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모르는 정글의 세계 –뮤지컬 <배쓰맨>
Welcome to 남탕!
이미 지나간 일들 일 뿐이라고, 그냥 지금 너는 너대로 다시 현재를 살아가면 된다고 (2017.09.22)
B급 정서에 녹아낸 우리들의 이야기
대중 목욕탕을 즐겨 찾는 이들이라면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대중 목욕탕만의 매력을 잘 알 것이다. 뜨끈뜨끈 한 욕탕 속에 몸을 담그면 어느 새 피로는 싹 가시고 골치 아픈 생각과 고민도 사라진다. 종종 세신사에게 관리를 받는 사치(?)까지 부리는 날엔 이 별 거 아닌 행위가 주는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대중 목욕탕을 한 번도 이용해 본적 없는 사람은 있어도, 단 한 번만 이용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자부한다.
뮤지컬 <배쓰맨>은 대중 목욕탕이 주는 소소한 행복과 그 의미를 무대 위에 코믹하게 옮겨 낸 작품이다. 신림동에 위치한 남성 전용 목욕탕 ‘백설탕’을 중심으로 20년 동안 세신사를 해오며 동생들을 뒷바라지 해온 최장남, 파워와 열정만 넘치고 기술은 부족한 강원도 출신 세신사 정귀현, 비밀을 감추고 있는 의문 덩어리 꽃미남 세신사 줄리오 등 세신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신림동에서 20년 동안 운영되어 온 백설탕은 담보 대출로 인한 건물 압류 통지를 받게 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바로 앞에 대형 찜질방이 생기면서 경영위기를 겪게 된다. 백설탕의 사장 박사장과 최장남, 정귀현은 이 위기를 극복하고 백설탕이 다시 일어서는 방법이 무엇일까 머리를 맞댄다. 그러던 중 강남 뷰티살롱 출신의 줄리오가 세신사가 되고 싶다며 백설탕을 찾아오고, 어딘가 모르게 신비로운 느낌을 풍기는 줄리오의 등장으로 백설탕에는 새로운 일들이 펼쳐지게 된다.
뮤지컬 <배쓰맨>은 일명 B급 유머코드를 극 중간중간에 심어 놓았다. 목욕탕이라는 은밀하면서도 개방적인, 다소 독특한 의미를 가진 배경을 적절히 활용한다. 백설탕의 마스코트인 비너스상을 배우가 연기하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극의 흐름을 보다 유쾌하고 매끄럽게 이어준다. 전반적으로 과장 되지 않은 배우들의 연기는, 어디선가 한 번쯤 봤을 법한 우리 주변 인물들을 떠올리게 하며 자연스레 극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실 <배쓰맨>의 줄거리는 다소 빈약하다. 이야기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기 보단, 사건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만들어 낸다는 느낌을 준다. 유쾌하고 코믹적인 요소들로 극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끌어주기는 하지만 단편적으로 소비되는 느낌일 뿐 각 인물들의 깊은 각 인물들이 품고 있는 세신사에 대한 애정이나, 자신의 꿈에 대한 깊은 고뇌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앞쪽에서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써버리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특히 줄리오의 비밀이 밝혀지는 부분은 조금은 급작스럽게 다가온다. 전반적인 스토리 라인이 탄탄하게 잡혀 있지 않은 점은 아쉽게 느껴진다.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지만 뮤지컬 <배쓰맨>의 연출을 맡은 정도영 연출의 표현대로, 뮤지컬 <배쓰맨>의 세신사에 대한 의미가 변질되지 않도록 진지함을 담으려 노력한 흔적도 돋보인다. 세 인물들이 세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소중한 의미를 통해, 관객들에게도 자신이 꿈꾸고 목표하는 바에 대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극이 전개 되면서 장남, 귀현, 줄리오 세 사람은 각자가 지고 있던 삶의 무게, 각자가 숨기고 싶었던 가슴 아픈 기억 등을 알게 된다.
남자들끼리 하는 위로나 격려는 다소 투박하지만, 그 안엔 분명 깊은 진심이 담겨 있다. 이미 지나간 일들 일 뿐이라고, 그냥 지금 너는 너대로 다시 현재를 살아가면 된다고, 모든 것은 너에게 달려 있다고 상대방에게 (혹은 자신에게) 조언을 던지며 세 사람은 한층 가까워 진다. 세신사 답게(?) 세 사람은 함께 목욕을 하며 다시 앞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 뜨끈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시원하게 때를 벗겨내는 것만큼 새로운 마음 가짐을 갖게 해주는 일이 또 있을까? 적어도 그들에겐 그 순간이 가장 의미 있고 따뜻하고 의미 있는 시간일 것이다. 진짜 동료가 된 세 사람이 들려주는 은밀한 목욕탕의 이야기, <배쓰맨>은 11월 26일까지 드림아트센터 3관에서 공연된다
현실과 몽상 그 중간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