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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호 타코를 먹으며

애리조나 주 나바호 자치구에서의 하룻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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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호 자치구에서 정크푸드에 세금을 추가하고, 공식적으로 음주를 금하는 데에는 사회적 맥락이 있다. 정크푸드에 세금이 따로 붙는 이유는 이들이 미국에서 비만율이 높기 때문이다. (2017.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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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밥을 먹고 계산을 하려는데 계산서에 평소보다 길게 늘어선 세금 목록이 보였다. U.S 세금, 나바호 세금, 나바호 2% 세금, 이렇게 총 세 종류의 세금이 내가 먹은 밥값에 들러붙어 있었다. U.S 세금은 원래 붙는 세금이고, 나바호 세금은 아마도 여기가 나바호 자치구니까 세금이 또 따로 붙나보나 생각했다. 그러나 나바호 2% 세금은 뭔지 아무리 계산서를 노려봐도 도대체 알 수 없었다. 뭘 알고 돈을 내야지 싶어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나바호 2% 세금이란 뭔가요? 직원이 말하길, 정크푸드에 매기는 세금이라고 한다. 정크푸드? 내가 먹은 음식에 정크푸드가 있다고? 그는 정확한 식재료를 명시하지 않은 채 얼버무려 말했다. 아마도 곁들여 나온 감자튀김이 정크푸드겠거니 생각한다. 정크푸드인 줄도 모르고 먹었는데 세금까지 추가로 붙어나오니 괜히 속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아...... 이게 그거구나’라고 알아챘다.


애리조나 주 북부에는 나바호 자치구Navajo Nation가 넓게 자리하고 있다. 나바호는 미국 토착민의 한 부족 이름으로 자치구는 그들 고유의 문화를 보존하며 살도록 정부에서 지정한 구역이다. 백인의 ‘서부 개척’은 토착민들에게는 서쪽으로, 서쪽으로 밀려나면서 학살당한 역사다. 뒤늦게 ‘보호’한답시고 토착민의 자치구를 곳곳에 만들어서, 각 부족은 미국 내의 또 다른 국가처럼 보호인 듯 고립인 듯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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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날 나는 존 포드 영화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기막힌 암석이 거대하게 펼쳐진 모뉴먼트 밸리의 호건hogan에서 하룻밤을 잤다. 호건은 흙으로 지은 나바호의 전통가옥 이름이다. 호건의 주인인 로잘린이 만들어준 그들의 전통음식 나바호 타코와 허브차를 사이에 두고 해가 서서히 질 때부터 새까만 하늘에 별이 빽빽하게 보일 때까지 모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 곳에는 물도 전기도 없어서 제대로 씻기 어렵고, 실내에는 등유 램프를 켜고, 화장실은 당연히 재래식이다. 딱히 이들의 전통가옥에 관심이 있었거나 미국 원주민의 전통생활을 체험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는 없었다. 주인이 제공한 제한된 물로 양치질도 어렵게 해야 하는 호건에서 굳이 하룻밤 묵은 이유는 그저 숙박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해서였다. 주변에 아무리 찾아도 저렴한 숙박시설이 없었다. (이 호건 조차 다른 지역의 일반 모텔보다는 비쌌다)


천정에는 구멍이 뚫려있어 바깥공기와 연결되어 있다. 비가 오면 당연히 뭔가 덮겠지 했는데 아니었다. 로잘린에 의하면 그들은 자연과의 연결, 순환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어떤 날씨에도 호건의 지붕은 구멍이 뚫려있는 상태를 유지한다고 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그렇게 그냥 두는 것이다. 바닥도 어떠한 마감 처리가 되어 있지 않고 그냥 모랫바닥이었는데, 그 모랫바닥의 쓸모가 조금 이해되었다. 모래 위로 빗물이 떨어지면 물이 땅속으로 흡수될테니까. 게다가 강우량이 그리 많은 곳은 아니다. 이 호건은 여성형과 남성형이 있고 내가 머문 호건은 여성형이었다. 임신 기간 9개월을 상징하는 9개의 기둥이 있었다. 역시 자연과의 조화를 중요시해서 아침 해를 받기 위해 문은 항상 동쪽으로 낸다고 했다. 비평가 폴라 건 앨런이 말한 “우리는 땅이다”라는 토착민의 가치관이 전달되는 가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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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호건에서 자는 날 흙바닥에 앉아 밤하늘의 총총한 별을 보며 캔맥주 한잔하려는 나름의 야심찬 계획을 품고 있었다. 우뚝우뚝 솟아있는 거대하고 붉은 암석기둥을 보며, 17년 전 지리산에서 보았던 보석 같은 별빛을 다시 만나 건배를 하리라, 꿈을 꾸고 있었다. 이는 뭘 모르는 어리석은 자의 헛된 소망이었다. 기네스 맥주와 버터구이 오징어까지 아이스박스에 챙겨서 갔는데 술은 한 방울도 마시지 못했다. 모뉴먼트 밸리는 나바호 인들에게 신성한 장소라서 음주를 금한다고 했다. 대신 나바호 허브차를 내놓았다. 직접 채집해서 말렸다는 허브차가 향이 좋아 나는 더 달라고 여러 번 컵을 들이밀었다.


