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수다를 부르는 책이면 좋겠다
『싱글 레이디스』 편집 후기
쓸데없이 참견하고 쿡쿡 쑤셔대는 세상의 오지라퍼들을 향해 이 책을 창과 방패로 쓰시라. (2017.07.13)
38년째 싱글인 후배 하나가 농담조로 말했다. “아줌마가 어째 싱글 책을 내셨데요?” 내 대답. “뭔소리? 나도 너만큼이나 싱글로 살아봤다구.” 우리의 저자 레베카 트레이스터도 35살까지 싱글로 살아보고서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에 대부분 결혼했던 어머니 세대와 달리 20대 내내 공부하고 일하느라 결혼과는 무관하게 살았던 거의 첫 세대로서 그 놀라운 변화를 기록하고 싶었을 것이다.
작년 2월 아마존 사이트에서 갓 출간된 『All the Single Ladies』를 발견했다. 바로 에이전시에 판권을 문의했더니 아직 계약되지 않았다는 답이 돌아와 쾌재를 불렀다. 비혼 대세인 이즈음에 100명 가까운 싱글 여성들(그중에는 글로리아 스타이넘, 아니타 힐 같은 유명인도 있었다)을 직접 만나 인터뷰 했다니 눈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뿐이라면 매력이 덜 했을지 모른다. 영민한 우리의 저자는 결혼지상주의와 성차별에 맞서 꿋꿋하게 독신의 길을 다져온 선배 여성들(엘리자베스 여왕을 비롯해 여성 참정권자 수전 B. 앤서니, 최초의 여의사 엘리자베스 블랙웰, 나이팅게일 등등)을 소환해 싱글 대세가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 세심하게 그려낸다.
편집자는 책 하나하나 공들여 만들지만 이 책은 특히 더 뜨거운 마음으로 작업했다. 언뜻 보면 비혼, 싱글 여성용 책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일, 인간관계, 부모라는 존재, 여자들의 우정, 질병, 고독과 즐거움, 섹슈얼리티, 결혼 선택, 아이 갖기와 낳기 등 여자의 삶 전반을 건드린다. 든든한 친구처럼 날카롭게 묻기도 하고 때로는 위로를 건네며 이 책은 나의 내면을 파고들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뉴욕으로 건너와 독립 생활을 시작한 저자가 5년 만에 자기만의 집을 얻는 대목이 있다. 나 역시 옥탑방에서 시작해 원룸, 투룸으로 내 공간을 넓혀가던 시절이 애잔하게 떠올라 빨간펜을 잠시 내려놓아야 했다. 드라마 팬 모임에서 만나 ‘찰떡 같은 사이’로 발전한 앤과 아미나,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사라’라는 친구와 자신의 달콤하고도 씁쓸한 관계의 변천을 풀어놓는 저자 레베카. 우리는 서로 다르면서도 비슷한 ‘여자 관계’를 거쳐왔고 결혼 여부나 성 정체성과 무관하게 여전히 그 관계에서 힘을 받고 있음을 깨닫는다.
저자의 경험과 그녀가 풀어놓은 이야기들이 어찌나 구구절절 내 얘기 같던지 인종과 국적을 떠나 정신적 자매를 만난 느낌이었다. 이런 심정은 이 책을 번역한 노지양 번역가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우리는 원서 전달을 위해 한 번, 책 나오고 한 번 만났을 뿐이지만 이메일과 문자와 교정지로 책 수다를 떨곤 했다. 온갖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과 드라마와 영화와 문학작품 이야기를 솜씨 좋게 빚어놓은 이 책이 번역가에겐 짜릿한 만큼이나 까다로웠을 것이다. 다행히 『나쁜 페미니스트』를 비롯한 여러 페미니즘 책을 이미 훌륭하게 번역했고 미국 문화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역자였기에 특유의 감칠맛 나는 번역이 나와주었다. “이 부분 너무 좋지 않아요?” “레베카는 어쩜 이리 글을 잘 쓸까요?” 하며 책에 관한 만담을 이어가고 서로 맞장구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점이 내겐 행운이었다. 실은 더 많은 이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나는 『싱글 레이디스』가 수다를 부르는 책이면 좋겠다(알코올 애호가에겐 수다와 술을 한 세트로). 20년 전 내 학창 시절에 여성학 책으로 세미나를 하고 나면 책 속의 이야기와 각자의 삶을 질겅질겅 씹어대며 술과 함께 쭉 들이켜던 그 기억처럼 독자들이 책을 계기로 함께 울고 웃고 불평불만을 털어놓고 위로 받기를 바란다. 쓸데없이 참견하고 쿡쿡 쑤셔대는 세상의 오지라퍼들을 향해 이 책을 창과 방패로 쓰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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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만남 남자와 결혼해 어린 아들 하나를 키우며 어렵사리 일과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 다른 책도 많이 있지만 『싱글 레이디스』와 비슷한 부류로 『여성학』과 『예민해도 괜찮아』 같은 책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