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불후의 칼럼 > 하지현의 마음을 읽는 서가
직업 아닌, ‘내 일’을 찾아 나를 지키는 법
강상중의 신작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을 읽고
‘그냥 해보자’는 마음으로 사회에 들어가 일을 해보고 접점을 만들어보면서 시도하는 마음이 훨씬 나은 자세다. (2017.09.11)
언스플레쉬
노력만 하다가는 나를 잃어버릴 것 같아 무섭다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10년을 공부를 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이제 40대 중반인데 아직도 비정규직 강사일 뿐이다.”
어느 기사에서 대학 강사의 고민을 읽었다. 다른 뉴스에서는 대기업에 어렵게 취업한 신입사원 3명 중 1명이 1년 이내에 퇴사를 하는데, 고생해서 들어갔지만 그에 비해서 하는 일은 만족하기 어렵고, 전망도 밝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길이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믿고. 또 앞서 간 사람들도 인정한 검증된 진로였다. 그래서 전력을 다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그렇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빨리 달라졌다. 20년 전 대학이 급격히 늘어날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출생자 수가 급격히 줄면서 대학은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있다. 새로 교수가 되는 것은커녕, 이미 교수가 된 사람들도 온전히 정년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 미지수인 대학도 등장하고 있다. 또 대기업에만 들어가면 경제적 보상과 안정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믿었지만, 막상 들어가 보면 다른 점이 너무 많다. 이제는 과거와 달리 세칭 ‘워크 라이프 밸런스’ 즉, 일과 삶의 균형을 가질 수 있는지 여부가 직장 선택의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고 있다.
나의 개인적 노력 여부와 관계없이 나를 둘러싼 환경의 불확실성이 증가하다 보니, 장기적 계획을 세워 오랫동안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어렵게 자리를 잡는다고 해도, 일을 해내느라 내 영혼을 갈아 넣어 분쇄되어 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커진다. 적당히 힘들면서 여가생활도 가능하고, 미래에도 안정적인 직업이란, 현실에서는 구현하기 어려운 희망사항이다. 이것이 현대사회의 리얼타임 상황이다.
한 치 앞을 바라보기 어렵고, 또 그저 묵묵히 노력만 하다가는 나를 잃어버릴 것 같아 무섭다. 갈수록 경쟁은 강해지고, 노력한 만큼의 보상을 기대하기 어렵고, 나의 고유한 개성을 유지하며 삶의 여유를 찾는 것이 갈수록 사치스러운 희망이 되어간다. 어떻게 ‘나를 지키며 세상 속에서 일을 해나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 절실한 시기다. 제현주의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도 이런 맥락의 고민을 원칙적인 측면에서 다뤘다. 이어서 자기만의 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팟캐스트 <일상기술연구소>로 소개했고, 동명의 책도 나왔다. ‘일과 삶의 균형’을 갖기 위해, 또 일이 좋지만 일에는 휩쓸리기 싫은 마음, 나를 찾기 위해 일을 하지만, 또 일에 몰두하다 나를 잃어버린 경험 등이 생생하게 소개한다.
독서와 성찰이 더해져야 각성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현실적 이야기에 더해서 존재론적이고 철학적 고민으로 지평을 넓혀볼 필요가 있다. 강상중 교수가 낸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을 펼쳐 볼 차례다.
강상중 교수는 대학 3학년때 처음 한국을 방문하기 전까지는 나가노 데쓰오라는 일본 이름을 쓰던 재일교포였다. 그는 자이니치라 좋은 기업에 취업할 수 없다는 것을 일찍이 알고 있었다. 그걸 알고 있는 어머니의 권유로 고등학교 때까지는 야구에 몰두하였다. 그는 10대에는 야구선수를 했지만 체력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실패를 인정하고 늦게 공부를 시작해서 어렵게 와세다대학에 들어간다. 그가 와세다대학에 들어간 이유도 사회인 야구를 계속 하려던 욕심이었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포기했고 오랜 시간 공부를 하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교수가 되고, 이어 외국인으로는 첫 번째로 도쿄대학의 정교수가 되기에 이르렀다.
현재 그는 자신의 고향 구마모토 현립극장의 관장 겸 이사장으로 일을 하고 있다. 그는 마이너로 시작해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고, 처음부터 계획대로 살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이 책은 그가 NHK의 TV프로그램 <시코토학을 권함>에 등장해 자기 이야기를 풀어낸 내용을 펴낸 것이다. 일본어에서 시코토(任事)는 직업과 유사하지만 그보다 넓은 의미로 집밖에서 하는 사회적 일을 일컫는다고 한다. 이 책에서 이제는 주류 사회에 속했지만 시작은 마이너리티였던 경험을 녹여서 지금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세상을 향해 ‘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그만의 철학을 말한다.
먼저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혼자서 도저히 다 해볼 수 없는 경험을 대신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제안한다. 독서는 책의 세계로 들어가는 능동적 행위로 내 입장에서 적용하고 상상하는 일종의 ‘내적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 다섯 권의 책을 추천하는데, 빅터 프랭클의 『삶의 물음에 예라고 대답하라』,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 피터 드러커의 『매니지먼트』,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이다. 인문, 소설, 자기계발, 경제서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독자들이 사고의 폭을 넓히기를 기대하는 것이 엿보인다.
