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얼마나 솔직했을까? -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
두 남녀를 통해 들려주는 진솔한 인생의 이야기 스스로에게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한다
‘우리는 어떤 사이인지’ 남자와 여자는 묻지 않았다. 오랫동안 묵혀왔던 그들의 감정이 마침내 터져 나온다. (2017.07.07)
모호한 관계의 핵심을 파고든다
연옥과 정민 사이에는 딸 이경이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부부가 아니다. 정민은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고, 연옥은 홀로 딸을 키웠다. 사랑이나 책임을 운운하며 붙잡는 여자도, 그에 발목 잡히는 남자도 없었다. 이후로 긴 시간이 흘렀지만, 정민에게 있어서 연옥은 여전히 ‘사랑하는 연옥씨’다. 연옥은 ‘이상하게 정민이 없는 삶은 상상이 안 된다’고 말한다. 무슨 이런 관계가 다 있느냐고, 힐난하기 전에 생각해 본다. 관계란 것이 그렇게 명확한 것이던가.
어쩌면, 관계란 본래 모호한 것이다.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세상 누구보다도 미울 때가 있고, 피를 나눈 가족을 남보다 더 모를 때가 있으며, 때로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 가장 큰 상처를 받는다. 그러니 연옥과 정민의 알 수 없는 관계도 이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관계에 살짝만 힘을 가해 일그러뜨리면 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아니, 우리 중 누군가는 연옥과 정민 같은 관계의 주인공일지 모른다.
이쯤 되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우리들의 관계는 왜 명료해질 수 없는 걸까.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은 그 핵심을 파고든다.
국제분쟁 전문기자인 연옥은 늘 생과 사가 교차하는 순간을 쫓아다녔다.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멈춰선 것은 자신이 위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녀를 찾아온 정민은 ‘목요일의 토론’을 제안한다. 연옥이 아프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매주 목요일마다 각기 다른 주제로 토론을 이어가자 말하는 것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가 진지했던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라는 것. 연옥이 은퇴를 하고, 교수인 자신이 안식년을 맞은 지금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적기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들은 몇 번의 목요일을 함께 보낼 수 있을까. 그 사이, 두 사람의 관계는 명확해질 수 있을까.
믿고 보는 배우, 실망할 걱정 없는 작품
두 사람은 정민의 연구실, 야구장, 사진전시회장으로 장소를 옮겨가며 ‘데이트 같은 토론’을 이어간다. 비겁함, 역사, 죽음 등 다양한 주제들이 그들 사이를 지나갔다. 정민은 철학적이고 분석적인 태도로 주제에 접근하고, 그 사이로 두 사람의 지난날이 파고든다. 같은 사건을 경험하고도 서로 달랐던 생각들, 말하지 않은 감정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모든 것은 조각에 불과하다. 연옥과 정민이 어긋났던 이유는 짐작할 수 있지만, 그때마다 관계를 바로잡지 못했던 까닭은 여전히 가려져 있다. 그들은 한 번도 서로를 향해 ‘우리는 어떤 사이인지’ 묻지 않았다. 지금도 그들은 ‘어쩌다 우리가 이런 모습이 되었는지’ 묻지 않는다.
네 번의 목요일이 흘러가는 동안, 대화는 중심을 찌르지 못하고 곁을 맴돌기만 했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다섯 번째 목요일, 연옥은 정민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어김없이 ‘사랑하는 연옥씨’로 시작된 편지. 정민은 연옥이 아닌 다른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연옥은 ‘그 날’을 떠올린다. 정민의 편지를 받았던 과거의 어느 날, 지금과 다르지 않은 이야기로 채워졌던 편지를 읽으면서 무너져 내렸던 자신과 마주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기 안의 이야기를 터트리기 시작한다.
연옥의 눈에 비친 정민은 비겁한 남자다. 그는 연옥과의 관계, 시대의 부조리로부터 벗어나기를 택했다. 그러나 정민은 말한다. 자신은 최소한 부정하거나 은폐하지는 않는다고. 내가 비겁하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그는 연옥을 향해 소리친다. “제발, 너한테 거짓말 좀 하지 마” 과연 누가 더 약하고, 악하고, 위선적일까. 자신이 무책임한 걸 받아들이는 남자와 자신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했던 여자, 누가 누구를 할퀸 것일까.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으로 이 관계를 설명할 수 있을까. 오래 묵혀왔던 두 사람의 감정은 마침내 튀고 부딪히면서, 만난다.
2012년 초연된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은 2014년 재연을 거쳐 세 번째로 무대에 오르는 작품으로 관계의 본질을 파고드는 메시지, 촘촘한 구성으로써 관객들을 매료시켜왔다. 연출과 극본을 맡은 황재헌 연출가는 “관객과의 직접적인 교감을 강화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고 밝히는 한편 “주인공의 개성과 매력에 설득력을 더하려고 노력했”다고 이야기했다. 그 결과 <그와 그녀의 목요일>은 한층 더 여유롭고 부드러운 작품으로 돌아왔다.
초연부터 ‘믿고 보는 작품’으로 자리 잡은 데에는 배우들의 역할도 컸다. 조재현, 박철민, 정은표, 배종옥, 유정아, 정재은 등 설명이 필요 없는 배우들이 함께했으며, 이번 공연에는 윤유선과 진경, 성기윤과 조한철이 활약한다. 연옥 역을 맡은 윤유선과 진경은 각각 11년, 5년 만의 연극 무대 복귀작으로 <그와 그녀의 목요일>을 선택했다. 정민을 연기하는 성기윤, 조한철 역시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다양한 변신을 거듭해왔다. 대학로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배우들을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임에는 틀림없다. 어떤 조합을 선택하든 실망할 일은 없을 테니, 관객에게는 더 없이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공연은 8월 20일까지,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2관 더블케이씨어터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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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