원주민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전통문화는 점점 보존하기 어렵고, 자치구 바깥으로 떠난 젊은 세대들과 문화적 갈등을 겪는다. 세대 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스타워즈>나 <니모를 찾아서> 같은 대중적인 영화를 나바호 언어로 더빙하여 어린아이들에게 보여주는 등 문화를 보존하면서도 소외되지 않는 정책을 펴고 있다. ‘전통’은 자신들의 문화를 훼손시킨 백인의 지배에 저항하는 도구이지만, 한편으로 그들의 자치구에서는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남성 중심의 삶이 유지된다. 자치구의 정치는 압도적으로 남성이 맡고 있다. 신화 속에서 ‘여신’이 많다고 여성의 삶을 존중하진 않는다.


이 나바호 자치구에서 정크푸드에 세금을 추가하고, 공식적으로 음주를 금하는 데에는 사회적 맥락이 있다. 정크푸드에 세금이 따로 붙는 이유는 이들이 미국에서 비만율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문화와 식습관의 차이도 있지만 대체로 경제력과 교육 수준과 관련 있다. 원주민 성인의 비만율은 백인보다 1.6배 이상 높고, 모든 원주민의 33%가 비만에 시달린다. 특히 소아 비만율은 미국 내에서 가장 높다. 10세 이전의 어린이 40~50%가 과체중이거나 비만에 속한다. 미국 원주민, 흑인, 히스패닉, 백인, 아시안 순으로 나타난다.


비만과 함께 소외계층의 문제 중 하나는 알코올 중독이다. 보호구역 내에서 카지노를 운영하거나 공예품을 파는 등 관광업이 주요 소득원인 원주민은 미국 내에서 소수자 중의 소수자다. 원주민에게 가한 학살의 역사는 이들을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미국 사회에서 소외시켰다. 자연스럽게 대학진학률과 취업률이 떨어지니 값싸게 먹을 수 있는 정크푸드 소비가 많고, 술과 마약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많아 비만과 알코올 중독이 심각한 문제다.


가끔 ‘인디언’의 정신세계와 문화에 대한 낭만적인 유통을 보면 어딘가 석연치 않다. 낭만적으로 유통되는 문화는 대체로 원거리 풍경이다. 과거를 기억할 필요 없는 입장이거나, 내 현실과 멀리 있는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을 바라보는 태도다.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내게서 멀어질수록 낭만화된다. 실재는 주로 야만과 신성한 낭만 사이에 있다.


미국의 지성인 나다니엘 호손이나 허먼 멜빌의 작품에서도 피해가기 어려운 타자화 된 미국 원주민이 아니라, 레슬리 마몬 실코Leslie Marmon Silko처럼 토착민 출신이 직접 쓴 『이야기꾼 Storyteller』이나 『의식』은 백인 중심의 시각을 전복시키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영문학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었다. 푸에블로 원주민 출신인 그는 원주민의 식민 이전의 문화를 순수하게 설정하지도 않고, 어느 특정 문화를 우위에 두지도 않으며, 문화의 잡종성을 인식한다. 전통 빵으로 만든 전통 음식이라고 하는 나바호 타코도 1864년 서쪽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음식이다.


화장실도 제대로 못가고, 발은 물수건으로 닦는 등 익숙지 않은 하룻밤이었으나 나는 완전히 곯아떨어져서 푹 자 버렸다. 허브차 덕분인가. 다음 날 아침에는 블루콘으로 만든 죽 같은 음식이 나왔다. 신성하다는 장소에서 깨끗한 음식만 먹었으니 안 씻어도 깨끗하다고 믿고, 부산스러운 내 정신상태도 어딘가 좀 정화가 되었길 바라며. 이럴 때는 낭만적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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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이라영(예술사회학 연구자)

프랑스에서 예술사회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미국에 거주하며 예술과 정치에 대한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 『여자 사람, 여자』(전자책),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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