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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현의 입꼬리 : 무게를 견디는 천진함
JTBC <비긴 어게인>의 윤도현, 감정을 숨기거나 꾸미지 않는다
이 무게를 모두 떠안은 채 여전히 웃고 까불며 솔직한 목소리로 여행을 한다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2017.07.31)
편한 사람들과 떠난 여행이라 그런 걸까, 아니면 낯선 환경에서 노래를 하는 부담감에 그런 걸까. 어느 쪽이든, JTBC <비긴 어게인>의 여정 내내 윤도현은 좀처럼 감정을 숨기거나 꾸미지 않는다. 그는 숙소를 옮길 때마다 누가 더 좋은 자리에서 자는가를 두고 펼쳐지는 게임에 국운을 건 사람처럼 임하고, 아일랜드의 슬래인 캐슬부터 체스터의 체스터 대성당까지 웅장하고 압도적인 풍광을 볼 때마다 입이 찢어져라 감탄한다. 관객들이 “당신 말고 저 여자(이소라) 앵콜 하라고 해라”라고 짓궂은 농을 걸 때 당황해서 멋쩍게 웃고, 길거리의 관객들이 자신의 노래에 관심을 보이고 함께 따라 부를 때 누구보다 더 흐뭇하게 웃는다. 팀 전체의 막내는 노홍철이지만, 가장 소년 같은 천진한 마음으로 여행하는 건 윤도현이다.
물론 그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사실 넷 중 그나마 해외 공연 경험이 많은 건 윤도현이다. 그가 속한 밴드 YB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한국 록 밴드의 대표주자가 되어 각종 해외 록 페스티벌에 초청되고 현지 관객들과 소통해 온 역사가 제법 길었으니까. 본디 같이 여행을 떠난 이들 중 누구라도 더 경험이 많은 사람이 더 많은 부담감을 지니기 마련이다. 아무리 사전에 여행일정을 합의하고 제작진이 준비해 준 숙소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하더라도, 결국 짐을 풀자 마자 제일 먼저 기타를 들고 앞장서서 현장의 공기를 살피는 건 윤도현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바람잡이의 역할을 하는 것도, 잔뜩 긴장한 이소라에게 먼저 “나랑 연습하자. 여기(골목) 연습하기 좋아.”라며 손을 내미는 것도, 영어로 멘트를 준비해서 팀을 소개하고 관객들과 소통하는 것도 결국엔 가장 해맑게 웃던 윤도현이다. 이 무게를 모두 떠안은 채 여전히 웃고 까불며 솔직한 목소리로 여행을 한다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저 무게가 혹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걱정될 때쯤 윤도현은 입꼬리의 각을 크게 열며 웃으며 주변을 안심시킨다. 스케이트 보드를 타다가 넘어져 기타가 깨졌을 때에도, 그는 심각하게 얼굴을 굳히는 대신 방점을 찍듯 입꼬리를 한껏 모아 서러운 마음을 콕 표현하고는 다시 좌우로 쫙 펼쳐 민망함을 웃음으로 덮는다. 여행 내내 게임 운이 없어 좋지 않은 잠자리를 누려야 했던 그를 배려한다며 넓은 침대를 양보하려는 유희열과 노홍철을 만류하고 한사코 정정당당하게 게임을 하자고 말한 윤도현은, 그 마음에 미안해 질 무렵 입을 소문자 o 모양으로 한껏 모아 바람을 불어 휴지를 허공에 띄우는데 사력을 다한다. 선글라스에 자주 가려진 시야와 크게 활용하지 않는 코 근육 대신, 윤도현은 얼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입 근육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상대가 느낄 만한 미안함과 안쓰러움, 고마움 등의 무게를 천진하게 받아낸다.
“당신 연주를 보면서 나도 뭔가 도전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리버풀 버스킹을 가장 앞자리에서 가장 열심히 바라봐 준 관객의 말에, 윤도현은 예의 입꼬리를 좌우로 쫙 찢어 씩 웃으며 말한다. “도전하고 싶다면, 그냥 한번 해봐요.” 그 웃음은, 자기 감정을 속이지 않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도전하고, 그에 따르는 무게를 기꺼이 짊어져 왔던 사람 특유의 웃음이다.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