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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병, 무엇이 문제일까?

우리는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먹일지 말지 선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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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 패티는 질이 나쁜 고기나 지방을 한데 섞어 갈아버린 분쇄육입니다. 대장균이 표면에 묻었다면 갈아 섞을 때 안쪽으로 들어가 버리죠. 그래서 속까지 완전히 익히지 않으면 균이 살아남는 겁니다. (2017.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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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 imagetoday

 

‘햄버거병’이 연일 화제입니다. 유명 체인에서 햄버거를 먹은 어린이가 장염을 일으키고 합병증으로 신장 기능을 잃어 복막투석을 받고 있다는 것이 요점입니다. 항상 그렇듯 언론은 신장이 90% 손상되었다는 둥, 네 살배기의 배에 구멍을 뚫었다는 둥 선정적인 면만 보도합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잘잘못을 따져 단죄하는 데만 관심이 있고요. 수많은 기사와 댓글들을 읽으면서 정작 이 사건에서 봐야 하는 걸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염된 음식을 먹어 장염이 생기는 건 이해가 되지만 왜 신장이 손상될까요? 왜 햄버거가 특별히 문제가 되는 걸까요? 이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대장균 이야기부터 해 봅시다.

 

대장균은 아주 유명한 세균이지요? 여름만 되면 마트에서 파는 채소나 냉면 육수에서 대장균이 검출되었다는 뉴스가 납량특집처럼 보도됩니다. 대장균은 이름 그대로 우리 대장 속에 삽니다. 다시 말해, 대장 속에 대장균이 사는 건 정상입니다. 사실 대부분 우리 몸에 이로운 역할을 합니다. 뭐라고? 대장균이 이롭다고?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식품 오염의 대명사가 됐을까요? 대장에 살기 때문입니다. 대장은 우리가 먹은 음식이 소화되고 남은 찌꺼기가 대변이 되는 곳이잖아요. 그러니 식품에서 대장균이 발견되었다는 건 어디선가 대변에 접촉했다는 뜻입니다. 요즘은 두엄을 쓰지 않으니 가장 흔한 이유는 식품을 다루는 사람들이 화장실에 갔다 손을 제대로 씻지 않고 조리를 하는 거지요(우엑!).

 

사람도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이 있듯, 대장균도 대부분 착하지만 나쁜 녀석들이 있습니다. 장에 사는 놈들이니 주로 장염을 일으키고, 바로 옆 동네인 소변길을 침범하여 요로감염도 일으킵니다. 면역이 떨어진 사람에게는 폐렴이나 패혈증을 일으키기도 하지요. 대장균계의 악당들은 대략 5가지가 있는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시가독소(Shiga-toxin) 생성 대장균입니다. 이 녀석은 변종이자, 독종입니다. 변종이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유전자가 변형되었다는 뜻입니다. 변형된 유전자 때문에 시가독소를 만들어냅니다. 독종이라고 한 것은 아주 적은 세균만 몸에 들어가도 심각한 병을 일으킨다는 뜻입니다.

 

오염된 음식을 통해 이 균이 장에 들어가면 일단 장세포에 단단히 달라붙은 후 세포막에 구멍을 냅니다. 구멍을 통해 시가독소를 주입하면 장세포가 죽으면서 주변에 심한 염증이 생깁니다. 지난 번에 염증이란 병원체와 우리 몸의 면역세포가 전쟁을 벌이는 거라고 했지요? 혼란을 틈타 시가독소는 주변의 작은 혈관으로 들어가 혈관벽 세포까지 죽여버립니다. 장세포가 죽을 때 심한 복통이 생기고, 혈관세포가 죽을 때는 피가 흘러나오므로 피 섞인 설사를 하게 됩니다. 바로 출혈성 장염입니다.

