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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겁먹지 마세요
종이책이냐 전자책이냐 한쪽을 골라달라면
개인적으로 꼽는 전자책의 좋은 점은 밤에 잠들기 전에 책을 보다가 불 끄러 가기 위해 일어날 필요가 없다는 거다. (2017.07.25)
누구나 집에 책탑 하나씩은 있지 않을까? 책을 사는 것은 부동산의 문제라 책장은 늘 부족하고 책은 바닥에 쌓여간다. 오며 가며 한 권씩 책을 얹어 소원을 빌던 책탑이 쓰러졌다. 오늘은 몸 조심해야 하는 날인가 보다. 전자책은 이 문제에 대한 가장 탁월한 대책이다.
위 책탑은 연출된 것입니다.
워드프로세서의 저장하기 아이콘이 왜 네모난 모양의 픽토그램인지 모르는 세대가 있다고 한다. 그럴 법도 하다. 언젠가부터 플로피디스크는커녕 시디가 들어가지 않는 컴퓨터도 많다. 언젠가는 전자책이 왜 위아래가 아니라 좌우로 넘기는 모양인지 모르는 세대가 나올까? 책이라고 하면 전자책을 더 일반적인 모습으로 떠올릴 때가 올 지 궁금하다.
하지만 아직은 전자책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책은 역시 종이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은 얼마 전까지 나도 갖고 있었다. 종이의 손맛과 책 가름 끈의 아름다움, 커버와 장정에서 느껴지는 미감이 있는 종이책이 아름다운 것이야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그 때문에 전자책의 편리함을 경험도 하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은, ‘전자책 많이 보면 눈 안 아파요?’ 인데, ‘종이책도 많이 보면 눈 아픕니다.’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눈이 아플 때까지 책을 보는 것은, 책이 좋아 책을 직업으로 삼고 난 이후의 오랜 소망 아닌가.
개인적으로 꼽는 전자책의 좋은 점은 밤에 잠들기 전에 책을 보다가 불 끄러 가기 위해 일어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책에서 빛이 나오니까. 요즘은 눈이 나쁜 사람들을 위한 큰 글씨 책도 나오는데, 전자책은 글씨 크기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 여러 권을 한번에 들고 다닐 수 있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전자책과 종이책의 차이로 가장 뚜렷하게 느껴지는 것은 일명 세네카, 우리말로 책등이 없다는 것이다.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책등은 꽤 까다로운 문제이다. 책등의 너비는 같은 쪽수라도 종이에 따라, 같은 종이를 쓰는 경우에도 종이의 무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꼭 두께를 계산해 주어야 한다. 만약 재쇄를 찍을 때 종이를 바꾸었다면, 책등도 새로 측정해야 사고가 나지 않는다. 잘못하면 제본을 하고 나서야 표지가 딱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게 되는 거다. 전자책은 책등이 없기 때문에 이 점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전자책에서 굳이 종이책을 구현한다면 책등을 보는 기분을 주면 좋겠다. 책을 살 때야 표지를 보지만 책장이나 쌓여있는 책탑에서 책을 고를 때는 책등을 보고 고르기 마련이라, 전자책에서는 그 기분이 나지 않는다. 전자책은 어떻게든 종이책의 경험을 최대한 표현하려고 애쓴다. 다음 쪽을 보기 위해 터치할 때 스륵 책장 넘어가는 이미지 효과를 내주는 것이나 책을 다운로드 받은 목록을 서재나 책장이라고 부르는 것도 종이책처럼 느끼게 해주려는 것일 테다. 하지만 전자책이 종이책의 경험을 전자적으로 나타내는데 굳이 집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터넷뉴스가 신문을 대체하게 되었지만 새로운 생태계가 생겨난 것처럼 전자책 디바이스 속의 책들을 보여주는 보다 우아한 방식이 생겨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매트릭스 속의 세계가 아니라 비가 내리는 세상이라 전자책을 만들 때도 물질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용량이 많이 나가는 전자책을 ‘무겁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물질인 동안은, 그리고 라면을 끓여먹는 동안은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또 그러길 바란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종이책이냐 전자책이냐 한쪽을 골라달라면, 종이책으로 사서 소장하면서 전자책으로 편리하게 읽는 방법을 추천합니다.
사진을 첨부하게 되어있는 채널예스의 편집 방향 덕에 굳이 끓여 먹었다.
'그래, 난 취했는지도 몰라'라는 변명 아래 책과 전자책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작년부터 알코올 알러지를 앓고 있는데 개가 똥 알러지 같은 소리라는 핀잔만 듣고 있습니다. 고양이 4마리, 개 1마리와 살며 책에 관한 온갖 일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