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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림에도 얻는 것들에 대하여

프로잃어버림러의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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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동정하지 마시라! 잃어버림에도 얻은 것들이 많다. 우선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의 분노, 좌절감은 세상이 무너진 격으로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이미 잃어버린 물건을 어찌할 것이며, 사람은 변하기 힘들다는 것을 자각하고 기다리다 보면 모든 감정은 지나간다. (2017.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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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떨어진 과거의 나

 

내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면 하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나는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사람이(었)다. 지능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 않은가. 잃어버리는 지능이 있다면 상위 1% 정도였을 것이다. 여권, 가방, 카드, 열쇠, 머플러, 우산 등 잃어버린 물건의 종류는 다양하고 많다. 물론 많은 사람이 물건을 잃어버리겠지만, 그 수준이 고칠 정도냐 아니냐가 중요한 점이다. 나의 정도는, 엄마가 우스갯소리로 ‘집은 어떻게 안 잃어버리고 잘 찾아오니’ 하시는 정도 혹은 친구들이 ‘그럴 거면 몸에 붙이고 다녀!’ 정도였다.


이사 온 지금 집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남향도 수압도 아닌(엄마가 보면 놀라겠지만) 도어락의 설치 여부였다. 나랑 가장 많이 고생한 물건이 ‘열쇠’ 혹은 현관문이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중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도어락이 없었고(언제부터 있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학창시절 많은 에피소드 중 가장 강렬한 에피소드는 열쇠 없이, 엄마 아빠보다 먼저, 하교하는 일이다. 


당시 수업이 끝나고 열쇠가 없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아빠보다 퇴근이 빨랐던 엄마를 기다린다거나, 직접 열쇠공 아저씨를 불러서 따고 들어가는 방법이다. 엄마를 기다리는 것보다 자주 사용한 방법은 두 번째 방법이다. 엄마를 기다리면, 대략 2시간 동안 층간 계단에 멍하니 앉아있거나, 내 멍청함에 화가 나서 눈물을 흘리며 자괴감을 느낄 뿐이었다. 그래서 열쇠공 아저씨를 자주 불렀는데, 1회에 몇천 원 정도로 저렴했다. 나중엔 열쇠공 아저씨랑 친해져서, 공짜로 문을 딴 적도 많고 알고 보니 친구네 아버지여서 더 자주(?) 와달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내가 측은해 물을 내어주시던 옆집 아주머니도 계셨다. 아주머니가 이사를 할 땐,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자 세입자가 오기 전까지 내가 상시로 들어갈 수 있도록 그 집 열쇠를 비밀공간에 넣어주시기도 했다. 지금은 이럴 일이 전혀 없다. 미화된 기억일 수도 있겠지만, 나름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면 가장 많이들 잃어버리는 지갑은 어떠한가. 의외일 수도 있지만 가장 적게 잃어버린 물건이다. 처음으로 지갑을 선물 받았던 14살부터 지금의 27살까지, 정확히 4번 잃어버렸고 (이마저도 많다고 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잃어버리는 지능이 탁월한 나에겐 적은 편) 모두 다 찾았다. 홍대 캔모아에 두고 왔을 땐 가게에서 가지고 있었고,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떨어뜨린 운동장 벤치에 그대로 있던 지갑도 있다. 신도림역 야외공원에 두고 왔을 땐 주운 사람이 가지고 있어 줬고, 당산역에서 잃어버렸을 땐 주운 사람이 경찰서에 가져다줘서 분실물 택배로 받았다. 이렇게 운이 좋았기 때문에 지갑은 ‘영원히 잃어버린 적’은 없는 물건이다. 친구들은 ‘네가 지갑을 영영 잃어버렸어야 혼이 났을 텐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취직 전에는 나열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이 잃어버리고, 잃어버린 물건들을 메꾸기 위해 쓴 돈이나 시간이 엄청나다. 그렇다고 동정하지 마시라! 잃어버림에도 얻은 것들이 많다. 우선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의 분노, 좌절감은 세상이 무너진 격으로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이미 잃어버린 물건을 어찌할 것이며, 사람은 변하기 힘들다는 것을 자각하고 기다리다 보면 모든 감정은 지나간다. 그 덕인지 분노가 치밀어도 삭힌다거나, 조용히 화내는 방법을 터득하긴 했다. 그리고 고마운 사람들과 행운 덕에 정신적 상실감도 적고 부정적이지도 않아서, 세상은 아직 아름답다는 소리를 곧잘 한다. 언제든 잃어버릴 수 있으므로 물건에 대한 애착이 크지도 않고, 그러다 보니 미니멀리즘을 좋아하고 미련이 없는 성격이기도 하다. 또 잃어버린 물건은 다시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챙기는 체크리스트도 많아졌고, 그 덕에 예전만큼 잃어버리지도 않는다. 뭐가 됐든 다양한 경험을 가지게 됐다고 생각한다.


나처럼 잃어버리는 지능이 탁월(물건을 소지하는 능력이 열등)한 사람들을 너무 멍청하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솔직히 말해서, 물건을 잃어버리는 건 내 손해지 타인의 손해는 아니지 않은가. 잃어버린 사람들은, 그 나름의 득과 실로 충분히 고생한다. 그리고 물성을 가진 것만 잃을 뿐이지, 어쩌면 나처럼 정신력은 더 강화됐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저마다의 걸음걸이가 있고 저마다의 날갯짓이 있어요.
- 한동일, 『라틴어 수업』

 

여름 더위 탓에 가볍게 카드만 들고 외출한다거나, 페스티벌이나 휴가처럼 잃어버리기 좋은 계절이 왔다. 외출 전 가지고 나가는 물건을 꼼꼼하게 확인할 시기이다. 나와 같은 동족(?)들이 여름을 무사히 잘 헤쳐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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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지연(예스24 굿즈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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