 

시가독소는 아주 독합니다. 환자의 10-15% 정도에서는 피를 타고 온 몸으로 퍼집니다. 야비하게 아주 작은 혈관만 골라 혈관벽 세포들을 죽여버립니다. 우리 혈관은 상처를 입으면 항상 그 부분이 끊어졌다고 생각합니다. 혈관이 끊어지면 피를 흘리게 되고, 피를 많이 흘리면 죽으니까 즉시 끊어진 부분을 때우기 시작합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혈소판입니다. 칼에 손을 베도 이내 피가 멎는 것은 혈소판 덕분입니다. 문제는 혈관이 끊어지지 않고 안쪽에 상처가 났을 뿐인데도 혈소판들이 모여들어 피가 굳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피라는 건 혈관 속에서는 흐르고, 혈관 밖에서는 굳어야 합니다. 혈관 속에서 피가 굳으면 혈관이 막히지요. 이런 식으로 심장의 혈관이 막히면 심근경색, 뇌혈관이 막히면 뇌졸중이 되는 겁니다. 하지만 그건 큰 혈관이 막히는 경우입니다.

 

시가독소는 아주 작은 혈관만 건드린다고 했지요? 이때는 상황이 좀 다릅니다. 일단 온몸의 혈관에서 피가 굳으면서 혈소판이 소모됩니다. 당연히 혈소판 수가 줄어들겠죠? 즉, 혈소판 감소증이 생깁니다. 또, 혈관이 완전히 막히기 전까지는 좁아진 틈으로 피가 지나갑니다. 그런데 좁은 틈을 억지로 지나가려다가 적혈구가 찢어지거나 터져 버립니다. 어려운 말로 ‘용혈(溶血)’이라고 합니다. ‘적혈구가 녹는다’는 뜻이지요. 적혈구가 자꾸 없어지니까 빈혈이 생깁니다. 우리 몸에서 작은 혈관들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콩팥의 사구체입니다. 사구체라는 말 자체가 실처럼 가는 혈관들이 공 모양으로 뭉쳐있다는 뜻입니다. 시가독소는 작은 혈관 성애자답게 사구체를 유난히 좋아합니다. 사구체가 손상되면 콩팥 기능이 떨어집니다. 콩팥은 노폐물을 소변에 실어 밖으로 내보내는 기관이지요? 따라서 콩팥 기능이 떨어지면 노폐물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몸속에 쌓입니다. 이걸 ‘요독증’이라고 합니다. ‘오줌 독이 몸에 쌓인다’는 뜻입니다. 정리하면 용혈, 혈소판 감소증, 요독증이 생기는데 이런 병을 ‘용혈성 요독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햄버거병은 별명이고, 용혈성 요독 증후군이 본명입니다.

 

시가독소 생성 대장균에 대해 좀 더 알아봅시다. 대장균은 대장에 살며, 대변을 통해 옮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시가독소 대장균은 인간의 균이 아닙니다. 본래 소나 돼지의 대장에 삽니다. 소나 돼지의 몸속에 있을 때는 착한 대장균이지만, 인간의 몸속에 들어오면 무시무시한 병원균이 돼버립니다. 동물의 병원체가 인간의 몸으로 건너와 병을 일으키는 것을 동물원성감염병 또는 인수공통감염병(zoonosis)라고 합니다. 인수공통감염병은 신종전염병, 특히 전 세계적인 유행병을 이해하는 데 핵심 열쇠입니다. 에이즈, 에볼라, 독감, 그리고 우리나라를 위기로 몰고 갔던 메르스가 모두 인수공통감염병입니다.

