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오탈자의 발생에 대한 네 가지 학설

<그래, 난 취했는지도 몰라> 첫 화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지금까지 만든 책 중에 오탈자가 하나도 없는 책은 딱 한 권이다. 혹시 지금이라도 다시 펼쳐보면 관찰하는 그 순간 확률적으로 존재하던 오탈자를 고정시킬 것 같아 슈뢰딩거의 오탈자 상태로 책을 펼쳐보지 못하고 있다 (2017.07.11)

01.jpg

문의 전화를 가장 많이 받은 페이지지만 여기에 오탈자는 없다

 

오탈자가 가장 잘 발견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단언컨대 제본을 마치고 갓 나온 책을 받아 딱 펼친 순간이다. 그 페이지에는 반드시 오탈자가 있다. 게다가 어찌나 잘 보이는지 그 글자만 돋을새김에 볼드 처리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반적으로 3교를 거치는 교정 과정에서는 보이지 않던 오탈자가 인쇄 다 끝나고 나면 툭 튀어나오는 현상을 무엇으로 설명한단 말인가? 수치심에 머리를 쥐어뜯던 편집자들은 방어기제를 발동시켜 오탈자를 설명해낸다.

 

편집자들이 가장 폭넓게 지지하는 학설은 오탈자 자연발생설이다. 기원전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을 그 사상적 기원으로 한다. 실험적 기반은 반 헬모트로, 밀가루와 땀에 젖은 셔츠를 나무통에 담아두면 쥐가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종이와 글자가 땀에 젖은 교정지 위에서 만나면 오탈자가 생긴다.

 

그 다음으로 지지 받는 것이 오탈자 화학적 변화설이다. 무한동력과 자연발생설이 과학적으로 어불성설이라는 점에 착안한 이들은 인쇄기를 지나며 잉크가 묻는 순간, 고열과 압력으로 종이의 특정 부분이 화학적 변화를 일으켜 해당 글자가 오탈자로 변화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음모론도 있다. 원한을 가진 누군가가 일부러 오탈자를 심었다는 주장으로, 대체로 "너지? 네가 일부러 넣었지?"라며 애꿎은 후배 편집자가 지목된다. 이 때문에 정말로 원한이 생긴 후배는 다음 책에서 진정 오탈자를 집어 넣기도 하는데... 아니 이건 농담입니다. 선배님들.

 

02.JPG

오탈자는 수치심을 유발한다

 

오탈자는 사실 그 자체보다 후 처리가 더 무서운 일이다. 표지에 오탈자가 있었다면, 표지를 다 떼어내어 다시 만들 각오를 해야 한다. 바코드나 해답지처럼 숫자적 오류는 스티커를 만들어 일일이 붙인다. 바람 부는 물류 창고에 쭈그리고 앉아 코딱지만한 스티커를 하나씩 떼어내어 새 책에 붙여본 사람은 피눈물을 흘리며 오탈자를 저주하게 된다. 그런데 스티커 붙은 책을 산 사람 10명 중 9명은 스티커를 손톱으로 긁어 도로 뜯어낸다. 그것을 알면서도 한번 더 "헤헤, 이거 틀렸네." 하는 비웃음 받기 위해 일부러 붙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다 보니 내지의 오탈자는 다음 쇄를 찍을 때 수정하는 것이 제일 일반적이다. 그러나 책이 잘 안 팔려 재쇄를 찍지 못하면 고치지 못한 오탈자를 끌어안고 끙끙거린다. 그대로 절판이라도 나면...

 

지금까지 만든 책 중에 오탈자가 하나도 없는 책은 딱 한 권이다. 혹시 지금이라도 다시 펼쳐보면 관찰하는 그 순간 확률적으로 존재하던 오탈자를 고정시킬 것 같아 슈뢰딩거의 오탈자 상태로 책을 펼쳐보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내가 지지하는 오탈자 양자설이다. 아무튼 요즘 전자책을 만들면서 조금 안도하는 부분은 오탈자이다. 물리적으로 인쇄된 것이 아니라서 파일을 수정하여 재 업로드하면 되는 것이다. 스티커도, 바람 부는 물류창고도 없다. 사실 전자책으로만 출간되는 책은 종이책처럼 3교를 거치지 않는 것이 흔해서 오탈자가 꽤 많은 편이다. '그래, 오탈자가 난다고 사람이 죽지는 않아.'라고 조금 가볍게 마음을 먹게 된다. 야매 편집자가 되어 가는 마음의 소리. 그러나 독자나 편집자나 전자책은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보아 넘기는 면이 있다. 아무래도 종이를 쓰지 않았다는 점이 죄책감을 덜게 하는 것 같다. 변명 죄송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변명을 해보자면, 여러 번의 교정에도 불구하고 오탈자를 완전히 없애지 못하는 것은 인간이 글을 맥락 위주로 읽기 때문이다. 내용을 중심으로 따라가다 보면 글자 하나하나에 덜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글자의 앞뒤를 바꾸어 놓아도 단어를 읽는 데는 지장이 없다는 유명한 문장이 있지 않은가?

 

'캠릿브지 대학의 연결구과에 따르면, 한 단어 안에서 글자가 어떤 순서로 배되열어 있는가 하것는은 중하요지 않다. 왜하냐면 인간의 두뇌는 모든 글자를 하나 하나 읽것는이 아니라 단어 하나를 전체로 인하식기 때이문다. '

 

그러니 지금 읽는 책에서 오탈자가 자꾸 보인다면 조금 더 내용에 집중해서 읽어 보아 주세요, 라고 말하면 한번 더 혼나겠지. 아무튼 오탈자가 없도록 더 열심히 보겠습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1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고여주

'그래, 난 취했는지도 몰라'라는 변명 아래 책과 전자책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작년부터 알코올 알러지를 앓고 있는데 개가 똥 알러지 같은 소리라는 핀잔만 듣고 있습니다. 고양이 4마리, 개 1마리와 살며 책에 관한 온갖 일을 합니다.

오늘의 책

트럼프의 귀환, 위기인가? 기회인가?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거머쥔 트럼프. 글로벌 무역 질서를 뒤흔들 트럼프 2기 정부의 명암과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국제 정세에 미칠 영향에 대해 설명하는 박종훈 저자의 신간이다. 강경한 슈퍼 트럼프의 시대에 직면한 대한민국이 어떠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지 그 전략을 제시한다.

이래도 안 읽으실 건가요

텍스트 힙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독서가 우리 삶에 필요해서다. 일본 뇌과학계 권위자가 뇌과학으로 입증하는 독서 예찬론. 책을 읽으면 뇌가 깨어난다. 집중력이 높아지고 이해력이 상승하며 즐겁기까지 하다. 책의 장르는 상관 없다. 어떤 책이든 일단 읽으면 삶이 윤택해진다.

죽음을 부르는 저주받은 소설

출간 즉시 “새로운 대표작”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 관련 영상을 제작하려 하면 재앙을 몰고 다니는, 저주받은 소설 『밤이 끝나는 곳』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등장인물들이 함께 떠난 크루즈 여행 중 숨겨진 진실과 사라진 작가의 그림자가 서서히 밝혀진다.

우리 아이 영어 공부, 이렇게만 하세요!

영어교육 전문가이자 유튜브 <교집합 스튜디오> 멘토 권태형 소장의 첫 영어 자녀 교육서. 다년간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초등 영어 교육의 현실과 아이들의 다양한 학습 성향에 맞는 영어 학습법을 제시한다. 학부모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지침과 실천 방안을 담았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