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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의 멍한 얼굴 – 슈퍼스타도 상품도 아닌 스물 다섯의 순간
지은이는 말을 잘 못하니까 여기다 쓴 거 같아. 하고 싶은 말을
여전히 영리하고 영악한 한 수였지만, 덕분에 우리도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설거지와 초콜렛에 집착하는 스물 다섯 이지은을. (2017.09.25)
그를 좋아하는 이들은 그를 영리하다고 하고 그를 싫어하는 이들은 그를 영악하다고 하다. 어감이 좀 다르지만 결국엔 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2008년 ‘미아’로 데뷔한 이래 9년 동안, 아이유는 성공적으로 콘셉트를 바꿔가며 슈퍼스타의 지위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슬프고 장중한 노래로 데뷔했다가 대중적인 반응이 오지 않자 아이유는 곧바로 발랄한 틴 팝인 ‘마쉬멜로우’와 ‘부’로 방향을 틀었고, 특유의 음색을 보여줄 수 있게 통기타 하나로 다른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를 커버하는 영상으로 인기를 얻었으며, 이문세나 김광석의 노래를 자기 식으로 재해석하는 것으로 팬 층의 연령대를 중장년까지 확장했다. 대중적 지지를 확보한 후에는 성년과 미성년의 경계에 서서 고백을 망설이는 소녀의 이미지로 ‘좋은 날’과 ‘너랑 나’를 선보였고, ‘스물 셋’과 ‘팔레트’를 통해서는 슈퍼스타가 자기 자신과 불화했다가 화해하는 과정을 노래했다. 자신의 지극히 사적인 성장통으로만 가사를 채웠는데 그게 타이틀곡이 될 수 있고 차트 1위를 기록할 수 있는 가수는 흔하지 않다. 영리하거나 영악하거나. 그러지 않으면 스물 다섯에 저 위치까지 올라가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지은이는 말을 잘 못하니까 여기다 쓴 거 같아. 하고 싶은 말을." JTBC <효리네 민박>의 마지막 회, 아이유가 남긴 편지를 읽다가 눈시울이 붉어진 이효리는 괜히 아이유의 말주변을 이야기하며 말을 돌렸다. 2주 간 함께 생활하는 동안, 이효리와 이상순 부부는 아이유의 힘없는 걸음걸이를 놀리고 늘상 힘 빠진 표정으로 어딘가에 기대어 있는 그를 흉내냈다. 늘 에너지로 가득한 이효리와 중심이 탄탄했던 이상순에 비하면, 말도 행동도 느릿느릿하고 어딘가 덤벙대는 구석이 많았던 아이유는 놀려먹을 구석이 많았으니까. 물론 짓궂은 애정표현이었다. 이효리는 스물 다섯의 나이에 슈퍼스타가 되어 그 지위를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런 이효리를 곁에서 지켜본 이상순 또한 스타덤이 주는 중압감을 경험한 사람이니까. 그래서 부부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아이유를 놀리면서도 입버릇처럼 말했다. 지은아, 편하게 있어. 들어가서 편하게 누워서 자. 괜찮아. 덕분에 아이유는 카메라가 곳곳에 즐비하게 설치된 집 안에서도 아무 생각 없이 멍한 표정으로 시간을 죽일 수 있었다. 늘상 영리해야 하고 때론 영악해야 하는 슈퍼스타 아이유가 아니라, 제주의 햇살과 바람에 무방비로 몸을 맡긴 스물 다섯 이지은으로.
누군가에게는 선망의 대상이겠지만, 자기 자신이 진열장에 올려진 상품이 된 채로 보내는 20대라는 건 결코 즐겁기만 한 일이 아니다. 아이유는 ‘팔레트’의 후렴에서 “날 좋아하는 걸 알아”와 “날 미워하는 걸 알아”를 번갈아 부른 뒤,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날”이라고 말한다. 변덕스러운 대중과 바라는 것이 많은 세상의 틈바구니에서 간신히 자신을 알 것 같다고 노래한 뒤 그는 관찰예능 <효리네 민박>을 선택했다. 여전히 영리하고 영악한 한 수였지만, 덕분에 우리도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설거지와 초콜렛에 집착하는 스물 다섯 이지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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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