 

동물의 몸속에서 착하게 살았다는 것은 병원체가 아주 오랫동안 진화를 거치며 동물과 공생하는 법을 익혔다는 뜻입니다. 동물과 인간이 각자 서식지에서 서로 방해하지 않고 살았을 때는 동물의 병원체가 인간에게 넘어 오는 일이 드물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만들어낸 기후변화로 인해 동물들은 점점 살 곳을 잃고 있습니다. 우리는 동물이 살던 곳을 빼앗아 집과 공장을 짓습니다. 동물들이 살던 곳을 가로질러 도로를 내고 속도를 즐기다 동물들을 치어 죽이죠. 고기를 위해, 실험을 위해, 심지어 즐거움을 위해서도 동물들을 죽입니다. 보금자리에서 내몰린 동물들이 먹이를 찾아 인간의 주거지로 들어오는 일은 이제 유별난 사건도 아닙니다. 이런 과정에서 알려진, 또는 알려지지 않은 동물 병원체에 감염될 가능성도 갈수록 늘어납니다. 인류를 멸망으로 몰고 갈 사건으로 기후변화와 전 세계적 유행병을 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때 전 세계적 유행병이란 틀림 없이 인수공통감염병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소나 돼지는 가축이 아닌가요? 가축은 우리와 이미 오랫동안 함께 살지 않았나요? 예, 맞습니다. 여기서 기업형 축산이란 문제가 끼어듭니다. 얼마나 즐겨 먹는지 ‘치느님’이라고 부르는 치킨을 먹기 위해 우리는 닭들을 평생 A4용지만한 공간 속에 가둬 놓고 키웁니다. 소나 돼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좁은 공간에 밀집된 상태로 사육되는 가축들은 자신이 싸놓은 똥과 오줌 속에서 평생을 보내기도 합니다. 도살 후 고기를 처리하는 과정에는 비숙련 노동자를 씁니다. 서투른 솜씨로 창자를 잘못 건드려 배설물이 범벅이 된 속에서 빠른 시간 내에 많은 양을 발라내기 때문에 고기가 오염되기 쉽습니다. 스테이크 같은 덩어리 고기는 표면이 오염되어도 겉을 불에 굽기 때문에 균이 죽지요.

 

하지만 햄버거 패티는 질이 나쁜 고기나 지방을 한데 섞어 갈아버린 분쇄육입니다. 대장균이 표면에 묻었다면 갈아 섞을 때 안쪽으로 들어가 버리죠. 그래서 속까지 완전히 익히지 않으면 균이 살아남는 겁니다. 가축을 좁은 공간에 몰아넣고, 축사를 깨끗하게 관리하지 않고, 도축 과정에 비숙련공을 쓰는 것은 모두 고기의 가격을 낮추기 위한 것입니다. 고기에 중독된 우리에게 계속 싼 가격에 고기를 공급하려는 거죠. 그러니 진짜 문제는 햄버거가 아니라 우리의 끝없는 탐욕, 그리고 이윤에 눈먼 자본주의입니다.

 

저는 이 칼럼에서 구조와 정의의 문제보다는 개인의 문제를 다루려고 노력합니다. 그쪽이 더 중요해서가 아니라, 구조와 정의의 문제를 바로잡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 사이에도 우리는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먹일지 말지 선택해야 합니다. 그냥 먹이지 마세요. 위에서 말했듯 햄버거 패티는 스테이크 등으로 쓰지 못할 질 나쁜 고기와 지방을 섞어 만듭니다. 쉽게 맛을 내기 위해 소금과 설탕, 인공감미료를 씁니다. 채소는 상추 한 장으로 면피만 하죠. 용혈 요독 증후군이 아니더라도 피해야 할 음식입니다. 아이가 별미로 햄버거를 먹고 싶어 한다면 아주 가끔, 일 년에 한 번 정도 사 먹이거나, 질 좋은 고기를 사다가 집에서 만들어 주세요. 평소엔 엄마아빠도 바쁘니까 주말에 아이와 함께 만드세요. 채식주의자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나의 생존과 즐거움을 위해 동물이 희생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모든 소중한 것에는 정성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쉽게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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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 2005년 영국 왕립소아과학회의 ‘베이직 스페셜리스트Basic Specialist’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살고 있다. 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의 대표이기도 하다. 옮긴 책으로 《원전, 죽음의 유혹》《살인단백질 이야기》《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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