몇 명의 본받을만한 리더들도 소개한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루틴을 고수하면서 사회적 연결의 끈을 놓지 않은 벤저민 프랭클린, 일본의 언론인 출신의 정치가 이시바시 단잔, 기술과 현장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혼다 자동차의 혼다 소이치로와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 그리고 대중보다 반발 항상 앞서가던 정치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중요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시대를 읽는 통찰력과 새로운 가치를 낳는 창조성과 구상력을 들었다. 시대를 명민하게 읽고 반영하여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과거의 축적물로 엑기스를 말려놓은 고전서적과 역사적으로 나름의 한 획을 그은 리더들을 통해 ‘일에 대한 고민’의 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세상은 과거 세대와 달리 불확실해서 이전의 방식으로 20년 후를 예측하고 살아가면 안 된다고 단언한다. 지금 학력사회는 붕괴하고 종신고용도 사라졌다. 주변의 인정이나, 안정성을 추구하는 직업이 아니라, ‘나다움’이란 인생 자체와 깊은 관계를 맺으려는 고민을 항상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므로 한 가지 주어진 시점만 고수하기보다 다양한 관점을 갖고 시도를 해보려는 열린 태도를 갖는 것이 필수다.
여기에 독서와 성찰이 더해져야 각성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단시점이 아닌 복안의 시점을 갖고 봐야 사물을 보는 시간을 바꾸는 각성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받아들이지 못한 나의 또 다른 면을 인식하면서 ‘자신의 복수성을 자각’하는 것이 앞으로의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다양성의 참된 의미라는 것이다. 다양성이란, 나의 외부에 다른 사람이 있고 다른 시각이 있어서 그것들이 각자 나름대로 공존하고 동시에 내가 변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오직 ‘나다움’에 대한 강박적 집착으로 사회를 거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그보다는 ‘그냥 해보자’는 마음으로 사회에 들어가 일을 해보고 접점을 만들어보면서 시도하는 마음이 훨씬 나은 자세다. 나는 이런 부분이 이 책의 핵심이라고 여기고 적극 동의하는 마음을 가졌다. 물론 이때 불가피하게 낯선 것, 어려운 것에 의한 불안이 따라오지만, 사실 강상중 교수가 보기에 이 사회 전체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아무리 안정적인 일이라 해도 불확실함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100% 불가능하다. 그러니 적당한 불안은 이 사회에서 일을 하면서 내야 하는 기본 요금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건강한 마음가짐이다.
언스플레쉬
하나의 영역에 자신을 100% 맡기지 않겠다는 태도
더욱이 실적과 효율을 갈수록 중요시 여기는 사회에서 중압감을 버티는 방법은 더 잘해내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거꾸로 ‘하나의 영역에 자신을 100% 맡기지 않겠다는 태도’를 갖는 것이다. 일에 전부를 쏟아 붓지 않는 것이 도리어 나를 궁지로 몰아넣지 않는 비법이다. 과거에는 한 가지 일에 인생을 쏟아 붓는 것이 미덕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불확실의 시대에는 100% 순도의 한 가지 일에 올인 하는 태도는 자칫 위험하다. 도리어 자기 방어책의 일환으로 한 가지 영역에는 완전 몰입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일종의 리스크 헤지(위험회피)의 전략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야 한 가지 상처로 무너지지 않고, 실패에 대한 보상을 다른 종류의 보람으로 얻는 다양성의 포트폴리오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이런 인식을 갖는다면 이제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는 나를 ‘갈팡질팡’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나로 인식할 수 있다. 나의 지금 모습에 대해 ‘뭐 상관없어 그걸로 됐어’라고 인정하며 노력해서 별할 수 있는 것이 있지만 그러지 못한 것도 있다는 것도 인정하는 것이다.
저자는 그대로의 나를 인식하는 긍정적 태도가 현대사회의 불확실한 상황에 다양성이란 방식으로 대응하며 열등감, 낮은 자존감, 후회에 빠지지 않고 사회에서 나를 지켜나가며 일을 해나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어찌 보면 역설적인 내용일지 모른다. 그러나, 외국인으로 일본에서 태어나 살아가며 어찌하다 보니 일본의 주류의 중요한 인물이 된 강상중 교수의 자전적 경험에서 우러난 이야기이다 보니 현대사회의 불확실성에 맞서는 그의 조언에 공감을 할 수 있다. 이제 과거 주류 사회의 안정적 삶의 틀을 지탱해온 ‘일관성, 안정성, 목표지향성, 효율성’의 원칙은 폐기해야할 시점일지 모른다.
현대사회의 자기계발 강박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트랙에서 완전히 튕겨져 나가기에는 불안하고, 아예 거부하고 말겠다는 환상을 갖기에는 현실적인 사람들에게 유용한 역설적 제언을 이 책은 담고 있다. 불확실한 시대에 나를 지키면서 사회에서 일인분으로 살아가는 것, 점점 어려운 과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생각의 전환을 통해 의외로 길은 쉽사리 열릴 수 도 있지 않을까?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강상중 저 / 노수경 역 | 사계절
저자는 직업의 안정성, 나아가 삶의 안정성까지 위협받고 있는 이 역경의 시대에 ‘나’를 지키며 일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일이란 무엇인지, 나는 왜 이 일을 하는지, 일을 통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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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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