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그래, 난 취했는지도 몰라
등을 보이고 산다는 것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
같이 사는 사람과 서로 당신이 더 잘 되어야 한다고 격려하는 내심에는 어떻게 좀 잘나가는 상대의 등을 처먹고 살아볼까 하는 낭만적 부부애가 있다. (2017.08.22)
책장은 언제나 모자란다. 책으로 밥 버는 사람들이 한 집에 산다는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책이란 본래 늘어나기 마련인 물건이다. 딱히 물욕이 넘치는 것도 아닌데, 책을 처분하기는 참 어렵다. '언젠가는 다시 볼 것이다', '팔아봤자 돈도 안 된다', '산지 십 년이 되었지만 아직 읽지 못했다' 등의 이유로 책은 늘어나기만 하고 줄어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책장에 용케 자기 자리를 확보하고 있는 책보다 그 위에 뉘어진 책, 그 앞에 쌓인 책이 더 많다. 그래서 책은 꼭 제목 자가 보이게 두어야 한다. 이 부분을 '책등'이라고 하는데, 출판 현장에서는 일본말인 '세네카' 라는 말을 더 많이 쓰긴 한다. 각양각색의 색깔과 크기, 제목 자를 가진 책이지만 책등 대신에 배를 보이게 둔다면 구분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언제 읽을지 모를 책을 쟁이더라도 등이 보이게 쌓아야 한다.
등을 보이고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은 책만이 아니다. 고양이를 구분할 때 '러시안 블루'라거나 '샴 고양이'라거나 하는 족보 있는 류가 아니고서는 등을 보고 이름을 붙인다. 길에서 만날 수 있는 이런저런, 일명 '똥고양이'를 구분하는 근사한 명칭이 있는데, 젖소라거나 턱시도, 고등어 따위의 이름이 그것이다. 하얀 바탕에 검은 무늬는 '젖소', 배와 손발목만 하얗게 드러난 '턱시도', 몸 전체가 새까만 '올블랙', 노란둥이는 ‘치즈’, 등의 무늬가 물고기 같은 '고등어', 온갖 색이 복잡하게 뒤섞인 '카오스' 등의 이름은 이제 고양이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익숙해진 말이다. 실로 포유류, 어류, 공산품, 패션, 과학계를 넘나드는 구분명이다. 들뢰즈도 이런 리좀적 다양성을 가진 배치는 생경할 거다.
왼쪽부터 턱시도, 젖소, 고등어. ⓒ이용한
젖소와 고양이는 물론 고등어도 늘 등을 보이고 살아가지만 직립보행의 탓으로 유독 인간은 배를 보이며 살아간다. 그래서 등을 보이는 것에 공포를 느낀다. '등을 내어주었다'거나 '등을 처먹었다', '등지다'는 말을 보면 그렇다. 죽으면 배를 보이고 둥둥 떠오르는 금붕어나, 배를 내보이면 항복을 의미하는 개와 비교하면 사뭇 다르다. 등이 따뜻하고 배는 불러야 하는 것을 보면 등을 바닥에 대고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무릇 인간 삶의 기본이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는 중성화 수술 이후 살이 많이 쪄서 비만 고양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어졌다. 땅에 닿을 듯한 뱃살에도 불구하고 등을 보이고 사는 덕분에 통통해진 볼 살이 먼저 보일 뿐, 나온 배가 보이지는 않는다. 대신 배를 내보이고 사는 불쌍한 호모사피엔스인 나는 요즘 들어 뱃살이 어찌나 도드라지는지 억울하기 짝이 없다. 배를 좀 가리기 위해서라면 등을 내주더라도 직립보행 대신에 도로 네발보행을 택하고 싶을 지경이다.
책을 업 삼은 동안은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를 벗기 쉽지 않을 거다. 같이 사는 사람과 서로 당신이 더 잘 되어야 한다고 격려하는 내심에는 어떻게 좀 잘나가는 상대의 등을 처먹고 살아볼까 하는 낭만적 부부애가 있다. 책등을 빼고는 등 돌리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시탐탐 서로의 등을 노리며, 그래도 등 긁어줄 때까지 같이 살겠지 싶어 돌아누운 이의 등을 가만히 쓸어보는 것이다.
'그래, 난 취했는지도 몰라'라는 변명 아래 책과 전자책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작년부터 알코올 알러지를 앓고 있는데 개가 똥 알러지 같은 소리라는 핀잔만 듣고 있습니다. 고양이 4마리, 개 1마리와 살며 책에 관한 온갖 일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