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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고양이스러운, 너무나 인간적인 – 뮤지컬 <캣츠>

<캣츠>의 리바이벌 공연,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서 공개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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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캣츠>가 보여주는 고양이들의 세계. 그 위로 인간의 삶이 겹쳐진다. (2017.08.21)

 

[군무] 제니애니닷 검비댄스.jpg

 

‘냥덕’ T.S.엘리엇의 고양이 이야기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에서 평론가 진중권은 말했다. “타자를 타자로 인정하지 못하고 꼭 ‘인간화’했던 삶을 반성해”라고.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의 고양이 ‘루비’가 한 말을 옮겨 적은 것인데, 아마 T.S.엘리엇이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친구, 내 말이 바로 그 말이네!’라며 반색했을 것이다. 이 20세기의 대문호야말로 일찌감치 ‘고양이중심주의’를 선언한 냥덕이었으니 말이다.

 

분명 T.S.엘리엇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고양이에게는 독자적인 세계가 있고, 그걸 알아챈 인간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래서 『주머니쥐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지혜로운 고양이 이야기』라는 (제목도 긴) 시집 안에 비밀스러운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놓았을 것이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뮤지컬 <캣츠>는 시집 『주머니쥐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지혜로운 고양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시에 등장하는 고양이들의 캐릭터, 매력, 삶의 순간들은 고스란히 무대 위로 옮겨졌다. 그리고 환상적인 무대 매커니즘과 음악, 춤, 의상과 연기를 만나 또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했다.

 

[군무] 젤리클 볼 (1).jpg

 


우리는 ‘젤리클 캣’


<캣츠>의 고양이들은 스스로를 ‘젤리클 캣’이라 명명하고 고양이에게는 특별한 이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나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불러 달라 요구하는 것이다. 이토록 강한 자의식을 가진 젤리클 캣은 1년에 한 번 축제를 연다. 고양이의,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를 위한 축제의 이름은 ‘젤리클 볼’. 고양이의 목숨은 아홉 개라는 속설처럼 다시 한 번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주인공을 뽑는다. ‘선택 받은 고양이’가 되기 위해, 축제에 모인 젤리클 캣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하고 지난날을 회상하듯, 화려했던 시절을 떠올린다. 젊음 하나로 빛이 났던 그때, 재능을 뽐내면서 부러움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던 순간들을 이야기하면서 얼굴은 점점 상기된다. 이제는 다시 오지 않을 날들이지만, 주어진 삶을 허투루 살지 않았다는 자긍심에 어깨에는 힘이 실린다. 그렇게 당당하게 턱을 치켜 든 고양이들 사이에 ‘그리자벨라’가 있다.

 

한때는 모든 고양이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매력적인 고양이 그리자벨라. 지금의 그녀에게는 윤기 나는 털도 고혹적인 자태도 찾아보기 힘들다. 더러워지고 엉켜버린 털로 뒤덮인 모습이 누더기를 걸친 것 같다. 축제에 모인 고양이들은 슬금슬금 그녀를 피하고, 가까이 다가가려 하면 발톱을 세우고 하악질을 한다. 냉대와 멸시 속에서 그리자벨라는 자신을 향해 손을 뻗어 달라 절규한다. “나를 향해 손을 내민다면, 당신은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될 거예요(If you touch me, you’ll understand what happiness is)”라고 온 마음을 다해 노래한다.

 

[군무] 캣츠 내한공연 (1).jpg


지극히 고양이스러운, 너무나 인간적인


뮤지컬 <캣츠>는 1981년 웨스트 엔드에서 초연된 후 30개 국가에서 9천회 이상 공연됐다. 무려 7천 3백만 명 이상의 관객과 만나며 수많은 팬을 만들어냈지만, 작품을 처음 만나는 이들 은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렇다 할 스토리나 뚜렷한 기승전결의 구조 없이, 작은 에피소드가 연결된 형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캣츠>만의 재미를 발견하고 느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잠시나마 고양이들의 세계를 들여다본다고 생각하면 흥미로운 이야기로 다가온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그 속에서 인간과 다르지 않은 순간과 감정을 만나게 된다는 사실이다. <캣츠>의 고양이들은 서로 다른 개성과 사연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이의 삶을 달콤했고, 어떤 이의 삶은 화려했으며, 또 다른 이는 ‘제 뜻대로’ 자유롭게 살았다. 그리자벨라와 같이 회한으로 점철된 삶을 산 이도 있다. 마치 인간사의 축소판 같다고 할까. 그런 점에서 <캣츠>는 지극히 고양이스러운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너무나도 인간적인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캣츠>를 보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넘버인 ‘Memory’가-늙고 초라한 한 마리 고양이가 부르는 이 노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든 것도 그런 이유다. 찬란했던 날들이 지난 뒤, 마음처럼 살아지지 않았던 삶을 반추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고양이만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Memory’를 듣다 보면 ‘I dreamed a dream’이 떠오르기도 한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팡틴이 애끊는 마음으로 불렀던 노래, 그 속에 담긴 빛바랜 추억과 서글픔이 묘하게 겹쳐진다. 팡틴에게도 그리자벨라에게도 삶은 친절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자벨라에게는 또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러한 <캣츠>의 결말이 인간에게 희망은 될 수 없겠지만, 작은 위로가 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자벨라] 메모리.jpg


새로워진 <캣츠>, 아시아 최초 공개!


2017년 다시 찾아온 뮤지컬 <캣츠>는 새로워진 버전으로 관객들과 만난다. 2014년에 처음으로 리바이벌 공연을 선보인 본 작품은 더 역동적이고 파워풀한 군무, 업그레이드 된 의상과 헤어스타일 등으로 무장했다. 이미 파리와 시드니, 두바이, 벨기에, 스위스 등에서 상연되며 “동시대와 호흡하는 최고의 공연”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아시아에서는 서울에서 최초 공개된다.

 

<캣츠>의 오랜 팬으로서 달라진 공연이 걱정될 법도 하지만, 앞서 작품을 만난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우려하지 않아도 좋다’. <캣츠>만이 안겨줄 수 있는 재미와 감동, 마법 같은 경험은 변하지 않았다.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크리에이티브팀이 직접 캐스팅한 배우들의 활약은 감동을 고스란히 이어간다. 뮤지컬 <위키드>의 엘파바로 주목 받은 ‘로라 에밋’이 그리자벨라를 맡아 흠 잡을 데 없는 가창력을 선보이고,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Memory’를 매끄럽게 소화해냈다. 미국 상연 당시 ‘럼 텀 터거’ 역을 맡았던 ‘윌 리처드슨’이 함께 내한했으며, <오페라의 유령>에서 팬텀을 연기한 ‘브래드 리틀’이 선지자 고양이 ‘올드 듀터러노미’를 연기한다.

 

뮤지컬 <캣츠>는 9월 10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서울의 관객들과 만나고 이후 광주와 부산, 울산, 대전으로 무대를 옮겨 공연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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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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