 동창이라 많이 도와주고 응원해줬어요.”
선입견이 있더라도 몇 마디 나누다 보면 오해가 풀릴 것 같은데요. 겸손하고 따뜻한 성격일 것 같아요.
“허당이고, 진짜 어리버리해요. 성격도 이런 데다 나이에 비해 다들 어려보인다고 하니까 일을 할 때는 좀 차가운 척, 다르게 보이려고 노력할 때도 있는데, 솔직히 아직 스물두 살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에요(웃음). 장난기도 많거든요.”
성격 때문인가요? 정말 어려 보이고 선도 고운데, 얼굴도 몸도 따로 관리하시나요(웃음)?
“<배쓰맨>에서 나름 노출이 있다고 해서 한 달 정도 운동을 했어요. 몸이 만들어지기는 했는데 움직일 때 좀 둔하더라고요. 저한테 이런 운동은 안 맞나 봐요. 수시로 스트레칭은 해요. 계속 관리하는데도 예전만큼 유연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얼굴은 따로 관리하는 건 없고, 아는 형이 팩을 사줘서 자기 전에 팩은 해요(웃음).”
흔히 무용하는 남자들은 좀 여성스럽다고 생각하잖아요.
“에휴, 아니에요. 대부분 남자답고 터프하고, 그런 분들이 더 많아요. 저도 남성적이에요. 제 입으로 얘기하기는 좀 그렇지만 ‘츤데레’라고 할까요. 터프하다기보다는 부드러운 카리스마(웃음).”
뮤지컬 <배쓰맨>은 남성 전용 목욕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세신사들의 이야기인데, 극중 세신하는 장면도 있잖아요. 동작은 어떻게 연습했나요?
“동작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관객들이 실제처럼 느끼실 수 있도록 연구를 많이 했어요. ‘때밀이’니까 처음에는 미는 것에 집중했는데 영상 자료를 찾아보니까 미는 것보다 당기는 게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살살살 밀고 쭉 당기는.”
목욕탕에서 직접 체험해봤겠죠? 이에 대한 답변은 영상에서 직접 확인해 보시죠!
그런데 창작 초연이라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적응을 못했어요. <킹키부츠>나 <컨택트>는 라이선스라서 정해진 틀 안에서 제 것을 찾으면 됐는데, 이 작품은 창작이라 날마다 바뀌고, 대사도 계속 바뀌고, 공연 중에도 바뀌니까 따라가기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작품을 좀 이해하고 줄리오라는 캐릭터를 알게 되니까 이제는 뭘 바꿔달라고 하면 바로 알겠어요. 지금도 관객 반응을 보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채워가고 있는데,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이 재밌어요.”
평소에 뮤지컬은 많이 보세요? 어떤 작품을 해보고 싶나요?
“같이 작품 했던 선배나 동료들이 있으니까 그 분들 공연 있으면 많이 보죠. 일단 큰 꿈은 <킹키부츠>의 찰리를 하고 싶고(웃음), <베어 더 뮤지컬>의 피터도. 최근에 오디션 봤다 최종에서 떨어졌는데, 그러니까 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웃음). 욕심에는 연극도 해보고 싶은데, 아직 모자란 점이 많아서 배우면서 준비해야죠.”
10년 전 무용을 전공할 때와 지금은 걸어가는 길이 많이 다를 것 같은데, 앞으로의 10년은 어떻게 내다보고 있나요?
“어렸을 때 춤을 춘 이유는 막연히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어요. 어떻게 보면 원하는 길을 걸어가고 있는 거죠. 그래서 힘들지만 재밌고요. 저는 먼 미래보다는 가까운 미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일단은 <배쓰맨>을 무사히 마치는 게 가장 큰 목표고, 이후에는 좀 더 많은 공연이나 드라마에 참여하고 싶어요. 물론 무용도 계속 작업할 거예요. 그래서 멀게 내다보면 제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무용과 연극이 섞인, 제가 표현할 수 있는 색깔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오랫동안 공연을 취재하다 보니 팔이 배우들 편으로 굽었던 걸까요? 한선천 씨에게 ‘배우’라는 타이틀을 쉽게 허락해도 되나 라는 생각에 조금은 날 선 질문도 던져봤는데, 차분하고 겸손하게 답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라고 할까요. 그러니 창작 초연인 <배쓰맨>도, 배우로서 첫 발을 내딛은 한선천 씨도 미흡하고 불안하지만 응원할 수밖에 없네요. 뮤지컬 <배쓰맨>은 11월 26일까지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3관에서 공연됩니다. 작품도 배우도 더욱 나아지는 모습을 기대해 보죠!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